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책으로 세상 읽기 18.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민음사

인천투데이=신현수 시민기자

이반 일리치의 죽음 | 레프 톨스토이 | 민음사

붓글씨 선물할 때 즐겨 쓰는 구절이 있다. “사랑을 미루지 마라”. 톨스토이의 일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가 어느 여관에 머물고 있을 때, 그 집 어린 딸이 톨스토이의 가방을 갖고 싶어 했다. 그는 당장은 쓸 일이 있어서 나중에 주겠다고 약속한 다음 여관을 나왔다.

그가 다음에 가방을 들고 다시 찾아갔으나 소녀는 병으로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그는 그 딸의 무덤에 가서 그 가방을 걸어 주었다. 훗날 누군가가 “사랑을 다음으로 미루지 마라”라는 글귀와 함께 돌로 가방을 만들어 무덤 앞에 걸어 주었다고 한다.

레프 톨스토이, 문학의 위대한 거장이자 사상가이며 철학가

톨스토이는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비롯해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첫 구절로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많은 설명이 필요 없는 <부활> 등의 소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 인물의 이름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함부로 붙일 일은 아니지만, 톨스토이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작가다. 단순히 작가 또는 소설가로만 불리기에는 그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

대부분의 문학 사전은 톨스토이를 “러시아 작가, 사실적 소설의 거장,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의 한 명, 러시아와 서양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문호” 외에도 “도덕적, 종교적 사색가, 그리스도교적 아나키스트”로 쓰고 있다. 그는 문학가뿐만 아니라 사상가, 철학자, 종교가, 구도자로도 역사에 호명되고 있다.

톨스토이는 1828년 모스크바 근교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4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톨스토이가 두 돌이 되기 전에 어머니가 막내 여동생을 낳다가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도 톨스토이가 아홉 살 때 뇌출혈로 급사했다. 열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후견인이었던 큰고모도 열네 살 때 사망했다. 죽음은 어린 시절부터 그의 주변을 늘 서성거리고 있었다.

1844년 카잔대학교 동양어학부에 입학했고, 이듬해 법학부로 전과했지만 1847년 대학을 자퇴한다. 한때 모스크바에 체류하며 도박으로 거액의 빚을 지는 등 방탕하고 무분별하게 살아가던 중, 1851년 맏형 니콜라이가 있는 캅카스(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코카서스) 지역에서 군 복무를 한다.

당시 러시아는 캅카스 지역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때 체험 때문에 톨스토이는 평화주의로 기울게 된다. 레프 톨스토이는 명문 톨스토이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당시 러시아 일반 사회, 특히 농민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는 34세 때인 1862년, 18세였던 소피야와 결혼한다. 소피야는 세간에 ‘악처’로 잘 못 알려졌으나, 사실은 야무진 안주인이었고, 남편의 훌륭한 ‘매니저’였다. 톨스토이는 결혼한 이후 죽을 때까지 몇 차례 여행을 제외하고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1869년에 필생의 역작 <전쟁과 평화>를 완성했고, 두 번째 걸작 <안나 카레니나>를 1878년에 출간했다. 본인은 <전쟁과 평화>보다는 <안나 카레니나>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안나 카레니나>를 쓰고 있던 해에 톨스토이는 갑자기,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톨스토이는 그 후 원시 기독교사상에 몰두하며 사유재산제도, 러시아 정교회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어떤 폭력이나 무력도 해로운 것이며, 폭력에는 비폭력으로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로 대표되는 무력과 사유재산 등 모든 형태의 강제적 힘에 반대하는 사상을 펼쳤다. 그는 특히 토지 사유제를 부정했는데,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술과 담배를 끊고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했으며, 빈민구제 활동에도 매진했다. 그는 늘 인간의 유일한 이성적 활동은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에 <인생론>, <참회록> 등 에세이를 저술하면서 자신의 재산과 영지를 포기하고 금욕적인 삶을 선택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민음사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민음사

죽기 전까지 말을 타고, 낫으로 풀을 베고, 도끼로 장작을 팼다.

소설 쓰기를 중단했던 톨스토이는 1886년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시작으로 다시 소설 쓰기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러시아 민담과 설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성경의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들려줄 수 있는 민담 형식의 단편소설들을 많이 써내기 시작했다.

