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면주가 부평대리점주가 연탄불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유서를 보면, 본사의 ‘물량 밀어내기’와 판촉행사를 떠안느라 빚이 늘었고, 경영상황이 어려워지자 막판에는 물품 공급에서도 제한을 받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본사가 재고 물량을 반품처리해주지 않았음도 짐작된다.

남양유업 사태에 이어 세상에 드러나고 있는 이러한 ‘갑의 횡포’는 해당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가시화되는 등, 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갑의 횡포’를 뿌리 뽑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16일 중소기업인 초청 만찬에서 “정말 불공정하고 억울한 갑·을 관계는 반드시 없어져야한다”고 한 뒤 “건강한 경제 생태계가 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은 발을 붙일 수가 없을 것”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박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하듯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남양유업과 배상면주가 등 유제품·주류업체들을 대상으로 현장조사에 나섰다. 그 범위를 식품업체 전반에서 자동차·통신업계까지 확대하고 있다. 국세청도 불공정 관행이 일반화된 업종들을 대상으로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불공정 거래 횡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갑의 가맹계약 해지라는 으름장 앞에 을은 항의조차 하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는 상위 1%의 ‘수퍼 갑’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왜곡된 갑·을 관계에서 오는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구조적인 노력 없이는 달라질 수 없다. ‘갑의 횡포’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함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정부와 국회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대리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규를 우선 신설해야한다. 본사와 대리점 간 동등한 지위를 보장하고,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업체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한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가 불발된 ‘프랜차이즈법’ ‘공정위 전속 고발권 폐지법’과 같은 경제민주화 법안이 계류 중이다. 이 법안들의 처리 여부는 정치권의 ‘갑의 횡포’ 근절 의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갑의 횡포’는 감시와 단속을 강화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감시가 소홀해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또다시 을을 압박할지 모른다. 법과 제도적 장치 마련이 우선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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