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선물 변천사

추석선물로 뭘 하면 좋을까?

생전 하지 않던 고민을 하고 있다. 가족들과 조용하게 보냈던 여느 명절과 달리, 이번 추석엔 인사 가야할 곳이 생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일이나 선물세트 이외에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나마 ‘인터넷 검색’이 있어 다행이다.

문득, 인터넷이 안 되던 시절엔 어떤 선물을 주고받았는지 궁금해졌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유년기를 보낸 1980년대 유행한 과자 종합선물세트다. 부모님을 찾아온 친척이나 손님 손에 드물게 종합선물세트가 들려 있었다. 그보다 더 멋진 손님은 없었다.

엄했던 부모님은 손님이 가시기 전까지는 절대로 선물세트를 뜯어보지 못하게 하셨다. 우리 삼남매는 선물세트에 온 신경을 집중한 채, 손님이 가시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드디어 알록달록한 비닐 포장을 뜯고 상자를 열면 생각지 못했던 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비싸거나 낯설어 먹지 못했던 과자를 그것도 무더기로 맛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가끔은 ‘혹시 안 팔리는 과자들을 골라 넣은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아이들 입맛에 맞지 않는 과자들도 꽤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자’라는 사실 하나에 마냥 좋았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찻잔 세트나 조미료 세트를 받아오기도 했다. 비릿하고 밍밍해 늘 먹기 싫던 미역국이 어느 날 갑자기 기가 막히게 맛있어진 비결은 그해 설 명절에 들어온 ‘고향의 맛’ 조미료에 있었다.

잠시 추억에 잠겨 있다가 이번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어머니는 195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전쟁둥이’다. 보리밥 한 번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는 그 시절에도 명절 선물은 오갔다.

“명절을 앞두고 동네에서 소나 돼지를 잡아. 그 고기를 서너 근 사는 거지. 식구가 많으면 다리 하나를 통째로 살 때도 있어. 비닐봉지가 없으니까, 고기를 지푸라기에 묶어 집에 가지고 와. 그러면 바구니에 담아 부엌에 매달아놨다가 명절날 친척집에 가지고 갔지”

어머니는 “명절은 일 년에 몇 번 먹을까 말까 한 고기를 맛보는 날이었다”며 온통 고기 얘기만 하셨다. 설마 고기뿐이었으랴.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사과상자’부터 ‘미원선물세트’까지

# 시내 도매 청과시장에 쌓인 사과 등 뭇 실과는 날개 돋친 듯 팔렸고 그 가격은 평시의 배를 받았는데 이 과일상자의 태반은 고관댁과 권력층 저택에 운반되어갔다.[1952.9.27.<경향신문>]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부산의 추석 풍경을 담은 기사다. 1950년대, 사과 선물은 특권층 사이에서 유행했던 모양이다.

# 삼성영화의 추석 선물! ‘오해 마세요’[1957.8.6.<경향신문> 광고]
# 추석선물은 역시 신세기 와이샤쓰가 제일[1957.8.24.<동아일보> 광고]

1957년부턴 드디어 추석맞이 특별 광고가 신문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요즘도 추석을 앞두고 개봉하는 영화가 많은데, 이런 문화가 꽤나 오래 전부터 이어진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 와이셔츠 광고는 좀 생뚱맞다. 끼니도 못 이을 마당에 서민들이 ‘사과상자’나 ‘와이샤쓰’를 구입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 시절 서민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사가 있다.

# 사람들의 발걸음은 추석과 관계가 적은 점방 앞을 스쳐 어린이 옷가게와 과일가게, 푸줏간, 생선가게, 식료품상 같은 곳만이 흥성대는 형편이었다. 어린이옷과 양말 가게에는 유독 사람이 많아 ‘추석은 어린이의 것’이라는 느낌이 많았다.[1958.9.27.<경향신문>]

어머니의 말마따나, 이 시절 서민들이 주고받은 선물은 주로 쌀이나 고기, 생선, 과일이었다. 기사에서처럼 명절이라고 해서 아이들에게 새 옷을 턱턱 사줄 수 있는 집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명절이나 돼야 겨우 아이들에게 새 옷을 입히거나, 새 양말이라도 신길 수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리라.

