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의 상징인 푸시산 (1)

인천투데이=천영기 시민기자|

루앙프라방의 상징 ‘푸시산’

루앙프라방에 온 관광객들은 거의 대부분 푸시산을 오른다. 실제 ‘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거대한 산이 아니니 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높이는 100m로 계단 대략 300개를 오르면 되니, 한국의 동산이나 언덕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래도 계단 300여개를 쉬지 않고 오르면 다리가 퍽퍽해진다. 사진을 찍어가며 자신의 체력에 맞게 쉬엄쉬엄 올라도 20분이 지나지 않아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도시 전체가 산악에 둘러싸여 있는 분지 형태인 루앙프라방. 왼쪽에 남칸강이 흐른다.
도시 전체가 산악에 둘러싸여 있는 분지 형태인 루앙프라방. 왼쪽에 남칸강이 흐른다.

루앙프라방은 전형적인 산악 지형으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루앙프라방시는 도시 전체가 산악에 둘러싸여 있는 분지 형태이다. 그래서 시내에는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다.

이곳 한글학교에 머물며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뿜어내는 매연과 혼잡함을 피해 매일 시내의 한적한 골목길을 걸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걷다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잘 모를 때 구글 지도를 보지 않아도, 푸시산의 황금색 탑을 바라보면 자신이 있는 위치를 대략 알 수 있어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시내 전체가 대체로 평평한데 유독 푸시산만 우뚝 솟아있어 루앙프라방 주민들은 이 산을 우주의 중심으로 여긴 것 같다.

방향을 짐작케 하는 황금색 푸시탑.
방향을 짐작케 하는 황금색 푸시탑.
푸시산과 황금색 푸시탑.
푸시산과 황금색 푸시탑.

관광자료들을 찾아보면 ‘푸시(Phu si)’를 라오어로 ‘신성한 언덕’이라는 뜻으로 설명하는데, 라오스 사람들은 신성하다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실제 ‘푸’는 라오어로 ‘산’ ‘시’는 할아버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해석하면 ‘할아버지 산, 즉 조상의 산’이 된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냐”고 물으니 알아보겠다고 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란쌍왕국 시절 전쟁할 때 푸시산 정상에 서면 루앙프라방 시내 사방을 조망할 수 있어 전망대로 사용됐다고 한다.

그리고 전설에 의하면 1세기 무렵 원숭이 신 하누만이 스리랑카에 있던 푸시산을 루앙프라방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다 1804년 아누라트(Anourat)왕이 푸시산 정상에 푸시탑을 건설한 이후 그들에게 성스러운 산으로 서서히 자리 잡았다. 현재 푸시산은 루앙프라방 주민들에게 정신적·종교적으로 그들의 지주 역할을 하고 있으며, 루앙프라방을 대표 하는 상징물이 됐다.

‘푸시산’에 오르는 길

‘루앙프라방 국립 박물관’ 맞은편 계단으로 오르는 길.
‘루앙프라방 국립 박물관’ 맞은편 계단으로 오르는 길.

푸시산에 오르는 길은 대략 4곳이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르는 길은 ‘루앙프라방 국립 박물관’ 맞은편 계단으로 오르는 길이다. 항상 가보면 푸시산으로 오르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대부분 단체 관광객이기에 혼자 이들과 섞이다 보면 무슨 말이니 모를 온갖 종류의 언어들을 들을 수 있다. 간혹 한국말도 들리는데 부지불식간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것을 봐서는 역시 나도 한국인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또 그 왼쪽으로 길게 한 블록 가서 가게들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시부타밧 사찰(Wat Siphoutthabat, 부타밧은 ‘부처님의 발’을 뜻함)이 나온다.

시부타밧 사찰(Wat Siphoutthabat) 법당 뒤에서 부처님 발자국으로 오르는 길.
시부타밧 사찰(Wat Siphoutthabat) 법당 뒤에서 부처님 발자국으로 오르는 길.

이 사찰 대법당 뒤편으로 가면 부처님 발자국이 찍혔다는 곳으로 올라가는 긴 계단이 있다. 경사가 완만하고 그리 높지 않아 아마도 푸시산으로 오르는 가장 편한 계단 길일 것이다. 물론 이 길은 ‘탐모사찰’로 이어진다.

반대편으로는 다라마켓에 붙어있는 ‘D&T 슈퍼마켓’ 옆 골목길 주택가를 따라 올라가는 방법이 있는데 올라가면서 빈부의 격차에 따른 라오스 주택들을 구경할 수 있다.

아래는 고급스러운 저택이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1970년대 서울의 산동네 판잣집을 연상시키는 주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 주택가를 지나면 숲길이 나오는데 역시 이곳도 ‘탐모사찰’로 이어진다.

다라마켓 옆 골목길 주택가를 따라 올라가는 길.
다라마켓 옆 골목길 주택가를 따라 올라가는 길.

그리고 ‘탐모 사찰(WATH THAMMO THAYA RAM)’ 계단을 올라 사찰을 구경하고 푸시산으로 오르는 방법이 있다. 예전에 관광객들은 주로 루앙프라방 국립 박물관’ 맞은편 계단으로 올랐다 내려왔지만, 요즘은 이곳으로 오르고 내리는 관광객들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박물관 쪽에 주차하기가 힘들어 동선을 바꾼 것이라 짐작된다. 아무튼 어디로 오르던 입장료는 2만낍(한국 돈 1300원 정도)이다.

