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하다 - 시민운동] 6월 항쟁 후 인천지역 시민운동의 현재

<인천투데이>은 6월 항쟁 26주년을 맞아 6월 한 달 동안 인천지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있다. 이번에는 6월 항쟁 이후 인천지역에서 창립돼 활동한 시민단체들의 역사와 현재를 살펴봤다.

“정체기는 무슨, 퇴조기예요. 퇴조기. 위기에 봉착해있다고 봅니다”

“상당수 시민단체들은 퇴조기라는 것을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에서 굵직한 자리 하나를 맡거나 지역 현안 관련 투쟁을 벌일 때 이름만 넣으면 마치 시민단체로서 큰일을 한 것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고요. 정작 시민은 없고 지도부만 있거나 상근자만 있는 시민단체는 반성해야합니다”

인천에서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해온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말이다. 이들은 인천지역 시민운동이 지금 정체기 아니냐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오히려 시민단체들의 가슴을 후벼 팔 듯한 답변을 내놓았다.

89년 목요회 창립으로 시민운동 태동

▲ 1987년 5월 인천항쟁 모습.<사진제공·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인천에 시민단체가 만들어진 시기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이다. 6월 항쟁 후 재야 단체들은 ‘민주쟁취 국민운동 인천본부’를 창립하고 민주정부 수립을 위해 대통령 선거에 힘을 모았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89년 6월 29일 종교ㆍ학계 등 지식인 10여명이 지역사회 여론의 구심점을 이룬다는 목표로 ‘목요회’를 창립했다.

목요회는 지역 현안을 해결해나가는 주요 모임으로 자리 잡았다. 창립 후 2년 만에 회원이 변호사ㆍ의사ㆍ약사ㆍ문화예술인 등 각계 전문직 인사 40여명으로 늘어났다. 목요회는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 월례모임을 열어 지역 문제를 논의하고 적극 대응했다. 특히 목요회는 1990년대 초반에는 계양산 살리기 범시민운동과 선인학원 정상화를 위한 투쟁, 90년대 중반엔 굴업도 핵 폐기장과 영흥도 화력발전소 건설 반대 운동 등 지역 현안에 적극 대응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이 목요회가 인천지역 시민운동(시민단체)의 효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목요회는 시민들의 권리 획득을 위해 어떻게 지역에 밀착해야하는지, 시민단체의 활동이 어때야 하는지, 시민운동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 것 같다”고 말했다.

6월 항쟁 이후 1994년까지 인천지역 시민단체 창립 현황을 보면, 목요회 창립 후 1989년 9월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인천지부, 1992년 10월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1993년 5월 인천녹색연합의 전신인 인천배달환경, 1994년 12월 인천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17개가 창립했다.(표1)

 
6월 항쟁은 재야운동에 머물렀던 민주화세력들이 저변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전국적으로 보면, 89년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시민 중심의 경제주체운동을 표방하며 시민운동 단체로 창립했고, 이후 공해추방운동을 하던 시민단체가 환경운동연합으로, 시민의 정책 참여를 표방하는 참여연대가 창립했다.

6월항쟁 이후 7·8·9월 투쟁을 거치면서 인천지역에선 노동현장의 운동이 활발해지고 이에 따라 노동운동을 외곽에서 지원하는 노동운동단체들도 많이 생겨났다.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지역해고자협의회, 인천민중연합, 노동자문화마당일터, 한겨레노동자회, 인천민주청년회(인천민주노동청년회로 개칭), 통일을 여는 민주노동자회 등으로 이러한 노동운동단체들은 이후 인천지역 시민운동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 종교계를 기반으로 하는 시민운동 성격의 단체들도 잇달아 생겨났는데, 천주교의 수요사제모임, 개신교의 민중교회연합 등 단체들이 각 교계와 시민운동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자치와 분권’ 화두

전국단위 시민단체가 창립한 초기에는 경제ㆍ환경ㆍ정치 문제를 중심에 두고 활동하다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1995년부터 99년까지는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자치와 분권을 이야기하는 시민단체들이 많이 창립됐다. 인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95년 1월 통일민주협의회, 같은 해 2월 부평시민모임 창립 후 연수시민모임 등이 창립했다. 1996년 6월에는 지금의 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 전신인 평화와참여로가는시민문화센터가 창립하는 등, 1999년까지 시민사회단체 18개가 창립했다.(표2)

