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일 인하대 교수
희대의 성추행 사건으로 묻혀버렸던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중 발언이 최근 최대의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윤창중이 미국에서 도주하던 바로 그 시각에 대통령은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미국 기업인들을 만났다.

외자유치를 위해 마련했다는 자리에서 애커슨 제너럴모터스(GM: 지엠) 회장이 한국에 8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하겠으니 한국 정부가 나서 통상임금문제를 해결해주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이 즉석에서 통상임금은 “한국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다. 확실하게 풀어나가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통상임금이란 야간ㆍ휴일근무와 같은 초과근무, 연차, 유급휴가 등 각종 수당이나 퇴직금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노동자의 소득과 생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상여금 등이 포함되면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기본노동 외 수당이 높아져 수입이 오르고, 포함되지 않으면 그만큼 줄어든다. 즉, 재계와 노동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다.

일찍이 재벌 편에 서서 저임금ㆍ장시간 노동을 강요한 군부독재는 통상임금에 기본급만을 포함시켰다. 그 결과, 재계는 노동계의 임금인상 요구에 가급적 기본급을 억제하고 상여금과 수당을 올리는 편법을 써, 심한 경우에는 기본급이 전체 급여의 40% 정도에 불과한 기형적 임금구조를 낳았다.

그런데 노동 민주화 과정에서 통상임금의 범위가 꾸준히 확대돼왔다. 1995년 대법원이 전원합의제에서 ‘임금은 모두 근로의 대가’라고 선언했다. 그 후 매달이 아니더라도 정기적ㆍ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급여를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했으며, 2012년 3월에는 “분기별로 일정 금액이 지급되는 상여금과 근속수당도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했다.

이렇게 20여년에 걸쳐 어렵사리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 첨예한 노사 간 쟁점이 무지한 탓인지 실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사회적 갈등과 대립으로 점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재판의 공정성과 사법부 독립성을 침해하고 헌법을 유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더구나 GM(한국지엠)은 현재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진행해 1ㆍ2심에서 패소하고 대법원 상고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소송당사자다. 패소가 확정되면 약 1조원에 이르는 수당을 체불임금으로 지급해야할 형편에 처해 있다. 따라서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소지가 대단히 크다.

대통령의 무분별한 발언을 계기로 재계에서는 통상임금문제가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법원의 해석이 그대로 인정된다면 추가비용 38조원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뒤집어 해석하면, 노동자들이 38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을 부당하게 빼앗기고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의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국정비전은 물론, 경제민주화와 경제 활성화에도 반한다. 현재 기업의 투자 부진은 자금 부족 때문이 아니다. 천문학적인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팔리지 않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기업이 투자를 하겠는가? 기업의 인건비 지출이 증가해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고 내수가 확장되면 투자도 늘고 일자리도 많아질 것이다.

이번 대통령 방미의 참상을 접하면서 우리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당당하게 우리 이익을 대변하고 지키는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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