유명한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하느님은 아시지만 기다리신다> 등이 그것들이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걸작은 1899년에 나온 <부활>이다. 자신의 사상과 종교관을 집대성한 <부활>은 네플류도프와 카츄사의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으로 유명하다.

말년이 되면서 그는 모든 재산과 저작권을 포기하는 문제로 부인 소피야와 갈등이 심해졌다. 가족 중 딸 알렉산드라만이 그를 이해해 주었다. 그는 역사상 장수한 위인 중의 한 명이었다. 건강을 타고난 그는 죽기 전까지 말을 타고, 낫으로 풀을 베고, 도끼로 장작을 팼다.

그는 82세 때 농민과 같은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딸과 함께 집을 나왔다. 1910년 10월 29일 아침, 막내딸 알렉산드라를 데리고 가출성격의 도보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11월 7일 아스타포보역 역장의 관사에서 폐렴을 앓다가 새벽 6시 5분에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러졌다. 시신은 운구 돼 그의 고향인 야스나야 풀라냐에 묻혔다. 무덤에는 그 흔한 비석조차 세우지 않았다.

아스타포보역은 1918년에 톨스토이를 기리기 위해 '레프 톨스토이' 역으로 개칭되었는데, 2014년에 폐쇄됐지만 건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역 건물에 톨스토이가 사망한 6시 5분으로 맞춰진 시계가 걸려있다고 한다.

그는 아내 소피야와 사이에 자식 13명을 두었는데, 그중 다섯 명은 어린 시절에 죽었다. 막내딸인 알렉산드라는 56세에 얻었으며, 막내아들인 이반은 그의 나이 60에 태어났다. 톨스토이는 볼테르의 명예와 루소의 인기와 괴테의 권위를 모두 이룬 위인이었다.

톨스토이는 ‘작가들의 작가’로도 불렸는데, 유명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작가들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조사에서 <안나 카레니나>가 1위로, <전쟁과 평화>가 3위로 뽑혔다고 한다.

레닌도 “톨스토이는 거대한 바윗덩어리이자 엄청난 거인이다. 톨스토이가 등장하기 전까지 문학에 진정한 농민의 모습은 없었다. 유럽에 그와 비견될 수 있는 예술가는 없다”라며 극찬했는데, 레닌뿐만 아니라 톨스토이에 대한 작가들의 예찬은 차고도 넘친다.

막심 고리키는 “톨스토이는 하나의 세계이다. 톨스토이를 읽지 않은 사람은 문화인이라고 할 수 없고, 러시아를 아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말했고, 도스토옙스키는 “톨스토이는 예술의 신”이라고 말했다.

안톤 체호프는 “작가로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거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 인정하는 것도 비통한 일이 아니다. 톨스토이가 모두 해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고, 제임스 조이스는 “톨스토이의 이름은 나에게 러시아어로 위대함을 뜻한다.”라고 말했다. 윌리엄 제임스는 “그의 소설들을 읽고 난 후 다른 작가들의 소설은 아이들이 쓴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죽음 앞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는 소설 ‘이반 일리치’

앞에서 말한 것처럼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발표한 뒤 한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러면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천착했다.

그러다가 어느 검사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하고, 이 사망 소식에 착안해 소설 한 편을 완성했다. 그게 바로 그의 사상과 인생관이 집약된 소설로 평가받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인생의 궁극적 목적과 의미, 죽음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인간의 근원적 질문,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삶인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등의 물음에 대해 톨스토이가 공들여 써서 후세에 보낸 답장이라고 할 수 있다.

모파상은 “나의 작품 100편이 모두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을 이 작품을 보고서 알았다.”라고까지 말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주인공 이반 일리치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자기 삶이 사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에 낭비되었음을 깨달아가는, 길지 않은 중편소설이다.

전체 12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2장과 3장은 주인공의 사십오 년 인생에 대한 요약, 4장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주인공이 병원을 찾아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통고받는 장면, 5장부터 12장은 그 후의 투병기이다.

1장은 죽음 직후의 풍경이다. 시간상으로 뒤에 일어난 일을 소설 속에서는 거꾸로 맨 앞에 배치시켰다. 죽음 직후의 풍경은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다.

“법원 사무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동료 이반 일리치의 부고를 전해 듣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아울러 자신에게 일어날 변화, 즉 승진과 인사이동 따위를 헤아려 본다. 더불어 문상하는 수고로움과 유족들에게 건넬 위로의 말을 고민하며 내심 성가셔한다.”

