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라이브클럽 ‘락캠프(Rock Camp)’

토요일 밤이면 묵직한 전자기타를 맨 이들이 부평구청 인근에 나타난다. 길쭉길쭉한 팔다리에 노란머리를 한 앳된 모습부터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중년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라이브클럽 ‘락캠프(Rock Camp)’. 락캠프에서는 주말마다 밴드들의 공연이 이어진다. 가족이나 지인들과 음료를 마시며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주머니 가벼운 이들에게 그야말로 천국

▲ 라이브클럽 ‘락캠프(Rock Camp)’ 입구의 모습.
락캠프는 1997년 백운역 인근 지하에 처음 문을 열었다. 정유천 사장은, 당시 인천에 근거지를 두고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활동하는 밴드가 못해도 50여개는 됐을 거라고 회상했다. ‘사하라’ ‘크래쉬’ ‘블랙신드롬’ 등 헤비메탈의 수장이라 할 만한 밴드들이 모두 인천에서 탄생했다. 인천은 한국 록음악의 성지와 다름없다. 이런 속에서 락캠프는 1년 내내 밴드들의 공연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특히 주말엔 10개 팀이 넘게 출연하기도 해, 공연은 새벽 2시를 넘겨서야 겨우 끝났다.

“제가 아무리 록음악을 좋아한다고 해도, 7~8시간 동안 계속 듣다 보면 나중엔 정신이 멍해져요. 록음악이 요란하잖아요.(웃음) 잠깐 밖에 나가 귀를 쉬게 해야 정신이 돌아올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기획공연을 제외하곤 입장료도 받지 않아, 락캠프는 용돈 없는 고등학생들의 스트레스 창구역할도 톡톡히 했다. 90년대 후반까지 고등학생들은 술집이나 클럽에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실력 있는 밴드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는 데다 따로 돈이 들지 않으니, 록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그때 고등학생이었던 이들이 성인이 돼 이제 자녀들과 함께 이곳을 찾아요. 기억하고 찾아주는 이들이 있으니, 무척 반갑고 고맙죠”

강화에서 다시 부평으로

정 사장은 2006년, 락캠프를 강화도로 옮겼다. 개정된 소방법이 소급 적용돼 소방시설을 갖춰야했기 때문이다. 당시 법에 따라 시설을 보완하려면 수천만 원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10년 동안 새벽까지 지하공간에서 일을 하느라 몸도 많이 상했다.

“돈 벌 생각하지 않고 어렵게 운영을 해왔는데, 그렇게 큰돈을 들일 수는 없었어요. 건강도 안 좋아져 강화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동안 그와 인연을 맺어온 몇몇 밴드들은 주말이면 강화로 향했다. 록 음악을 생소하게 생각하던 그곳 주민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등장을 반겼다. 한편, 이전 장소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가까운 곳에서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잃은 밴드, 그리고 라이브 음악을 즐기던 손님들이었다. 마침 정 사장은 인천밴드연합 회장을 하고 있었고, 부평구예술인연합회장직도 새로 맡았다. 강화에 살면서 단체 활동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 3년 동안의 강화 생활을 접고 2010년 지금 자리로 옮겼다. 다시 부평에서 락캠프 간판에 불이 켜졌다. 토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공연이 펼쳐진다. 평일엔 유명 밴드들의 기획공연과 대관공연도 열린다. 공연정보는 다음카페 ‘인천 라이브 클럽 Rock Camp’(http://cafe.daum.net/rockcamp)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연장서 만날 수 있는 즉흥연주의 맛

▲ 정유천(오른쪽) 사장과 그의 아내.
연주자와 관객이 서로 소통하며 현장감 있는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이외에 락캠프 라이브 공연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본 공연이 끝난 후 연주자들이 악보 없이 즉흥연주를 펼치는 ‘잼 세션’(Jam Session)이 그것. 잼 세션은, 재즈 연주자들이 코드 진행만을 약속한 채 각자 악기별로 리듬과 선율을 즉흥적으로 만들어 연주하는 것에서 나온 말이다. 정 사장은, 오랜 연주 경력을 가진 이들은 처음 만난 사이라 해도 서로의 연주를 뒷받침해주며 조화로운 공연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연주자에겐 이런 연주가 오히려 재미있죠. 잼 공연의 묘미는 그 자리가 아니면 절대로 그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거예요. 당시 기분과 상황에 따라 각자 즉흥적으로 만들어 낸 거라 연주자들도 기억을 할 수가 없어요”

정 사장은 블루스 리듬에 맞춘 ‘블루스 잼’ 연주하기를 즐긴다. 그는 락캠프를 운영하는 동시에 ‘정유천 밴드’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의 통기타 치는 모습에 반해 기타를 잡았다. 그때부터 한시도 기타를 손에 놓은 적이 없으니, 기타와 함께 한 세월만 벌써 40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밴드활동을 시작해 이후 솔로 음반도 두 장이나 낸 엄연한 프로 가수다.

“10대부터 20대까지 정말 열심히 기타를 쳤어요. 악보를 구할 수 없는 곡은 레코드판을 수도 없이 돌려서 기타 음을 하나하나 들어가며 연주했어요. 많이 들은 부분은 나중에 레코드판 색이 허옇게 변해요. 그 시절에 열심히 연습한 걸로 지금까지 먹고 사는 것 같아요.(웃음)”

작년, 15주년 기념공연 성황리에 마쳐

지난해 말, 락캠프에선 15주년 기념 공연이 열렸다. 10대 소녀 팬클럽을 이끌고 온 젊은 인디밴드부터 경력 20년이 넘는 중년 밴드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밴드가 참여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자녀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은 이들과 홀로 온 이들이 섞여 저마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공연을 즐기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이날 정 사장은 예상치 못하게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는 손님을 감당하지 못해 땀을 뻘뻘 흘렸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오실 줄 몰랐어요. 밴드 음악이란 게 우리나라에선 그다지 대중적인 음악은 아니잖아요. 어쩌면 그래서 (락캠프) 경영이 늘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해요”

그가 말을 멈췄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그래도 이런 공간이 있으니 밴드들이 음악을 할 수 있고, 관객도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잖아요.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천에서 많은 돈을 들여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하는데, 평소에 락 공연을 즐길 장소가 없다면 일시적인 행사에 그치고 마는 거죠. 눈에 보이는 행사만이 아니라 (락)문화를 이어가고 확대하는 것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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