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사람] 강석필 감독(인천영상위원회 사무국장)

▲ 강석필 감독
산 하나를 가운데 놓고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아이 키우는 게 걱정인 이웃끼리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생활협동조합도 만들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이번엔 학교가 필요했다. 학교도, 집도, 카페도, 극장도, 병원도, 모두 스스로 만들었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유명한 마을이 됐다. 그런데, 지도에선 찾을 수 없다.

“행정구역 이름이 아니거든요. 성산동ㆍ서교동ㆍ망원동 일대에서 ‘마을살이’를 함께 하는 이들을 일컫는, 공동체 이름이에요. 지리적인 테두리도 없고, 구성원이 누구인지 확실하지도 않아요. 보이지 않는 무형의 공동체죠”

‘성미산마을’이 어디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강석필(44ㆍ인천영상위원회 사무국장ㆍ사진)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 성미산마을은 1994년 마포구 성미산 일대에서 시작한 공동육아가 모태가 돼 형성된 마을공동체이다. 그가 성미산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이 5월 23일 개봉한다.

품앗이가 일상인 마을서 ‘맥가이버’로 통해

그가 마을길을 지날라치면 ‘맥가이버~’ 하고 누군가 그를 부른다. 아이어른 할 것 없이, 그는 이곳에서 맥가이버로 통한다. 고장 난 아이스크림 기계, 뻑뻑한 창틀, 뒤틀린 방충망, 막힌 배관이 수없이 그의 손을 거쳤다. 이 마을에선 품앗이가 일상이자 원칙이다.

강 감독은 2001년부터 성미산 일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굳이 ‘성미산 마을살이’는 2003년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마을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싶어 이곳에 온 건 아니에요. 말 그대로, 그냥 살기만 한 거죠. 그땐 공동체가 뭔지도 잘 몰랐으니까요”

그러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보낼 나이가 되자 고민이 시작됐다. “어떤 어린이집에 보내야 아이가 행복할지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공동육아에 관심이 많아 수도권 일대 공동육아 하는 곳은 거의 다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다들 대기자가 많더군요. 그래서 ‘익숙한 곳에 그냥 보내자’는 마음으로 성미산 공동육아에 아이를 보냈죠”

공동육아는 학부모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해 교육방식과 내용을 스스로 결정한다. 학부모들은 교육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대화의 주제도 교육이 주를 이룬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지식과 철학을 공유한다. 아이와 학부모가 함께 공부하며 커가는 곳이 바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다.

“학부모들과 자주 만나다보면, 술도 한잔 하게 되잖아요. 술자리에서 아이교육은 어떻게 할 건지, 아이가 행복한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이야기를 나눴어요. 어린이집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이후, 그 이외의 것들도 함께 고민했죠. 그러는 사이 인간적인 관계가 만들어지더군요. 아이를 마을이 함께 키운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때가 제 마을살이의 시작이죠”

2010년 성미산에 닥친 위기

그는 2007년부터 성미산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무심코 툭 내뱉은 말이 여러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보태지면서, 어느 샌가 진짜 실행이 되더군요. 반찬가게ㆍ카페ㆍ마을극장이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사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어 보였죠. 이 모습을 다큐로 만들면 어떨까 했는데, 주위에서 응원해줬어요. 그래서 시작했죠”

그는 성미산마을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세 편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1부는 마을에서 커가는 아이들의 성장과정, 2부는 이웃들의 일상, 3부는 50대가 된 마을 1세대들의 새로운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2010년, 마을에 위기가 닥쳤다. 성미산을 깎아 학교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서울시에서 허가했기 때문이다. 나무는 잘려나갔고 숲에는 출입금지 테이프가 쳐졌다. 마을 사람들에게 산은 놀이터이면서 학교이자 휴식처였다. 산을 지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하나로 뭉쳤다. 원래대로였다면 2부였을 마을 주민들의 삶이 이일을 계기로 가장 먼저 스크린을 통해 전국에 퍼져나가게 됐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춤추는 숲’에 담겨 있다.

고창석·정인기, 홍보 비디오로 재능기부

일을 벌이는 것이 일상인 마을주민들에게 ‘춤추는 숲’은 커다란 이슈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일상이다. 주민들의 품앗이로 마을을 가꿔왔듯, 제작과정 곳곳에도 주민들의 손길이 숨어 있다.

“일상을 촬영하다보니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없는 경우가 많았어요. 갑자기 ‘차를 타고 가면서 이 거리를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제가 운전하면서 촬영까지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핸드폰을 열고 도와줄 사람이 생길 때까지 전화를 해요. 실패한 적이 없어요”

강 감독의 윗집에 산다는 배우 고창석씨는 배우 정인기씨와 함께 ‘춤추는 숲’ 홍보 뮤직비디오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뮤직비디오 촬영에는 영화 ‘고지전’ ‘만추’ 등을 찍은 동네주민 김우형 촬영감독이 나섰다. ‘경계도시’의 홍형숙 감독은 ‘춤추는 숲’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홍 감독은 그의 아내다. 영화 홍보를 위해 청소년들은 홍보팀을 따로 꾸려 움직이고 있다. 마을카페에는 ‘춤추는 쌀 항아리’도 생겼다. 마을 주민들이 한줌씩 모은 쌀로, 개봉일에 맞춰 개봉관을 찾는 관객에게 나눠줄 떡을 할 계획이다.

‘춤추는 숲’은 지난 제10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제38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23일 전국에서 동시 개봉한다. 인천에서는 부평 롯데시네마에서 볼 수 있다. ‘영화공간주안’에서는 30일부터 상영한다.

“상업영화에 익숙한 분들에게 다큐멘터리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편식하는 것보다 다양한 맛을 경험해보는 게 훨씬 즐거운 것처럼 영화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자꾸 접하시다보면 다큐멘터리도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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