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평화복지연대 평화통일위원장 장금석

지난해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개최된 북의 조선노동당 8기 중앙위원회 9차 전원회의 결과는 남북관계에 커다란 전환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신년사를 대신해 발표된 이번 회의 결과에서 북은 ‘남과 북의 관계가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니며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이자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다.

또한 북측은 ‘미국과 남한이 군사적 대결을 기도하려 든다면 핵전쟁 억제력을 이용한 전쟁도 불사할 것’이며 ‘전쟁이 난다면 전 영토를 평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족이라는 것이 과연 부정한다고 바뀔 수가 있는 것인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남과 북은 이미 정전협정 상 교전 중인 적대국 관계라는 점에서 북의 이번 발표가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남과 북은 이미 내적으로는 민족 관계로, 외적으로는 국가 관계로 지내왔기 때문이다.

1948년 분단 이후 통일은 민족 전체의 최대의 과제였다. 그렇기에 이를 포기하는 듯한 북의 발표는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영토완정’은 한국전쟁의 아픔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민족구성원 다수에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으로까지 인식되었다.

그렇다면 이를 모르지 않을 북은 도대체 왜 ‘영토완정’을 꺼내 든 것일까 그 의도와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영토완정’이란 미 해방된 영토를 되찾아 본래의 모습인 하나의 나라, 하나의 체제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해방 이후 북한 김일성 주석이 주장했던 ‘국토완정’과 다르지 않다.

민주기지론 폐기 이후 사라졌던 영토완정은 2022년 9월 8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에서 제정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이하 핵무력 정책법)’에서 그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이는 영토완정이 무력 사용을 내포한 개념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아울러 이는 2019년 2월 노딜로 끝난 하노이 북미회담 이후 2021년 1월 개최된 조선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강대강 노선을 채택한 이후에 나타난 변화다.

그렇다면 북은 왜 ‘영토완정’의 개념을 부활시킨 것일까? 그 이유는 첫째, 북은 영토완정이라는 개념을 통해 현재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 적대성을 드러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측이 자신들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전쟁준비와 선제타격을 운운하는 상황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는 미국과 남한이 자신들을 적대시하고 군사적 대결을 기도한다면 영토완정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한미 양국의 북측에 대한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국가 관계로 규정하긴 했으나 아직 통일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나타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국 관계에서는 설사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영토완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력에 의한 일방적인 국경변경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중국이 타이완을 상대로 주장하는 영토완정 또한 하나의 중국이라는 명분이 있기에 성립될 수 있는 주장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북이 다시 꺼내든 ‘영토완정’에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적대에 대한 비난과 함께 북미관계 개선과 남북협력 노선을 폐기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자력갱생을 통한 독자생존의 의지인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북측의 변화를 두고 호전성만을 강조하며 북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의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모습은 무지이거나 무능 그 자체다. 그 사이 한반도에는 전쟁 위기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미국의 핵전력 자산이 시도 때도 없이 한반도의 해상과 공중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이에 맞선 북의 대응도 날로 빈번하면서, 고도화되고 있다. 국민의 동의 없이 일본까지 끌어들인 한미일 군사훈련은 북중, 북러 군사적 관계를 더욱 밀착시켜 동북아시아에 신냉전질서를 구조화시키고 있다. 한반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지금은 감정이 아닌 이성이 필요할 때다. ‘영토완정’이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장탄식과 실망이 아닌 새로운 실천 결심과 자기성찰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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