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동희 극작가
올해는 유독 변덕이 심한 봄을 맞는다. 남녘에서 조금씩 올라오면서 노랗거나 하얗게, 혹은 연분홍으로 갖가지 색의 화사한 꽃을 피우고, 들이며 산을 연한 녹색으로 물들이면서 생명을 다시 키워내는 덕에 반가이 맞는 계절이 봄이다. 하지만 올 봄은 고운 자태를 감춰둔 채로 4월에도 눈발을 날리며 오락가락이다. 그 덕에 여기저기서 겨우내 준비해온 봄꽃 축제들도 하늘을 원망하며 애만 태우는 꼴이다. 그래도 사방에서 봄은 곧 짙어지기 마련이다.

봄을 기다리기는 공연계도 마찬가지다. 무대를 활짝 열고 관객들에게 준비해온 공연을 선보인다. 한 해를 시작하는 공연은 큰 기대를 품기 마련이다. 오래되고, 더 어려워진 경기침체 탓에 이런저런 걱정을 앞세우면서도 마음 한쪽은 설레기 마련이다. 음악회, 무용,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 공연장마다 내 걸린 현수막들로 마음만은 풍성하다.

여러 공연 중에 눈길을 끄는 공연이 있다. 가족뮤지컬로는 드물게 10년 이상 공연 중인 ‘삼신할머니와 일곱 아이들’이다. 가족의 달에 맞춰 5월 4일부터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공연하는 이 작품에는 극단 십년후의 ‘십년 전 약속’이 담겨 있다.

‘삼신할머니와 일곱 아이들’의 첫 공연은 2002년이었다. 창작극은 힘들다는, 뮤지컬은 힘들다는, 더군다나 인천에서 대극장 공연은 무리라는 주위의 염려를 무릅쓰고 시도한 초연이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마지막 공연은 진눈깨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통로까지 관객으로 가득 찼다. 출연진은 물론 제작진 전체가 일궈낸 값진 결과였다.

공연 평가회 자리에서 당시 연출을 맡았던 송용일 극단 십년후 대표는 상기된 얼굴로 ‘삼신할머니와 일곱 아이들’을 10년 이상 가는 작품으로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마침내 이번에 그 약속을 지키게 됐다. 초연에 아이들로 출연했던 아역배우들이 성장해서 벌써 대학을 마치고 배우로, 사회인으로 당당하게 각자의 몫을 감당하고 있다. 그 당시에 자신의 역할을 맡은 아이들을 보면서 너무 귀엽다며 ‘좋아’라 한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지내놓고 보면 고생도 추억이 되기 마련이지만 지역의 극단이 대형 창작뮤지컬을 해마다 무대에 올리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수천만 원의 제작비를 감당하는 일도, 적당한 때에 공연장을 빌리는 일도, 스무 명이 넘는 출연진을 함께 모으는 일도,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출연하는 작품이어서 학교의 협조를 구하는 일도, 모두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이 작품을 10년 동안이나 거듭 공연하는 데에는 우리 고유의 설화를 바탕으로 생명존중이라는 주제를 재미있게 그려낸 ‘삼신할머니와 일곱 아이들’의 작품성이 우선으로 꼽히지만, 무엇보다 송용일 연출가의 공이 크다. 연출료는 물론이고 무대미술을 전공했던 덕에 무대세트 등의 비용을 감당하면서 꾸준히 무대에 올려왔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작곡, 안무, 분장, 음향, 조명을 맡은 제작진들도 정성을 보탰다.

올해의 공연은 특히나 의미가 남다르다. 지금까지 300회를 넘는 공연을 이어오면서 이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이 100명을 훌쩍 넘는다. 주인공인 삼신할머니 역을 비롯해 등장인물마다 몇 차례나 바뀌면서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가히 기념비적인 공연이 가까운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엔 무대의 변화가 주목된다. 영상을 이용한 판타지로 어린 관객들에겐 재미를 더했고, 삼신할머니의 감미로운 노래는 온가족을 즐겁게 한다. 연극배우의 실제 가족 6명이 같은 무대에 서는 배우들의 구성도 흥미롭다. 초연이후 서울과 제주를 거쳐 10년째 공연을 인천에서 다시 갖는다.

이젠 관객들의 몫이다. 극단 십년후가 지켜낸 십년 전의 약속에 대해 관객들이 화답할 차례다. ‘삼신할머니와 일곱 아이들’의 공연에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객석에서 극단의 약속을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지역의 공연을, 지역의 극단을 지켜내는 가장 든든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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