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사람] 윤학원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올해는 ‘인천’이라는 지명이 생긴 지 6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비류가 이 땅에 터를 잡은 시기부터 정명 탄생, 개항 등 성장과 도약을 지나 찬란한 미래를 맞이하는 장면을 600명이 함께 부르는 대합창으로 만들었습니다”

‘합창 지휘자의 대부’ ‘세계 최정상 지휘자’ ‘국민 지휘자’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이가 있다. 바로 윤학원(76·사진)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이다. 20일 오후 4시, 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리는 ‘인천 정명 600년 기념 특별연주회’는 윤 예술감독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으로, 이날 시민들에게 첫 선을 보인다.

특히 1, 2부로 나뉜 공연 중 2부에서는 600명이 부르는 합창에 영상과 해설이 어우러진 합창다큐멘터리 ‘오! 인천-정명 600년’이 장장 40분 동안 이어진다. 공연을 일주일 앞둔 지난 12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윤 예술감독을 만나 음악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기, 레슨비는 곡식 한 됫박

 

▲ 윤학원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윤 예술감독은 부모와 함께 교회에 다닌 덕에 일찍부터 음악을 접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교사에게 ‘노래를 잘 한다’는 칭찬을 듣고 자연스럽게 성악가를 꿈꿨다. 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았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교회 성가대의 노래를 듣고 합창의 매력에 푹 빠졌다. 멋진 화음을 이루며 합창을 하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얼마 후, 경연대회에 참가한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무대 위에서 그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변성기가 온 건데, 그때는 잘 몰랐어요. 성악은 이제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죠. 무대에서 울면서 내려왔어요”

그는 음악을 그만두고 화학자가 되라는 부친의 조언에 따라 인천공업고등학교 응용화학과에 입학했다. 그곳에는 새로운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천공고에 브라스밴드(=금관악기를 주축으로 한 밴드)가 있었던 것.

그는 이끌리듯 밴드부에 들어가 테너색소폰을 배웠다. 음악의 길을 가겠다는 결심도 굳혔다. 당시 인천공고에는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가 없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최영섭(‘그리운 금강산’ 작곡가)씨를 찾아가 음악 이론을 배웠다. 개인 레슨이었던 셈이다.

“여기저기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시절이었어요. 다 가난했죠. 레슨비는 곡식 한 됫박 정도였고, 없으면 안 받기도 했어요” 그는 연세대학교 작곡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음악인의 길에 들어섰다.

팽이 돌리던 동네 아이들, 어엿한 합창단원으로

대학 입학 후 다양한 영역의 음악을 접했지만, 그의 마음을 끄는 건 합창이었다. 3학년 무렵, 학내 기독교학생연합회 합창단을 지휘하며 스스로 지휘자가 될 역량이 있음을 확신했다. 소년합창단 지도법을 배운 후에는 그것을 실험해볼 수 있는 합창단을 직접 만들고 싶었다. 그의 눈에 동네 아이들이 들어왔다.

“동네에서 팽이 돌리고 자치기 하는 아이들 열다섯 명을 모았어요. 사탕 사주고, 아이스크림 사주면서요.(웃음) 노래를 잘하는 아이들은 아니었죠. 연습은 송현동에 있는 집에서 했어요. 집이 작아 마루와 안방 사이 미닫이문을 뜯어야 겨우 앉아 연습을 할 수 있었어요”

얼마 후, 그는 현 애관극장 근처에 있던 신신예식장을 빌려 합창연주회를 열었다. 동네아이들이 단독으로 무대에 오르는 공연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홍예문에 직접 만든 포스터도 붙였다. 공연은 성황이었다.

합창단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좋아하던 모습이 지금도 그의 눈에 선하다. 이 합창단은 이후 인천문화원 소속 어린이합창단이 되었고, 합창단원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극동방송 소년소녀합창단으로 발전했다. 윤 예술감독은 이 가운데 성악가가 된 이도 있다고 말했다.

청중 3000명,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대학 졸업 후 동인천중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를 하며 반 아이들로 합창단을 꾸렸다.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씩 연습해 전국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극동방송 합창단, 대우합창단, 영락교회 시온성가대, 선명회 어린이합창단(현 월드비전 선명회 어린이합창단), 서울레이디스싱어즈에서 지휘와 예술감독을 맡았다. 특히 그가 지휘한 선명회 어린이합창단은 1978년 영국 비비시(BBC)방송이 주최한 세계합창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95년 인천시립합창단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인천시립합창단은 내부 문제로 해체된 상태였다. 중앙대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고심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세계 최고의 합창단을 만든다’는 목표로 기초부터 다져나갔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2009년 세계 합창계에서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합창지휘자연합회(ACDA)가 주최한 행사에 참가해 기립박수를 받은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인천시립합창단은 세계 4대 합창단으로 인정을 받았다. 합창단이 이 자리에서 부른 곡은 ‘메나리’였다. 인천시립합창단 전임 작곡가인 우효원씨의 곡이다.

“처음 인천시립합창단을 맡으면서 인천시에 전임 작곡가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했어요. 세계 최고가 되려면 우리의 정서를 우리 음악으로 표현해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한국적, 세계적, 현대적’인 음악을 하는 것을 모토로 연습을 해왔는데, 그게 15년 만에 결실을 맺은 거죠”

그는 3000석을 가득 메운 청중이 일제히 환호하며 일어나 박수를 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이듬해 한국방송 ‘남자의 자격’ 합창 편에 멘토로 출연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며 우리나라 합창계의 거목임을 입증했다.

지휘할 때가 가장 행복…늙을 새 없어

그가 이번 공연에서 선보일 ‘오! 인천-정명 600년’은 인천시립합창단과 7개 구립합창단, 8개 동 시민합창단 600명이 함께 무대에 서는, 상상을 초월한 대규모 합창공연이다. 인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주제로 우효원씨가 작곡했다. 공연 마지막에 관중과 함께 ‘아리랑’을 합창하는 순서도 마련했다.

윤 예술감독은 “의미 있는 해인만큼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 어제(11일) 오케스트라와 맞춰봤는데, 아주 멋진 공연이 되리란 예감이 든다”며 “노래하는 마음으로 합창공연을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그의 대답은 이랬다.

“연습을 하다보면 하루 여덟 시간 팔을 휘저을 때도 있어요. 팔이 아파 침을 맞기도 했죠. 그런데 50여년을 하니 이젠 아프지 않아요. 세계적인 지휘자 중에는 80, 90세까지 무대에 선 이들이 많고, 이 시기에 가장 감동적인 공연이 만들어집니다. 제 바람이기도 하고요. 일이 힘들지 않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지휘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늙을 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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