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하다 - 경제민주화

새누리당, 사라진 경제민주화 다시 언급
민주당, 6월 국회 ‘을’의 절규에 답해야
정의당, 600만 입법청원 서명운동 전개


▲ 지난 5월 30일 인천시청에서 ‘인천중소상공인·자영업자 살리기 운동본부’가 발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근에 중소상인 여섯 명이 민생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남양유업과 배상면주가 사태는 빙산의 일각이다. 이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무능력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대형 유통재벌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한 일이다. 최근에는 유통재벌들이 편의점 형태로 운영되는 의약품ㆍ화장품 판매점을 헬스뷰티전문스토어라는 변종 기업형슈퍼마켓(SSM)으로 진출시키고 있다. 이건 또 규제에서 벗어난다. 유통산업발전법에 허가제를 도입하지 않는 이상, 뒤늦게 법을 만들더라도 법을 피해 다른 형태로 진화한다”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회장>

“평균소득이 100만원 될까 말까 한다. 그래서 편의점주 4명이 목숨을 끊었다. 국내 편의점은 2만 5000개다. 10년 전에 비해 두 배다. 점포가 많아질수록 본사는 무조건 수익이 올라가지만, 점주는 수익이 떨어진다. 그런데 계약관계는 노예관계다. 편의점 60%가 최저생계비 200만원도 못 벌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기득권 세력이 막고 있다” <방경수 전국편의점가맹사업자단체협의회 회장>

“문구점 시장은 대형마트가 60%를 점유했다. 연필 한 자루 팔기가 어렵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하고 있는데, 권고사항에 불과해 실효성이 없다. 게다가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불량식품 근절하겠다면서 학교 반경 200m 안에 있는 문구점에서 어린이식품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입법예고 했다. 우리가 취급하는 품목은 이미 식약청에서 허가 받은 제품들이고, 같은 제품들이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건 문구점을 없애겠다는 얘기다” <방기홍 전국학습준비물생산유통인협회 회장>

“모든 업종이 대리점에 과도한 매출 목표를 강제하고 있다. 본사가 강제하는 판매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수당이 없다. 그래서 스스로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밀어내기를 한다. ‘손해보고 삥친다’는 게 이거다. 판매거래약정서ㆍ판매장려금약정서가 있는데, 갑과 을이 합의하지 못하면 갑의 의견에 따른다고 돼있는 노예계약서다. 계약서 가이드라인(=정부 표준 계약서)을 의무화해 달라. 그러면 최소한 밀어내기 50%는 줄일 수 있다.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남양유업방지법’에 대해 ‘99%는 문제가 없는데 1%를 위해 법을 만들면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어느 대리점이든 좋으니, 우리랑 딱 3일만 같이 일해보자. 우리가 손해를 보는지 얼마나 예속돼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진태 농심특약점협의회 회장>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에만 있는 환산보증금이라는 게 있다. 환산보증금은 보증금에 월세의 100배를 더한 보증금이다. 예를 들어 보증금 2억원에 월세 300만원이라고 하면, 환산보증금은 5억원이다. 환산보증금이 3억원 이상이면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 제외된다. 서울 임대차상가 상인 75%가 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사실상 부자 임대인을 보호하는 법이다. 현행법에 임차료 상한선이 9%로 제한돼있지만 대부분의 상인들은 이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 정부 자료를 보면 창업 후 3년 내 70%가 문을 닫고 있다” <임영희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회장>

“30년째 도매업에 종사하고 있다. 저 같은 도매업체가 6만개, 소매업체는 60만개다. 재벌 식품업체가 도매업에도 변종 SSM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도매시장에 들어와 단가 후려치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1만원에 팔고 있는 것을 8000원에 풀기 시작하면 우린 문 닫게 돼 있다. 나아가 20만 중소제조업체도 망가진다. 중소상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중소상인 적합업종이 절실하다” <조중목 인천도소매생활유통사업협동조합 회장>

“한국지엠 대리점도 판매장려금이라는 게 있다. 판매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장려금이 안 나온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밀어낸다. 벼랑 끝으로 스스로 걸어가는 셈이다. 게다가 대리점 보증금을 본사에서 지원해주지만, 판매실적이 부진하면 지원이 끊긴다. 또한 현대ㆍ기아차 대리점은 본사와 계약이 체결돼 있지만, 우리 대리점은 한국지엠이 도입한 ‘메가딜러’와 체결돼있다. 우리는 어느 법에서도 보호받기는 커녕 지위도 없다. 우리가 ‘을’ 중에 ‘을’인데, 이런 경우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갑’은 한국지엠이 분명한데 ‘을’은 우리가 아니라 대기업과 중견기업으로 구성된 메가딜러다” <윤영길 한국지엠대리점연합회 회장>

전국‘을’살리기 비대위, 8대 입법과제 발표

이른바 남양유업 사태로 ‘갑의 횡포’가 불거지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편의점주 4명, 슈퍼마켓 주인 1명, 대리점주 1명 등 모두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배상면주가 부평대리점주의 빈소를 찾은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대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 벼랑 끝으로 걸어가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절규했다.

중소상인들의 잇따른 자살을 계기로 경제민주화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대선 공약이었지만 대통령 당선 후 사라졌던 경제민주화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다시 논의되고 있다.

민주당은 6월 국회를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경제민주화 국회’라고 선언했고, 진보정의당은 상인단체ㆍ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입법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갑의 횡포’를 참다못한 전국의 중소상인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5월 22일 ‘전국 중소상공인ㆍ자영업자 살리기 비상대책협의회’(=전국‘을’살리기비대위)를 발족한 후 중소상인 보호와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8대 입법과제를 발표했다. 이들은 오는 9일 여의도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어 입법을 촉구할 예정이다.

전국‘을’살리기비대위가 발표한 경제민주화 8대 입법과제는 ①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 ②가맹사업(=프랜차이즈)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 ③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 제정 ④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 ⑤유통산업발전법 개정 ⑥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개정 ⑦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 ⑧중소상공인 기본법 제정 등이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에 남양유업방지법은 빠져

경제민주화는 6월 임시국회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여야가 ‘경제민주화 입법과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사로 떠올랐다.

5월 31일, 새누리당 원내 대책위 워크숍에서 김기현 정책위 의장은 “이번 임시국회는 첫 번째 일자리 창출, 두 번째 하나 되는 경제민주화, 세 번째 일하는 국회”라고 밝혔다.

새누리당에서는 일감 몰아주기와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12건을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여기에는 가맹사업공정화법(프랜차이즈법) 등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있는 안건이 포함돼있다. 하지만 남양유업방지법은 안건에 포함되지 않았다.

민주당과 진보정의당은, 경제민주화 8대 입법과제를 이번 임시국회 때 처리해야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남양유업방지법은 민주당과 진보정의당이 공동으로 발의할 예정이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5월 28일 전국‘을’살리기비대위와 진행한 긴급 간담회에서 “일감 몰아주기, 단가 후려치기, 재고 밀어내기는 3대 병폐다. 반칙과 편법이 해소되지 않는 한 갑도 성장할 수 없다. 수직적이고 종속적인 갑ㆍ을 관계를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로 시정하는 게 갑도 살고 을도 살리는 길임을 정치권이 명심해야한다. 개선하기도 전에 상생을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을의 절규에 답하는 6월 국회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여야 정당 중 가장 먼저 당내 중소상공인위원회를 설치한 진보정의당은 상인단체,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600만 자영업자 입법청원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한편, 전국‘을’살리기비대위가 발족한 후 가장 먼저 인천에서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인천 중소상공인ㆍ자영업자 살리기 운동본부’가 5월 30일 발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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