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선박 퇴출 위기 … 소청도는 대형 선박 끊겨

▲ 인천 연안부두와 덕적도를 오가는 여객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독점하려는 것”

남북관계 긴장으로 백령도를 찾는 관광객이 예년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당초 전망과 달리 올해 상반기 관광객은 지난해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인천 연안부두와 백령도를 잇는 여객ㆍ관광 사업에 ‘갑의 횡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인천에서 백령도를 취항하는 해운여객 업체는 청해진해운과 우리고속, JH페리 등 3곳이다. 청해진해운은 데모크라시5호(400톤급ㆍ358석)를, 우리고속은 씨호프호(350톤급ㆍ360석)를, JH페리는 하모니플라워호(2000톤급ㆍ564석, 차량탑승 가능)를 각각 운항하고 있다.

백령도는 인천에서 약 4시간 30분이 소요되는데 기상 악화 시 소형 선박은 출항할 수 없어 교통편이 끊긴다. 이 때문에 서해5도 특히 백령도 주민들은 대형 선박 취항을 바랐다. 이에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은 지난해 4월 2000톤급 배를 취항하게 했다.

연안부두와 백령도를 오가는 배편은 그대로였으나 대형 선박이 취항하면서 운항횟수가 늘고 여객수도 늘었다. 하지만 소형 선박업체는 여객수송 분담률이 현저하게 줄어 매출이 감소했고, 당초 기대한 배편 이용의 다양성이 실종된 반면에 여객운송사업의 독점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대형 선박회사인 대아해운의 자회사인 JH페리는 올해 5월 백령도 여행ㆍ관광 상품을 취급하는 여행사와 ‘승선권 판매에 관한 계약’ 체결로 사실상 자신들의 배편만 이용할 것을 유인ㆍ강제해 영세 선박업체의 경영을 어렵게 하고 있다.

백령도에는 여행사 8개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배편 예약과 숙박, 여행 가이드를 겸하고 있다. 이들은 백령도를 취항하는 해운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여행사들 대부분은 JH페리와 승선권 판매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는데, 계약서에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이는 조항이 들어 있다.

계약서에 따르면, JH페리(갑)는 여행사(을)가 경쟁사 선박(=청해진해운, 우리고속)을 이용할 경우 언제든지 승선 특별할인 계약을 취소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또 풍랑주의보 발령 시 다른 선박회사를 이용할 경우 할인가격이 아닌 정상요금을 청구하게 돼있다.

게다가 여행사가 계약 해지를 원할 경우 JH페리 쪽에 발생하는 손해를 ‘을’이 배상하게 돼있는데, 이 경우도 ‘갑’과 ‘을’의 합의가 아닌 ‘을’의 일방적인 배상책임이다. 또한 백령도 여객 유치를 위해 JH페리는 여행사 쪽에 광고와 홍보를 요구할 수 있고, 여행사는 무조건 응해야한다. 대형마트가 입점 업체한테 판촉비용을 전가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이 같은 독소조항을 담고 있는 계약이 체결됐음에도, 여행사들은 불이익을 우려해 노출을 꺼리고 있다. 업계에는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와 관련해 허선규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해양위원장은 “누가 봐도 부당한 계약이자 불공정거래 행위다. 대형 선사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여행사에 부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고 한 뒤 “여행사를 압박해 사실상 자신들의 배편만 이용할 것을 종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형 선박업체를 고사시켜 서해5도 여객사업을 독점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불공정거래·남용 행위에 해당할 가능성 높아

JH페리가 여행사와 체결한 계약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와 남용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 제23조는 사업자가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유인하거나 강제하는 행위, 거래상 자신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 등을 불공정거래 행위로 규정하고 이 같은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계약한 여행사가 JH페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선박회사를 이용할 경우 계약을 해지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한 대목은,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게 유인하거나 강제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여행사 쪽에 광고와 홍보를 전가하는 것도 자신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거래하는 것이므로 이 역시 불공정거래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공정거래법 4조는 ‘시장 지배적 위치’에 있는 사업자가 다른 사업자의 사업 활동을 부당하게 방해하거나, 부당하게 경쟁사업자를 배제하기 위해 거래하거나, 소비자의 이익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남용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JH페리와 여행사 간 계약서 내용은 부당하게 경쟁사업자를 배제하기 위한 거래로 볼 수 있다. 또한 여행사들이 JH페리만 이용해 독점으로 이어질 경우 소비자 피해도 우려되는 만큼 이 역시 남용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인천투데이>이 올해 1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선사별 운항실적을 파악한 결과, 백령도 여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만 2187명이 늘어난 9만 5941명을 기록했다. 이중 JH페리는 5만 2955명을 운송해 시장 점유율 55.2%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경쟁사인 청해진해운은 3만 8518명에서 2만 4540명으로 1만 3978명이 줄었고, 우리고속은 2만 4995명에서 1만 8446명으로 6549명이 줄었다.

공정거래법 4조는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인 사업자를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한다. 백령도 여객사업만 놓고 보면 JH페리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 해당한다. 다만 이 경우 연간 매출액이 40억원 미만일 경우 제외된다. 또한 시장점유율 계산 적용범위에 대해서는 유권해석이 필요하다.

JH페리 “소청도는 위험해 배 못 댄다”

JH페리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JH페리는 소청도 부두가 위험하다며 5월 16일부터 소청도에 배를 대지 않겠다고 선포한 뒤 이를 실행하고 있다. 소청도 주민들은 풍랑 발생 시 모든 배편이 끊기는 셈이다.

노모가 고향에 있어 한 달에 서너 차례 소청도를 왕래하는 박준복씨는 지난 21일 소청도에서 인천으로 나올 때 인천지방해양항만청과 옹진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JH페리가 주민들에게 배를 접안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당일 자리는 인천지방해양항만청과 옹진군 관계자들이 온다는 사실을 안 주민들이 항의하러 나갔다가 갑작스럽게 마련됐다.

그는 “수심이 얕고 부두 길이와 폭이 짧고 좁아서 여객 승하선에 위험이 따르고, 접안 시 정박한 어선들과 충돌 위험이 있어 배를 댈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뒤 수심 확보와 부두 보강이 이뤄져야 접안이 가능하다고 했다”고 당시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박씨는 JH페리의 이러한 설명은 배를 대지 않기 위한 핑계라고 했다. 그는 “부두가 위험해 지난해 여객운송사업 면허를 받을 때 조건부 면허를 받았고, 그 뒤 항만청이 본 면허를 내줬다. JH페리가 지적한 내용은 면허 발급 당시에도 예견된 일이었다. 열 달 동안 배를 대다가 이제와 못 대겠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게다가 부두 25m 구간을 보강했다. 그렇다면 면허를 내준 항만청이 문제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혀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운항하면서 예산을 반영해 보완하면 되는 문제”라고 한 뒤 “백령도에 비해 대청도와 소청도는 방문객이 적다. 또 소청도를 경유하면 20~30분이 더 소요된다. 아마도 수익성이 없다고 보고 배를 안 대려는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JH페리는 소청도와 대청도를 경유하겠다고 해서 면허를 받았다. 명백한 면허 조건 위반”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불공정거래 의혹과 소청도 미 취항 논란과 관련해 <인천투데이>은 JH페리 측에 반론과 해명을 요청했다. JH페리는 “해명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전화로 해명하는 것을 거부한다. 방문하면 해명하겠다”고 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