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손미숙 인천원스톱지원센터 상담사

▲ 손미숙 인천원스톱지원센터 상담사
“성폭력 피해자나 가정ㆍ학교 폭력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처음에는 트라우마(trauma: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로 고생하기도 했지만, 갈수록 내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행동과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함께 근무하는 경찰관뿐만 아니라, 일선 경찰서에서 일하는 경찰관도 상담을 꾸준히 받고 상담 공부를 했으면 한다”

성폭력과 가정ㆍ학교 폭력 피해자를 돕기 위해 설립된 인천원스톱(One-Stop)지원센터에서 7년 째 상담사로 활동 중인 손미숙(사진)씨가 한 말이다.

손 상담사의 근무지인 인천원스톱지원센터는 인천시와 인천지방경찰청, 인천의료원이 협력해 지난 2006년 3월 인천의료원에 설치됐다. 원스톱지원센터는 성폭력이나 가정ㆍ학교 폭력 또는 성매매 피해자인 여성과 청소년이 병원과 수사기관을 전전하며 2중, 3중의 피해를 받는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상담ㆍ진료ㆍ수사ㆍ법률지원을 통합 운영하고 있다. 전문 의료진ㆍ상담사ㆍ경찰관이 24시간 상주해 피해자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원스톱지원센터는 2002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공표한 ‘사회적 약자 보호정책’ 에 따라 2005년 8월 경찰병원에 처음 설치됐다. 현재 전국 20여곳에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인천시에는 지난 9일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에 인천북부 원스톱지원센터가 추가 설치돼 운영 중이다.

추한 사회 모습 날마다 목격
2년정도 상담, 트라우마 겪어

2006년 3월 말 문을 연 인천원스톱지원센터에서 접수한 성폭력이나 가정ㆍ학교 폭력 피해자는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2007년 907명, 2008년 950명, 2009년 963명, 2010년 1183명, 2011년 1293명으로 매해 늘었다. 2012년엔 980명으로 줄었다.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폭력 사건으로 원스톱지원센터를 찾는 피해자들은 연간 1000명을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원스톱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상담사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추한 모습들을 날마다 마주해야한다. 손 상담사는 원스톱지원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자신의 비정상적인 심리 반응을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보여 난처한 경우를 당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두 딸을 키우는데, 지원센터에 근무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들과 남편에게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다. 딸이 학교나 학원에서 끝나는 시간이 지났는데, 귀가가 늦어질 경우 왜 늦었는지를 꼬치꼬치 따지고, 남편에게도 술자리에서 실수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게 됐다. 그랬더니, 아이나 남편이 ‘엄마 왜 그러냐’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손 상담사는, 직업상 힐링(=치유)이 필요해 보인다는 기자의 물음에, 일을 통해 자신이 치유되는 경험을 했고, 일을 할수록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2년 정도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아이와 남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가해자나 피해자를 보면 가정에 문제가 있어 오는 경우만은 아니었다. 이들을 통해 내 양육태도나 부모의 역할 등을 고민하게 됐다. 그래도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있듯이 집안 분위기가 밝으면 학교생활도 밝다”

손 상담사는 자신을 힐링하기 위해 책과 애니메이션 영화를 종종 본다고도 덧붙였다. 이어 성폭력과 가정ㆍ학교폭력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친구 간에 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남편과 맞벌이를 하고 있는 손 상담사도 주말만은 온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를 피해자로만 보고 대해야”

▲ 인천의료원 응급실 옆에 설치돼 운영 중인 여성·학교폭력 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

대한민국에서 성폭력의 피해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다. 사회적으로 갑ㆍ을 관계에서 을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 한 여성단체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여성일수록 성폭력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다.

손 상담사는 지난해 성폭력 상담 내용 가운데 절반이 직장에서 일어났고, 가해자의 80% 이상이 사업주거나 직장 상사였다. 그만큼 성폭력 피해자들은 사회적 약자가 많다. 하지만 성폭력이 꼭 갑ㆍ을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장미란 선수처럼 힘 센 운동선수도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3자가 보기에 (피해자가) 월등해도 (가해) 남성들은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꼭 얼굴 예쁘고 몸매 좋다고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선입견도 있었다. 성폭력을 몇 차례 입은 피해자를 처음에는 이른바 ‘꽃뱀’으로 의심하기도 했지만, 알고 보니 순수한 피해자였다. 피해자를 피해자로만 보고 대해야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힘든 일인데 어떤 때 보람을 느끼냐’는 물음에, 손 상담사는 “내 말로 사람들이 치유를 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 솔직히 내가 하는 일은 특별한 게 없다. 피해자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안타까운 피해자를 만났을 때 가끔은 밤새 뒤척이는 해도, 치유를 통해 다시 사회에 복귀하는 피해자를 볼 때 보람을 느낀다”며 “이 일을 평생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