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카페 팟알(Pot-R)

▲ 백영임 카페 팟알 사장.
“카페야? 맛 집이야?”

메뉴판은 커피가 주를 이룬다. 작은 크기의 테이블을 봐도 이곳은 카페에 가깝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커피가 아닌 ‘다른 것’을 맛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테이블마다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팥빙수.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카페 ‘팟알(Pot-R)’은 팥빙수와 팥죽을 일 년 내내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유달리 팥을 좋아하는 백영임(사진) 사장의 취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7월 4일, 처음 가본 카페 팟알은 외관부터가 독특하다. 층이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3층 목조건물에선 일본 색체가 짙게 풍긴다. 1880년대 말에서 1890년대 초 지어진 ‘대화조 사무소’로 일본 하역회사 건물 겸 주택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라고 한다. 개항기 일본 조계지였던 인천 중구 일대에서 근대 일본 상가 겸용 주택 중 하나인 ‘정가(町家: 마찌야) 양식’을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6월엔 문화재청이 이 건물을 국가지정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이곳이 백 사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2011년이다. 그는 문화 관련 시민단체 일을 하다 그만둔 후,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문화운동을 하면서 근대문화유산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 많아 안타까웠거든요. 이 건물이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남은 마찌야 양식 건물이라는 걸 알고 매입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주위에선 쉽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죠”

당시 이 건물에는 ‘고집스런’ 할아버지가 혼자 살고 있었다. 그는 이 건물에서 태어나 한 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는 이였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이 건물을 사겠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완강하게 손사래부터 쳤다. 3대가 살아온 이 집을 잘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물려주겠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뜻이었다.

백 사장은 부동산에 내놓지도 않은 이 집을 사겠다고 무작정 대문을 두드렸다. ‘안 팔겠다’던 할아버지도 백 사장의 수차례 걸친 방문에 ‘정 그러면 명함이나 놓고 가라’며 한층 누그러졌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백 사장은 이 집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하고 자료를 보여주며 ‘이 집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겠다’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2011년 8월, 드디어 할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을 팔겠다는 거였다.

“20년 동안 혼자 사셨대요. 몸도 많이 아프다며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팔겠다고 하신 값에서 하나도 깎지 않았어요. 그분이 지금까지 집을 지켜온 것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거든요”

리모델링? 원형복원?

▲ 건축한 지 130년 된 일본 양식의 목조건물을 복원한 카페 팟알(Pot-R) 정면 모습.
건물을 사들인 그에게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생겼다. 건축을 전공한 대학교수가 ‘이 건물은 리모델링하기보다 원형을 복원해야한다’고 그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은 쓰임새에 맞게 내부를 변경하면 되니 제가 원하는 공간으로 만들기엔 가장 쉬운 방법이죠. 그런데 원형 복원은 구조 변경도 못하는 데다, 전문가에게 고증을 받아 원래 건물의 의미까지 살려야하니, 여러 가지로 제겐 유리한 방법이 아니었죠. 쉽게 말해, 이 공간에서 돈을 벌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했어요”

그는 꼬박 사흘을 고민했다. 결국, 후자를 택했다. 대신 건물 유지에 필요한 수입을 얻을 수 있고, 시민들의 접근도 쉬운 카페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후 그는 ‘모든 것’을 투자해 건물 복원에 매달렸다. 건물에 쓰인 돌덩이 하나도 그냥 버리지 않았다. 나무 기둥에 찌든 백년 묵은 때는 기계로 갈아 페인트칠을 하는 대신, 며칠 동안 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일일이 손으로 닦아냈다. 공사 전 과정은 전문가의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 목조건물 특성상 단열에 약한 점도 보완했다. 그만큼 공사 기간은 길어졌다.

지난해 8월, 130년 된 낡은 건물이 ‘카페 팟알’로 재탄생했다. 전국에서 건축학과 학생들이 건물을 보기 위해 이곳을 답사했다. 그는 “최서 200년은 아무 문제없이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게 복원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국산 팥으로 백 사장이 직접 팥 삶아

인천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린 14일 오후, 다시 카페 팟알을 찾았다. 팥빙수를 맛보기 위해서다. 평일엔 50그릇, 주말엔 100그릇만 판매하는 터라, 늦게 가면 구경도 못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카페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조바심을 낸 덕분에 다행히 팥빙수를 주문할 수 있었다. 빙수에는 곱게 간 얼음과 팥, 우유, 연유, 미숫가루를 넣고 고명으로 찹쌀떡과 아몬드 조각을 올린다. 별다른 재료 없이 팥빙수와 팥죽만으로 단번에 맛 집 대열에 오른 비결은 바로 팥에 있다.
팥빙수의 팥은 무르지 않고 알갱이가 하나하나 살아있다. 백 사장이 날마다 직접 삶는다고 한다. 게다가 수입산에 비해 네 배나 비싼 국산 팥을 사용한다. 커다란 냄비에 팥을 한꺼번에 넣고 휘저으면 시간과 노력은 덜 들어가겠지만, ‘살아있는’ 팥알은 포기해야한다. 그래서 그는 작은 냄비에 나눠 여러 번에 걸쳐 팥을 조린다.

“어렸을 때, 일본에서 공부하신 아버지가 팥죽을 만들어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팥을 좋아하나봐요”
팟알에서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카스텔라다. 이름하야 ‘나가사키 카스텔라’. 촉촉하고 진한 단맛이 일품이다. 한 조각만 맛볼 수도 있고, 한 덩어리로 포장된 것을 살 수도 있다. 하루에 30개만 판매한다.

2ㆍ3층은 다다미방으로, 모임 장소가 필요한 이들은 예약한 후 사용할 수 있다. 한 시간에 사용료 1만원을 지불하면 된다. 백 사장은 지난 역사의 한 단면인 팟알을 보존하는 동시에 잘 활용하고 싶다고 했다. 이것이 후손에 대한 자신의 책임이라고 했다.

“이미 사라진 일제 잔재를 굳이 새로 만들 필요는 없죠.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거예요. 하지만 남아 있는 것은 제대로 보존하고 활용해 후손들이 계속 찾아와 볼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건물 없앤다고 역사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지난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라 생각해요”

▲ 카페 팟알의 대표 메뉴인 팥빙수.

▲ 카페 팟알의 대표 메뉴인 카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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