 
1995년 6월 27일 전국에서 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지면서 이 시기를 전후로 해 인천지역에서도 지방자치를 감시하기 위한 시민단체들이 많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단체들은 ‘의원 해외활동에 관한 규정 제정 청원’ ‘후보 대상 공약 제안 운동’ ‘후보자 초청토론회’ ‘단체장 공약 이행도 조사’ ‘인천시금고 공개경쟁 입찰 조례 제정 운동’ ‘시민감사 청구 조례 제정 청원’ ‘단체장 판공비 공개운동’ 등을 진행하며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시민주권을 획득할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90년대 후반부터 군ㆍ구 단위의 시민모임과 환경ㆍ소비자ㆍ교육ㆍ청소년ㆍ여성ㆍ문화ㆍ보건의료 등 분야별 모임이 대거 만들어졌다. 이 시기 참교육학부모회ㆍ전교조ㆍ시민문화센터 등은 ‘올바른 교육개혁을 위한 인천지역연대회의’를 꾸리고 학교운영위원회 참여와 교육감ㆍ교육위원의 올바른 선거를 위한 활동을 펼쳤으며, 인천YWCAㆍ인천YMCAㆍ청소년생활문화마당내일ㆍ가톨릭청소년회는 인천지역 청소년 문화 확산을 위한 운동을 펼쳤다. 여성 정책 수립을 위한 여성단체들의 활동과 시민문화 활동, 인천의 정체성을 위한 활동, 수돗물 불소화운동 등, 보건의료운동도 활발해졌다.

2000년 4월 13일 총선에선 전국적으로 낙천낙선운동 바람이 불었다. 인천도 마찬가지였으며, 이는 인천 시민사회운동진영이 지방자치를 더 깊게 인식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줬다. 이후 낙천낙선운동은 시민사회운동진영이 본격적으로 시민후보를 내세워 지지ㆍ당선 운동을 펼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당선 운동이 비록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지방자치와 지역 현안과 관련한 정책 개발 운동으로 발전했다.

또한 2000년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면서 북과 인접한 인천에선 시민단체들의 통일운동도 활발히 진행됐다. 이에 따라 인천시도 북한과의 교류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2004년 6월 시민단체 주관으로 인천에서 전국 최초로 북과 함께 한 우리민족대회가 열렸으며,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2004년 12월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 건립 사업이, 2008년 10월에는 평양치과병원 건립 사업이 추진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 전문성 띤 단체 급증

2000년대엔 전문성을 좀 더 띤 단체들도 많이 생겼다. 창립한 단체를 보면, 2000년 4월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같은 해 12월 민주화운동정신계승인천연대, 2001년 3월 인천여성민우회, 같은 해 9월 참의료실천단, 2004년 1월 인천여성회, 2006년 2월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등이 창립했다.(표3)

 
2000년대 들어 중앙정부의 권한이 지방정부로 이양되면서 시민단체의 활동 폭이 더욱 확대돼 지역에서도 다양한 전문성과 의제를 가진 시민단체들이 많이 탄생했다. 이 단체들은 각자 지역에서 자신들의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하다가 지역에 함께 풀어야할 문제가 생기면 연대했다.

또한, 이 시기부터 시민단체들 활동가들이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지방정부의 행정과 제도 개선에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선 선거 연합과 야권 연대의 방식으로 공동정부 성격인 시민참여정책위원회를 만들고 대안 정책을 많이 생산해내는 등의 성과를 내오기도 했다.

이후 시민단체들은 인천시의 재정위기와 무리한 도시개발, 지방분권 현안에 역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또한 시민문화ㆍ중소상인문제ㆍ복지ㆍ의료 등 각자 전문성을 갖추고 다양한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며 활동하고 있다.

위상 높아졌으나, 토대 부실해져

한편, 1989년 6월 목요회로 시작해 24년이 지난 지금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은 지방정부에도 참여하고 있고 많은 목소리를 내는 등 위상은 높아졌지만, 가장 근본적인 지점이라 할 수 있는 ‘시민과 함께 하는 것’에선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인천에서 구별 조직을 두었던 시민단체가 더 이상 회원을 늘리지 못하고 있고, 활동을 예전만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인천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단체들의 위기인 것 같다. 오히려 전문성을 가지고 최근 새롭게 생긴 단체들이 시민운동을 꽃피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운동을 잘 하려면 현장으로 가야하듯이 시민운동도 지역주민들이 있는 곳, 시민들이 있는 곳인 마을, 바로 현장으로 가야한다”며 “마을로 들어가 마을공동체를 꽃피우고 마을에서 만나는 시민들과 지역의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시민단체 활동가는 “바르게살기운동본부나 새마을협의회 등 이른바 보수적인 자생단체 회원들은 오히려 동네를 매일 돌아다니며 현안을 알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지 알고 있다”며 “정작 진보적이라는 시민단체들은 그들만큼 부지런하게 돌아다니고 동네를 잘 아는지 의문이다. 마을에 들어가 시민들을 만나야 의제도 발굴할 수 있고 대안도 찾을 수 있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이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참고문헌ㆍ인천시민사회운동 20년사 | 송정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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