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희 인천여성회 사무처장
얼마 전 동네 길을 걷다가 친구들과 나란히 걸어가는 아이를 향해 “다른 사람들 통행에 방해되잖아. 한 줄로 가지”라는 말을 했다.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떠올라 아이들에게 “미안, 어른들은 항상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면서 너희들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것을 방해했네. 너희들 잘못이 아니라 길을 이렇게 좁게 만든 어른들이 잘못한 건데 말이야”라고 사과를 했다. 그러면서 자가용이나 어른 중심이 아니라 보행자나 아이들을 위해 인도를 좀 더 넓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울러 아이들이 아파트단지나 동네 길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롤러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노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에 제지만 하지 정작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동네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동네에서 주로 생활하는 아동, 청소년, 여성, 노인이 보다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미국 내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빈민촌 로세토의 심장병 발병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다른 곳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사실에 주목해, 미국 학자그룹이 그 원인을 분석했다. 그 결과, 로세토 사람들의 생활습관이나 조건은 의학지식을 뒤집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날마다 소시지나 미트볼 같은 기름진 음식을 먹었고, 술도 많이 마셨으며, 지나친 흡연에 매우 열악한 노동조건까지, 심장에 좋지 않은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연구진을 고민에 빠트린 수수께끼의 실마리는 ‘공동체’에서 풀렸다. 이웃끼리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대소사를 함께 해주는 분위기가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든든한 사회안전망으로 작용해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마을은 1980년대 중반이 되면서 미국의 여느 도시와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 이유는 전통적 생활방식이 쇠퇴하고, 미국의 주류사회에 가까워지게 됐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졌지만, 지역공동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면서 ‘로세토 효과’가 약해진 것이다. ‘로세토 효과’는 우리에게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준다.

지금 인천시에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 조례’가 논의되고 있고, 각 자치구에서는 마을만들기 공모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인천형 마을만들기, 동네살이 등 풀뿌리 공동체 활동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다양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동네는 행정의 가장 작은 단위라는 의미도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삶터라는 것이다. 동네에서 주로 생활하는 아동, 청소년, 여성, 노인은 행정에서도 동네 자치에서도 권력으로부터 비껴나 있다. 다양한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존중될 때 공동체는 형성된다. 이제 인천에서도 마을만들기가 활성화되고 있다.

다양한 구성원들의 요구가 모아지고, 함께 토론하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좋은 이웃들이 모이고, 세대가 소통하는 과정에서 함께 사는 동네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대해본다. 또한 그것이 한 동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많은 동네로 잘 흘러 더 큰 공동체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편으론 행정시스템과 주민공동체의 운영 주기가 같은 것은 아니기에, 행정과 주민공동체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구조를 만들고, 그 속에서 동등한 관계 맺기가 이뤄질 수 있었으면 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급하게 가기보다는 함께 멀리가기 위한 충분한 의견수렴과정이 전제돼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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