이 소설은 “이반 일리치가 지나온 인생사는 가장 단순하고 평범하면서도, 가장 끔찍한 것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반 일리치는 고위 관료의 차남으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을 보냈다. 형이나 동생이 있었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기대주였다. 법률학교 성적도 우수했고, 첫 직장인 도지사 보좌관직을 5년간 수행하면서 업무 능력, 사교 능력 등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두 번째 직장인 예심 판사 업무도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하며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다가 사교계 모임에서 만난 미모와 지성과 재산 등을 겸비한 여성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 미헬을 만나 결혼한다.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고 번듯한 가정을 이룬 이반 일리치는 어느 날 옆구리를 다쳤고, 그게 원인이 되어 건강이 급격히 악화했다. 그는 점차 죽음이 임박해 오고 있음을 자각하면서 과연 자신이 좋은 삶을 살아왔는지, 정녕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인생이란 무엇인지 자문하며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다는 걸 알고 절망한다.

병에 대한 일리치의 태도는 “회의, 의심, 경악, 분노, 투쟁, 회의, 좌절, 수용” 등으로 진행된다. 인간 누구나 중병이나 죽음을 앞두고 겪는 순서 그대로다.

현재 이반 일리치를 만들어 준 것들, 당시에 기쁨으로 여겨지던 모든 것들이 이젠 그의 눈앞에서 하찮은 것으로 바뀐다. 심지어 역겨운 것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어린 시절에서 멀어질수록, 그리하여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그 기쁨들은 더욱 하찮고 의심쩍은 것들로 변한다.

“문제는 맹장도 신장도 아니야, 삶과… 죽음의 문제다”

톨스토이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들을 이반 일리치의 목소리를 통해서 직접 들어 보자.

“모든 것이 한결같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죽음 같다. 산을 오른다고 상상하지만, 사실은 꾸준히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산을 오르는 만큼 삶은 내 밑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제대로 했는데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단 말인가?”

“문제는 맹장도 신장도 아니야, 삶과… 죽음의 문제다. 그렇다. 삶이 있다가 지금 떠나는, 떠나는 중인데도 나는 그것을 붙잡아 둘 수 없다. 그렇다. 뭣 하러 나 자신을 기만할 것인가? 내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나만 빼고 모두 분명히 아는데. 문제는 오직 몇 주냐, 며칠이냐 하는 것뿐이야. 어쩌면 지금일지도 모른다. 빛이 있었지만, 바야흐로 암흑이다. 내가 여기에 있었는데 이제 저리로 가겠구나! 어디라고? 그는 오싹 소름이 돋았고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만이 들렸다.”

“내가 없다면, 그럼 뭐가 있을까?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없어진다면 대체 나는 어디에 있게 되는 것일까? 정녕 죽음인가? 안 돼, 싫어. 뜬눈으로 어둠을 응시하며 자신에게 말했다. 죽음이라니. 그렇다. 죽음. 저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가엽어하지도 않는다. 그저 즐길 따름이다. 어차피 다들 죽을 테니까. 바보같이 나는 좀 일찍, 저들은 좀 있다가 떠날 뿐이다. 저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도 신이 났군. 짐승 같은 놈들! 분노가 치밀어 오르자 숨이 막혔다. 너무 힘들어서, 너무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이 모든 일을 하셨습니까? 대체 왜 저를 이 지경까지 끌고 오셨습니까? 무엇을 위해, 무엇을 위해 저를 이토록 끔찍이도 괴롭히는 겁니까?”

“너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그가 들은 최초의 분명하고도 강력한 계시는 이렇게 표현되었다. 무엇이 필요한가? 대체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그는 자신에게 되뇌었다. 무엇이냐고? 고통 받지 않는 것? 사는 것? 그가 대답했다. 사는 것? 어떻게 사는 것 말이지?”

