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금융을 찾아서 [새마을금고] 부평중앙새마을금고

 
부평중앙새마을금고(이사장 이문성)는 1972년 3월 29일, 30명이 출자금 9만원을 모아 설립한 부평4동새마을금고를 시효로 하고 있다. 그 뒤 1980년 8월에 당시 내무부(=현 안전행정부)에서 인가를 받았다.

부평4동새마을금고는 1995년 부평시장로터리 원예농협 건너편 현 호박나이트클럽 지하에 있던 부평종합시장새마을금고가 ‘사고 금고’로 처리되자, 이를 인수했다.

부평시장 인근에는 부평4동새마을금고와 더불어 건영종합새마을금고가 있었다. 건영종합새마을금고는 부평깡시장을 모태로 설립된 단체 새마을금고였다.

1997년 IMF 경제 불황이 지나간 후 국내 새마을금고 간 합병이 이뤄졌다. 2000년 새마을금고중앙회(=당시 새마을금고연합회)는 부평4동새마을금고와 건영종합새마을금고를 합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금고가 현 부평중앙새마을금고다.

자산 규모에서 건영종합새마을금고가 더 컸으나, 새마을금고중앙회는 단체 금고가 지역 금고에 병합되게 했다. 본점은 건영종합새마을금고의 본점을 사용했다. 그리고 부평시장 내 부평4동새마을금고 본점은 없앴다.

부평중앙새마을고의 2013년 5월 기준 자산은 약 1036억원이다. 회원 수는 1만 180여명이며 거래자 수는 2만 1800여명이다. . 본점 외에 부평시장·신트리·장제로·구월농산물시장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전통시장 상인 위해 ‘파출수납’

부평중앙새마을금고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바로 ‘파출수납’이다. 금고 실무책임자를 맡고 있는 최민용 상무는 “장사하는 분들은 은행업무를 보러 가기 힘들다. 그래서 직원들이 통장을 들고 상가를 방문해 입금을 해주고 출금도 해준다. 적금 수납도 해주는데, 금고에 오지 않아도 금융 업무를 볼 수 있는 제도다. 부평시장 노점상인의 것까지 다 해주고 있는데 우리 금고의 전통이자 자랑”이라고 했다.

파출수납은 부평시장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삼산농산물시장과 구월농산물시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부평시장에서 경매시장과 도매시장이 열렸다. 그 중개인과 도매상인들이 삼산농산물시장과 구월농산물시장으로도 진출하자, 파출수납도 같이 진출했다. 중앙새마을금고는 구월농산물시장에 지점까지 진출시켰다.

이문성 이사장은 “파출수납은 금고 회원들과 유대를 증진하고 친밀도를 높이는 데 좋을뿐더러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된다. 파출수납은 우리 금고 전체 여수신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업무”라고 말했다.

젊은 이사장 취임으로 추진력 상승, 지난해 공제 1위

부평중앙새마을금고는 지난해 이문성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자산이 200억원 이상 늘었다. 공제 달성액은 인천지역 금고 54개 중 1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신장에 대해 최민용 상무는 “이사장이 젊어졌다는 점이 크다. 적극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젊은 이사장이 취임해 금고 분위기를 바꿨다”고 말했다.

이문성 이사장은 새마을금고가 진행하는 좀도리운동, 장학사업, 경로당과 자생단체 지원 외에도 사재를 털어 사회공헌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한 달에 두 번 사재를 털어 독거노인 200여명을 금고로 초청해 짜장면을 대접한다. 다음 달부터는 노인들에게 이ㆍ미용봉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소액 가계일반대출까지 진출하면서 상호금융이 상당히 어려워졌다.

이문성 이사장은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 현재 금고 회원 중에는 20~30대층이 약하다. 이들이 향후 금고의 주인인데 이들을 회원으로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아울러 금고 발전의 원동력이 된 전통시장 상인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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