# 경남도에서는 추석절을 맞아 경로당, 고아원 등 불우한 원생들이 수용된 도내 15개 후생시설에 ‘오리온 캬라멜’ 7700포를 선물할 것이라고 한다.[1960.9.27.<동아일보>]

1960년대부터 선물 종류가 다양해져, 쌀이나 과일, 떡, 술 이외에 ‘캬라멜’ ‘카스텔라’ ‘밀가루’ ‘메리야쓰’가 추석선물로 등장한다. 1964년 <동아일보>엔 ‘펭귄표 통조림’ 광고가 크게 실렸다. ‘백도, 도마도쥬-스, 후루쓰칵텔, 꽁치, 오징어, 고등어, 딸기잼, 복숭아잼’ 통조림이 골고루 든 한 상자 가격이 470원이다.

1967년에는 ‘추석을 앞두고 제일 인기 있는 상품은 설탕’이라는 기사도 실렸다. 집에서 이용하기보다 선물용으로 많이 팔린다는 설명도 덧붙여 놓았다. 60년대 후반에는 화장품과 맥주, 비누 광고가 자주 실렸다.

# 주부들이 반기는 추석선물! 미원선물셋트[1969.9.18.<매일경제>]

드디어 ‘미원’ 광고가 실리기 시작했다. 당시 최고의 영화배우였던 김지미씨가 조미료 선물세트를 옆에 두고 미소를 짓고 있다. ‘예쁜 푸라스틱 용기와 금속캔은 사용하신 뒤에 가정용품이나 여학생들의 수예 그릇으로 쓰실 수 있읍니다’라는 친절한 설명도 잊지 않는다.

1969년엔 상품권 광고가 대거 등장한다. ‘칠성 구두’와 ‘시대 양복’은 ‘70년도 유행의 첨단’을 달리기 위한 ‘결정적인 선물!’이라며 보는 이들을 부추긴다. 그때나 지금이나 광고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도 없을 듯하다.

1980년대 선물세트 3000여종으로 늘어

# 아빠가 선택한 사랑의 선물! 온 가족이 기뻐하는 가정의 날 종합 선물![1970.9.<동아일보>]
# 추석 경기에 대비, 선물세트 판매에 집중하는 조미료, 설탕업계[1972.9.2.<매일경제>]

70년대로 넘어왔다. 이 시기엔 공산품 제조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서민들의 생활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선물세트 종류도 크게 늘어 식용유, 화장품, 그릇, 수건, 완구, 블라우스 등 1000여종이나 됐다고 한다. 특히 백화점에서 판매한 커피세트는 큰 인기를 누려, 설탕과 조미료 세트에 이어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선물 과대포장에 대한 경고도 이 무렵부터 시작한다.

1980년대는 선물 종류가 3000여 가지로 급증했다.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세트로 묶어 팔았다. ‘고급’이라는 명분 아래 포장기술이 점점 발달했고, 텔레비전이나 핸드백 등 고가의 선물들도 심심찮게 오갔다. 갈비 선물세트도 이 무렵 등장했다.

1990년대엔 ‘신토불이’ 열풍을 타고 자연산 식품과 향토 특산물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한편, 백화점 상품권 규제가 풀리면서 상품권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갔다. 이 시기 가장 큰 특징은 시내 큰 상점 또는 시장에서 구입하던 중저가 추석선물을 이제는 대형마트에서 구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비교적 가까운 시기인 2000년대의 키워드는 뭐니 뭐니 해도 ‘웰빙’이다. 친환경 먹거리와 건강기구들이 선물로 인기를 얻었다. 와인과 올리브유도 새롭게 등장했다. 와인은 이전까지 주류 부문에서 줄곧 정상을 지키던 위스키를 밀어내고 명절 선물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2009년, 한 포털사이트가 ‘1970~80년대로 돌아간다면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을 놓고 설문조사를 벌였다. 741명이 참여한 조사에서 304명이 선택해 1위를 차지한 것은 과자종합선물세트였다. 전자제품(292명), 통조림세트(57명), 식용유 등 종합선물세트(31명), 설탕(26명)이 뒤를 이었다.

선물 변천사를 정리하다보니, 변한 건 선물만이 아닌 듯하다. 지푸라기에 매단 고기를 들고 친척집으로 향하던 그때의 설레는 마음까지는 아닐지라도, 주고받는 사람들의 기대와 마음이 함께 담긴 선물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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