“모든 것을 제대로 했는데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단 말인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영화 '이키루'의 시민과장 와타나베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영화 '이키루'의 시민과장 와타나베 겐지

죽음 직면에 얻은 시민과장 ‘와타나베 겐지’의 깨달음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이키루>가 바로 그 영화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라쇼몽>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이키루>의 주인공은 시청에서 근무하는 노년의 남자 와타나베 겐지다. 시민과장이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영혼 없이 결재서류에 도장이나 찍는 게 주된 일이다. 겐지는 부인을 잃고 외아들 부부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영화는 동네 사람들이 하수구 처리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민과장은 아무 관심이 없이 그저 ‘우리 담당이 아니다. 다른 부서로 가라’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급작스럽게 복통이 몰려온다. 병원에 간 겐지는 진료 결과를 기다리던 중 다른 환자로부터 “의사가 걱정하지 말고 푹 쉬고, 밥 많이 드시라 하면 암에 걸렸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데 그 말을 의사로부터 그대로 듣게 된다.

겐지는 실의에 빠져 직장에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가버린다. 아들에게라도 위안 받으려 하지만 아들 부부의 관심은 아버지가 저축해 놓은 돈으로 집을 장만해 독립하려는 생각뿐이다.

겐지는 집을 나가 거리를 방황하다가 한 작가를 만나 허무한 인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작가와 같이 술집 등을 전전하면서 생전 안 마시던 술도 마시고, 파친코도 즐겨보려고 한다. 술과 도박 등을 통해 애써 죽음을 외면하려고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다가 함께 근무하다 그만둔 젊은 여직원 도요를 만난다. 도요는 공무원을 그만둔 후 인형 제조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도요는 자신이 만드는 장난감이 일본의 아이들을 기쁘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데, 그런 그녀에게서 건강함과 생명력을 느끼면서, 사소하지만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배운다.

겐지는 자신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시청으로 돌아온다. 그는 하수구 처리장 문제를 해결하고 그 자리에 놀이터를 만들어달라는 민원을 먼지 쌓인 서류 더미 속에서 다시 찾아낸다. 무시하는 다른 부서 관료들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결국 놀이터를 건립한다.

준공식 후 놀이터에서 눈을 맞으며 “사랑을 해요, 아가씨. 빨간 입술 변하기 전에 뜨거운 젊음의 피가 식기 전에 내일이라는 날은 없는 것을”, 노래를 부르며 죽어간다.

겐지의 장례식장에서 부시장은 놀이터 건립이 자신의 치적이라며 장례식장 밖 기자들과 인터뷰한다. 영화와 소설 모두 똑같이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맺는다. 다만, 소설에서는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하늘을 원망하면서 그냥 죽어가고, 영화는 참된 삶이 무엇인지 깨달은 후 죽어가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소설을 통한 톨스토이의 질문에 대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로 써낸 정답으로 비유하면 될 것 같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리빙 : 어떤 인생」도 배경만 영국으로 바꿨을 뿐 줄거리는 <이키루>와 거의 같다.

영화 어떤인생
영화 어떤인생

“자비, 네 이웃을 사랑하라, 기소불욕 물시어인” 미루지 마라

긴 독후감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 이반 일리치는 죽을 때까지 “나한테 왜 이러시냐”며 하느님을 원망했다. 안타깝다. 사실 이반 일리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고, 부와 명예 등 세속의 많은 것들을 이루었다. 그러면 문제는 뭘까?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럼 그의 삶에서 무엇이 부족했을까? “나는 왜 사는가?”, 즉 “삶의 이유”였다. 그는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을 찾지 못하고 병고에 시달리다 죽어갔다.

사실 정답은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다. 영화를 통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말한 것처럼 바로 ‘남을 위해 사는 것’이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주제이자 톨스토이가 이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톨스토이뿐만 아니다. 석가, 예수, 공자를 비롯해 이 세상에 먼저 왔다 간 모든 위인과 성인들이 이미 “자비, 네 이웃을 사랑하라, 기소불욕 물시어인” 등등으로 귀가 아프도록 거듭거듭 가르치신 바다.

인간의 삶과 인간의 시간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건 결국 “타인을 위한 행동”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사랑을 미루지 마라! 남을 위해 살아라!”, “삶의 비의와 정답”을 이미 다 알고 있다. 다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뿐….

신현수 시인은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 모임(방갈모) 상임대표, 국제민주연대 이사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직무대행), 서울문화재단 이사, 인천문화재단 이사,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다.
신현수 시인은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 모임(방갈모) 상임대표, 국제민주연대 이사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직무대행), 서울문화재단 이사, 인천문화재단 이사,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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