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석 인하대학교박물관 학예연구사
백령도는 장산곶이 눈앞에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 있다.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도 들릴 것 같고, 저 앞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는 잘 있는지, 운치를 더한 바다가 제법 고즈넉하다.

하지만 백령도는 월내도와 마주한 섬이기도 하다. 김정은이 목선을 타고 다녀갔다는 섬. 배를 타고 나오던 김정은이 치켜든 손가락, 그 끝에 걸린 우리 해병대 기지가 국내에서 방영된 북한 TV에 나왔다고 섬 안이 떠들썩했다던 바로 그곳이다. 북한이 “백령도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발표하니 우리 국방장관이 찾아가고 방어훈련이 대대적으로 펼쳐지던, 서부전선의 최전방이다. 여기서 팔자 좋은 놈은 점박이 물범밖에 없다.

백령도와 월내도 사이에 있는 물범바위 위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350여 마리가 찾아와 허옇게 배를 내놓고 일광욕을 즐긴다. 물범 옆에서는 가마우지가 눈치를 보고, 그들을 해안가의 해병대 초소가 지킨다.

그러고 보니 해병대 출신 현빈이 근무했던 곳도 이곳이다. 외박을 나와 묵었다는 펜션은 벌써부터 일본까지 알려져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현빈뿐이랴. 백령도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우리 군인들이 주둔하며 지키던 백령진이 있던 곳이다.

그 흔적이 진촌리라는 마을이름으로 지금껏 남아 있다. 고려 군사들이 막으려했던 건 해적들이다. 본래 백령도는 해적들의 섬이었다. 서해의 해금강 두무진은 천하절경이지만 말발굽 모양의 포구는 해적들이 숨기에 안성맞춤처럼 보인다.

해적들이 뛰놀던 이곳엔 아주 먼 훗날 천주교의 성지로 다시 태어나는 씨앗이 뿌려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마지막 활동을 벌이고 배를 타고 가다 붙잡힌 곳이 바로 백령도다. 새남터에서 처형돼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유해 중 일부가 지금 백령천주교회에 있다. 희망의 빛은 건축물로도 만들어졌다. 백령도 옆 소청도에 세운 등대는 팔미도등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등대로 기록돼있다. 1908년의 일이다. 백령도는 따지고 보면 외로운 섬만은 아니다.

바로 옆에 대청도와 소청도가 나란히 줄지어 있다.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 순제가 태자 시절 유배를 오기도 했던 대청도는 모래사막과 절벽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꿈 속 같은 비경으로 사람들의 찬탄을 받아낸다. 그런 아름다움이 백령도에서 소청도까지 막힘없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서해의 가장 북쪽에 있는 섬, 남북관계가 뒤틀릴 때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는 섬, 이 섬들을 가치 있게 되살릴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 가능성을 일본 세토우치의 작은 섬 나오시마에서 엿본다.

‘경제는 문화에 종속돼야한다’고 믿는, 그래서 ‘공익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영 이념을 내놓은 후쿠타케 소이치로와 걸출한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만나 이루어낸 나오시마의 재생은 현대미술이 밑거름이 됐다. 이웃한 섬들까지 영향을 미쳐 올해 모두 12개의 섬을 무대로 개최되는 ‘세토우치 국제 아트 페스티벌’은 예술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 시들어가는 땅에 어떻게 생명의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인간과 자연과 예술이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생히 보여준다.

백령도에 예술과 문화의 씨앗을 심자. 예술가들을 보내고 섬의 문화를 발굴하고 역사를 캐내서 서해의 끝 섬이 다시 바다의 중심이 될 수 있게 격려를 아끼지 말자. 그래서 섬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주민들이 잘 살게 되고 남북을 평화의 길로 이끄는 그런 섬이 될 수 있게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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