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상담팀장
지난주, 호주 버스 안에서 한국인 유학생과 그의 친척이 백인으로부터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들은 사건이 국내에 보도됐다. 중국계 호주인이 사건 현장을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렸기 때문에 이 사건이 알려질 수 있었다.

영상 속 가해자가 “왜 내 나라에 왔느냐. 일본 돼지야”와 같은 말을 쏟아내는 장면을 본 한국인들은 호주의 인종주의를 우려하며 분노의 댓글을 쏟아냈다. 사람이 꽉 찬 버스에서 한국인 가족들에게 욕설로 모욕과 수치심을 준 가해자에게 피해자는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

일단 호주에는 1995년에 제정된 ‘인종증오금지법(Racial Hatred Act)’이라는 것이 있다. 특정 국가의 출신자나 인종에 대한 비하를 금지하는 법안이다. 하지만 이 법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경찰이 조사과정에서 가해자에게 ‘인종차별’에 대한 죄를 묻지 않고 단순 폭행이나 모욕으로 사건을 축소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건을 그대로 한국사회에 가져와보자. 2009년 한국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한국 모 대학에 연구교수로 있던 인도출신 교수에게 일어난 사건을 떠올려보자. 술 취한 한국인은 이 사람에게 “더럽다. 아랍인이냐” 등과 같은 욕설을 했다. 물론 한국 안의 인종주의에 대해서 우려하는 반응들도 많았지만, ‘이것은 인종차별이 아니다. 술 취한 사람의 우발적인 행위이다’라는 반응도 있었다.

인종차별이나 증오를 담은 행위에 대한 마땅한 법률이 없는 한국에서 가해자는 개인에 대한 ‘모욕’으로 100만원의 벌금형을 처벌받았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가 ‘인종차별’로 인해 가해자가 처벌된 사례로 기록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인종차별’이 이슈가 됐을 뿐 가해자가 인종차별에 대한 죄로 처벌을 받은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위와 같은 일이 없을까. 위 사건 이후로 한국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구체적 처벌이 큰 이슈가 됐던 적은 없다. 그러나 인종차별은 지속되고 있다. 회사 상사가 캄보디아 노동자에게 “네가 못사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너를 때려도 나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위협을 가했다며 상담을 오기도 하고, 상사가 했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을 녹음해 오는 노동자도 있다.

어떤 분쟁이 생길 때마다 “내가 너를 너희 나라에서 데려왔으니 내말 잘 들어라. 안 그러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위협하는 것은 일상다반사이다. 그뿐인가. 인터넷만 접속하면 도처에서 특정 국가의 사람들을 비난하고 비방하는 댓글을 접할 수 있다. 한국 사람이 해외에서 겪는 차별의 문제들을 인종차별이라고 인식하며 비판하는 이야기들은 많아지고 있지만, 그 인식을 한국 안의 소수자에게 적용하는 수준은 미약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 난항을 겪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차별’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UN 이사회와 같은 국제사회에서도 수차례 권고를 받았던 사안이다. 2007년 참여정부 시절 입법 예고돼 제정을 시도하려했을 때 법무부의 차별금지법안에서 ‘병력,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성적 지향, 학력’이 삭제된 채 발의돼 논란이 일다가, 노회찬 전 의원이 삭제된 항목을 포함해 발의했으나 17대 국회의 회기가 만료돼 폐기된 바 있다.

2011년에도 발의됐으나 18대 국회 회기가 만료돼 폐기됐다. 현재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민주통합당의 최원식ㆍ김한길 의원이 각각 신체조건, 출신 국가ㆍ지역, 혼민ㆍ가족형태,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을 포함한 사회적 신분 등에 대한 차별을 명시한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의 통과는 요원해 보인다. 특정 집단을 혐오하는 단체들의 지속적인 압력으로 심지어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누구나 어디서든 어떤 형태로든 한 번쯤은 차별을 피부로 겪어보았을 문제이다. 그럼에도 법안을 제정하려고 시도하려할 때마다 난항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원인 중 하나가 ‘소수자 차별’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하는 언행이나 행위가 권력의 비대칭을 수반한 소수자에 대한 폭력이라고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머리를 가격해 놓고는 “때린 게 아니다. 열심히 하라는 차원에서 살짝 밀친 거다”라고 항변하거나, 이주노동자에게 욕설을 퍼붓고는 “일을 열심히 안 하니까 야단친 거다. 사장인데 말도 못 하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한 예일 뿐이다. 혹자는 ‘표현의 자유’라는 거창한 언사로 자신의 행위를 포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남용한 ‘약자에 대한 폭력’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떠한 시기, 어떠한 장에서 ‘피억압자’ 위치의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특정 집단을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집단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권력의 우위를 확인하면서 자기위안을 삼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이러한 집단들이 내세우는 자신들의 권리란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통한 기득권 유지에 다름 아니다. 바로 그 지점이 차별금지법 제정의 이유이기도 하며, 그렇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안은 현재 소수자운동의 어느 한 부분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모든 차별의 형태를 아우를 수 있는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제정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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