다만 일출을 보려고 새벽에 오면 직원이 출근하지 않아 무료로 올라갈 수 있다. 지금도 루앙프라방 한글교실에 40여일 머무르며 새벽 일출을 보러 두 번 올랐다.

몇 차례 더 오르려 했으나 이상하게도 거의 매일 안개가 뽀얗게 낀 날이 계속된다. 그래서 일출을 보러 더 이상 오르지는 않았다. 어둑새벽에 올라야 하는 노력이 있지만 일출을 보고 못 보고는 그날의 운세에 맡겨야 할 것 같다.

탐모 사찰(WATH THAMMO THAYA RAM)’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길.
탐모 사찰(WATH THAMMO THAYA RAM)’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길.

루앙프라방에 와서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여행객이라면 푸시산의 일몰에 맞춰 ‘루앙프라방 국립 박물관’ 맞은편 계단으로 오르는 것이 좋다.

푸시산의 일몰은 루앙프라방의 일몰 명소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해가 떨어질 때면 보다 좋은 장소에서 구경하려고 수많은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을 이룬다.

그러나 여유가 있다면 ‘탐모사찰’ 방향으로 오르기를 바란다. 물론 사찰까지 오르는 계단은 꽤나 가팔라 쉬지 않고 오르면 허벅지가 조금 팍팍한 느낌이다.

산지의 협소한 공간에 사찰을 지었기에 땅을 다져서 그 위에 건물을 올린 것이 아니라,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건물들의 바깥은 긴 기둥으로 받쳐 마치 공중에 건물을 올린 형태로 지었다.

불상들의 향연 ‘탐모 사찰’

공중누각처럼 지어진 탐모 사찰 요사채들.
공중누각처럼 지어진 탐모 사찰 요사채들.

‘루앙프라방 국립 박물관’ 앞으로 오르는 것보다 ‘탐모 사찰’로 오르는 것이 볼 것도 많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가파른 계단을 헐떡이며 오르니 왼쪽으로는 스님들이 머무는 요사채가 공중누각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길 끝까지 가면 ‘부처님 발자국(Imprint of Buddha Foot)’이라 쓴 안내판이 보인다.

콘크리트로 지은 작은 전각 안에 머리를 디밀면 바위 위에 뚜렷하게 찍힌 발자국을 볼 수 있다. 조명이 어두워 사진에는 잘 찍히지 않았지만, 뒤꿈치는 확연하게 찍힌 자국이 남아있고 오른쪽은 발가락 자국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누각이 만들어지기 전 자연 속에서 풍화작용에 의해 발자국이 많이 마모된 것 같다. 라오스사람들은 이 발자국을 실제 부처님이 남긴 흔적이라 믿고 숭배한다.

‘부처님 발자국(Imprint of Buddha Foot)’으로 가는 길.
‘부처님 발자국(Imprint of Buddha Foot)’으로 가는 길.
부처님 발자국이 있는 콘크리트로 지은 작은 전각.
부처님 발자국이 있는 콘크리트로 지은 작은 전각.
또렷하게 보이는 부처님 발자국.
또렷하게 보이는 부처님 발자국.

‘탐모 사찰’ 앞 좌우로는 온통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데 공간에 여유가 있는 곳에는 각종 불상과 탑을 올려 마치 불상들의 향연을 보는듯하다. 거대한 불상들도 있다.

그리고 곳곳에 요일별 불상들을 배치했을 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불상들과 고승의 등신불들도 있다.

등신불은 실제 승려의 시신을 넣어 만든 불상은 아니고 그곳에서 도를 닦고 입적한 고승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일반 사찰에도 법당에 고승의 등신불을 모신 곳도 많다.

탐모 사찰 주변에 있는 각종 불상들.
탐모 사찰 주변에 있는 각종 불상들.

이곳에 재미난 불상이 있다. 동굴사원이라고 바위 밑에 굴을 파 부처님을 모시고 스님들이 용맹정진하던 곳이 있다. 평소에는 철장으로 닫았는데 이른 새벽과 주말에는 개방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옆에는 큰 바위 위에 누각을 짓고 부처님들을 모셨는데, 가운데 주불의 모양이 이곳 부처님들의 날렵한 모습과는 달리 배가 불룩 나오고 퉁퉁한 젊은 승려의 모습이다. 이 스님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동굴사원 내부에 모신 부처님.
동굴사원 내부에 모신 부처님.
배가 불룩 나오고 퉁퉁한 젊은 승려의 모습.(파상까자이 스님)
배가 불룩 나오고 퉁퉁한 젊은 승려의 모습.(파상까자이 스님)

옛날에 파상 까짜이 스님이 이 동굴에서 수행했단다. 그런데 워낙 외모가 뛰어나 까짜이 스님을 보기 위해 매일 여자들이 찾아와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래서 스님은 부처님께 자기 외모를 바꿔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며 음식을 많이 먹었다.

그 결과 몸은 뚱뚱해졌고 여자들도 더 이상 찾지 않자 피나는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됐다고 한다.

그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은 이 바위를 왼쪽으로 돌면 있다. 이곳 사람들은 두툼한 입술로 미소를 띠고 있는 이 부처님을 ‘해피 붓다’라 한다.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는 파상까자이 스님과 고승들의 등신불.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는 파상까자이 스님과 고승들의 등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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