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유광식 사진작가

 
푸른 기와지붕이 하늘을 받치고 있다. 그 사이로 하얀 구름이 흘러간다. 산 아래 들어선 집들은 땅의 높낮이를 그대로 드러낸다. 비슷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보면 똑같은 집은 하나도 없다. 정지된 풍경 속엔 같은 듯 다르게 살아가는 우리 삶이 숨어 있다.

유광식(37ㆍ남동구 간석동) 사진작가가 세 번째 개인전 ‘열우물에 고요히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7월 17일부터 31일까지 ‘파란광선’(중구 내동 176번지)에서 연다. 부평구 십정1동 일대 풍경을 기록한 사진들이다. ‘파란광선’ 전시에 앞서, 7월 5일부터 ‘사진공간 배다리’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 유 작가를 9일 만났다.

대기업 그만두고 전업 사진작가로


▲ 사진 ‘열두물-parade’의 사진작가 유광식씨.
부평구 십정동에는 우물이 열 개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동네를 열우물이라 불렀다. 야산과 공동묘지, 과수원이 주였던 이 동네에 남구 주안에 있던 염전 노동자와 피난민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뤘다. 1960년대 도시개발 명목으로 삶터에서 내쫓긴 이들도 이곳으로 밀려왔다. 간신히 삶은 이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재개발 바람이 이 지역을 흔들고 지나갔다.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되면서 많은 이들이 이곳을 떠났다.

유광식 작가는 5년 전부터 십정동을 눈여겨봐왔다. 남들은 이곳을 낙후됐다고 하지만 그에겐 조금 다르게 보였다. 3년 전부터는 카메라에 동네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찍은 양이 필름카메라로 1000여 장을 넘는다. 디지털카메라까지 합치면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가운데 필름 사진 30여 장을 선별해 전시를 열고 있다.

‘사진작가’라는 예술가 타이틀을 직업으로 지니고 살고 있지만, 그는 대학에서 항공기계공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엔 대기업에 무난하게 취직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은 기대와 많이 달랐다. 꽉 짜인 위계질서와 업무는 그의 몸과 마음에 많은 스트레스를 안겼다. 그는 4개월 만에 사표를 제출했다.

“직장생활이 주는 만족감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 안에서 내 꿈과 비전을 키워가긴 어려울 것 같았어요. 앞으로 뭘 하고 살아가면 좋을지, 알아가는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빨리 판단을 잘 한 거죠(웃음)”

디지털카메라 덕분에 사진에 관심 생겨


2000년대 초반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한 디지털카메라는 그가 쉽게 사진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취미로 사진 찍기를 즐기던 그는 직장을 그만 둔 후에는 보다 깊이 있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사진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관련서적도 찾아보았다. 사진 강좌도 듣고 전시장도 찾았다. 서른 살 무렵, 사진을 취미가 아닌, 일종의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사진이 나를 표현하고, 제 생각을 드러내는 매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사진은 기록이기도 하잖아요.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에, ‘길게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그는 2010년 첫 개인전을 열기 위해 주거지인 남동구 간석동 일대를 세 달 동안 매일 두 시간씩 산책했다. 맘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면 그곳에서 여러 날 동안 같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서로 겹쳐보았다.

“며칠 동안 오간 길이 서로 중첩돼 보이는 게 좋았어요. 늘 봐온 동네였지만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마을 기록에 대한 탐구의 시작이었죠. 하지만 세 달은 간석동을 알기엔 짧은 시간이었어요”

그는 십정동 촬영에 앞서, 그 일대를 무려 2년 동안 그냥 돌아다니기만 했다. 십정동을 제대로 알기 위한 시간이었다. 틈틈이 주민들과 대화도 했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좁은 골목과 수많은 집들이 어느 순간 그의 머릿속에 환하게 들어왔다. 드디어 카메라를 들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삼각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 그에게 동네 주민들은 ‘측량기사냐?’고 묻기도 했다.

“재개발로 한참 시끄럽던 지역이라 그런지 민감하게 바라보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분들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가더군요. 가급적 주민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했고, 그분들이 저를 구경꾼이나 침입자로 느끼지 않게 주의해서 사진을 찍었어요”

집을 코앞에 두고 네온사인에 길 잃어

 
십정동은 그에게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떠오르게 한다. 그는 열한 살까지 전북 완주에서 살았다.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저에게는 마을에 대한 정서가 있는 것 같아요. 십정동처럼 이웃과 경계가 높지 않은 동네에 마음이 가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곳이니 기록해 남겨두고 싶어요”

그는 골목길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완주를 떠나 서울로 이사를 온 다음 날, 그는 집을 10여 미터 앞에 두고 난생 처음 길을 잃었다.

“집 앞 네온사인을 보는 순간, 이곳이 어디인지, 내 집은 어디인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시골에선 길 잃을 일이 없거든요. 한참 만에 겨우 집을 찾았던 기억이 나요”

그 후로 ‘길’은 그에게 반드시 알아야할 어떤 것, 알고 싶은 것이 됐다. 그가 카메라로 동네와 길을 찍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변해가는 인천의 모습 기록하고 싶어


그는 앞으로 변화하는 인천의 모습을 가능한 많이 기록해두고 싶다고 했다. 이미 남구 용현동, 동구 만석동, 중구 개항장 일대를 수십 번도 더 드나들었다. 그는 직접 발로 걸으며 동네 곳곳을 살핀다. 그가 최근 관심을 갖는 곳은 송도와 청라 등 신도시다.

“사라져가는 곳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는 모습도 의미 있는 기록이 될 거라 생각해요. 사실, 신도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것 역시 인천의 역사니까요” 그는 이 기록을 한 데 담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사진으로 그리는 인천 몽타주’를 꿈꾸고 있어요. 완성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담을 인천의 모습,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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