가을밤은 깊어지고, 보름달은 익어간다. 지갑은 얇아졌지만, 마음만은 풍성하다. 추석을 알리는 일상의 변화들이다. 추석, 선물꾸러미를 한 아름 안은 가족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고향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맛있는 음식이 끊임없이 밥상 앞에 놓이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밤새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처럼 다수 사람들은 행복한 한가위를 머릿속에 그린다.

하지만 한가위의 호사로움을 누구나 다 누리는 것은 아니다. 돈이 없어 가족 품으로 달려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그렇고, 홀로 외롭게 힘든 생명줄을 이어가는 독거노인 또한 그렇다. 월급쟁이 이웃들은 껑충 뛴 추석물가 탓에 한숨을 내쉬고, 결혼과 취업 등, 정신적 스트레스로 자발적 가출을 하는 젊은이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이 마주한 추석 이야기를 들어봤다.<편집자 주>

“추석은 무슨? 하루 벌어먹기도 힘들다”

▲ 폐지 등 줍는 할머니.
추석연휴를 앞둔 지난 11일, 산곡3동의 골목은 한산했다. 가끔, 장을 보러가는 노인들의 모습이나 일터 나온 사람들의 움직임이 고작이었다. ‘부르릉’ 배달을 위해 휘청거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골목의 적막을 깼다. 그 뒤로 조그마한 손수레에 무언가를 담은 60대 노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노인의 손놀림은 익숙했다. 거리에 버려진 공병과 파지는 노인의 손수레에 고스란히 담겼다. 얼핏 쓰레기처럼 보여도 노인에게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어보였다.

기자는 노인에게 물었다.“할머니, 이건 담아가서 뭐하시려고요?”

할머니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물건을 손수레에 옮겨 실을 뿐. 바쁜 걸음을 옮긴 노인은 골목 한 곳에 쓰레기를 쌓았다. 한 쪽 벽면에는 시꺼먼 그을림도 눈에 띄었다.

할머니는 이곳에 쓰레기를 쌓아두고 있다. 벌써 몇 년 째다. 골목길 사람들은 이 할머니를 볼 때마다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여름이면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찌른다. 때문에 이 골목에서 할머니는 유명인사인 동시에 민원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실제로 산곡3동 주민센터에는 할머니의 쓰레기에 대한 민원이 빗발친다. 동네에 악취가 진동한다는 것이 민원의 주된 내용이다.

쓰레기는 결국 화를 불렀다. 지난 12일 새벽 할머니가 쌓아둔 쓰레기 더미에서 불이 났다. 지난달에 이어 두 번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콘크리트 벽 너머에 주요소가 있다는 점이다. 대형 화재가 우려된 아찔한 상황이었다.

소방당국은 이 불이 할머니의의 쓰레기 채집에 반대하는 사람의 소행으로 보고 정확한 화인을 조사 중이다. 할머니는 혼자 살고 있다. 무슨 이유 때문이지, 기초생활수급비는 물론 노인연금 등도 수령하지 않고 있다. 단지 파지를 판 돈으로 생활하는 것 같다는 것이 산곡3동 주민센터 관계자의 설명이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할머니가 쌓아둔 민원은 몇 년 째 계속되고 있어, 걱정”이라며 “할머니가 파지를 팔고 그 돈으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슨 이유인지 각종 지원제도는 받지 않고 계신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들과 함께 생활해야 안정적인 삶을 사실 수 있을 텐데 현재 가족과 떨어져 지내신다. 이번 추석에도 홀로 계실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덧붙였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할머니는 “쓰레기를 모아 생활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방해해 괴롭다. 추석은 무슨? 하루 벌어먹기도 힘들다”며 고개를 돌렸다.

“빨리 취업해 고향에 당당히 내려가고 싶어요”

12일 밤, 부평구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아름(24여)씨의 손길은 분주했다. 김씨가 쥐어 잡은 바코드 옆으로 토플 책이 펼쳐져 있다.

김씨의 고향은 대전이다. 그는 2년 전 대전에서 인천으로 왔다. 낮에는 노량진에서 공무원 학원에 다니고 밤에는 이곳에서 품을 판다. 그가 이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학원비와 생활비로 쓰인다. 그는 인천에 온 지 2년 동안 고향집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반듯한 직장을 잡고 부모에게 인사드려야한다는 결심 때문이다. 또 아르바이트를 빼먹을 수 없어 고향 길에 오를 수조차 없는 현실도 그의 명절을 가로 막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씨는 “제가 인천으로 올라올 때 제 자신에게 약속한 것이 있는데, 취업하기 전까지는 대전에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걱정하셔서 작년에는 직접 올라오셨다. 죄송한 마음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하루하루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 취업에 성공하면 이런 고된 하루도 추억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싸도 너무 비싸” 외벌이 주부의 한 숨

“선물은 무슨? 추석 차례상을 차리기에도 버겁네요”

주부 이선정(32)씨는 지난해 부평구 부개동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남편은 사립고등학교에서 기간제교사로 일한다. 이씨는 결혼과 동시에 다시던 회사에서 나왔다. 마침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했고, 퇴직금을 더 준다는 말에 사표를 던졌다. 직장생활 5년 만의 일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회사를 그만둔 것을 절실히 후회하고 있다. 남편의 벌이로는 생활이 너무 빠듯하기 때문이다. 특히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 다가오면 등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다. 친정 식구들은 남편이 ‘기간제 교사’가 아닌 ‘교사’로 알고 있다. 정년이 보장된 것과 아닌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남편 월급의 절반가량을 저금한다. 혹시나 하는, 큰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공과금 내고 부모 용돈 챙겨드리면, 남는 돈은 20만~30만원 남짓. 이번 달에는 지인 결혼식 등 경조사가 많이 겹쳐 지갑이 더 얇아졌다.

이씨는 “친정에서는 남편이 교사인줄만 알고 있어 심적, 물질적 부담을 주기도 한다”며 “특히 이번 추석에는 부모님 용돈을 드리고 나면 거의 적자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남편과 자주 싸우고 부부관계도 더 나빠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이번 추석에는 물가가 많이 오른 것 같다. 어떻게 추석을 보낼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뱉었다.

“결혼 못한 나는 죄인” 여행 떠나는 싱글족

남구에 사는 백승훈(37)씨는 속된 말로 ‘자발적 싱글족’이다. 결혼할 필요성을 못 느낄뿐더러 가장이라는 짐도 부담스럽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편하고, 혼자 마시는 술이 더 맛있다. 백씨는 명절 때면 회사 일을 핑계로 부모님 댁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부모의 잔소리, 친척들의 이상한 눈빛 등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백씨는 “결혼을 못한 게 무슨 큰 죄도 아닌데, 부모님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결혼이야기를 하신다”며 “부모님 마음 모르는 것 아니지만 결혼 스트레스를 피해 지난해부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한 달에 한두 번씩 부모님을 찾아뵙고 용돈도 드리고 있다. 이번 여름에는 부모님과 여행을 다녀오는 등, 평소에는 나름 효자”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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