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책으로 세상 읽기 16. 강헌 선생의 명리 1, 2권

인천투데이=신현수 (사)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명리, 운명을 읽다 : 기초 편|강헌 저|돌베개
명리, 운명을 조율하다 : 심화 편|강헌 저|돌베개

새해 다짐 같은 건 하지 않은 지 오래됐지만, 그래도 해가 바뀌었는데 아무 감회가 없을 수는 없다. 한해를 새로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 말이다. 하기야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이미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라고 불러야 사실에 더 부합할지도 모르겠다.

무고한 사람들 수만 명이 죽어 나가는 전쟁 또는 학살이 과연 올해는 멈춰질까. ‘용한 점쟁이’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많은 사람이 해가 바뀌면 올해 내 운세는 어떻게 되는지 정말 궁금해서, 또는 심심풀이로 점집을 찾아가 사주나 토정비결을 보기도 하고, 서양에서 들어온 타로점을 보기도 한다. ‘팔자가 사납다’라는 말도 있고, ‘모든 게 팔자소관’이라는 말도 있다.

‘팔자’는 글자 그대로 여덟 글자라는 뜻이다. 무엇이 여덟 글자냐. 사주가 여덟 글자다. 그러면 사주는 뭐냐.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네 가지 기둥, 즉, ‘생년, 생월, 생일, 생시’ 등 네 가지를 말한다.

사주로 한 개인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사주가 같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데, (70억명 인구 중 100만명 이상, 하기야 사주는 북반구에서 발달했기 때문에 계절이 정반대인 남반구 인들에게는 맞지 않는다) 그들의 운명이 모두 비슷하다는 게 동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같은 시간대 (하루를 12지로 나누니까 두 시간 안의)에 태어난 사람은 팔자가 다 같기 때문이다. 이런 내 의문은 맞을까. 해도 바뀌고, 평소에 품었던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강헌 선생이 쓴 ‘명리’ 1, 2권을 읽었다.

같은 해와 달, 날, 시간대 태어난 사람은 팔자가 같을까

많고 많은 명리학 관련 책 중에서도 강헌 선생이 (그는 유명한 음악평론가이기도 하다) 쓴 책을 고른 이유는 적어도 그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스스로 자신의 명리학을 ‘좌파 명리학’이라고 이름 지은 것처럼 그가 살아온 삶이 소위 ‘좌파’였지 않은가. 그와는 직접 만나서 회의를 한 적도 있다.

옛날 전교조 인천지부 부지부장으로 일할 때였는데, 그가 만든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 상영 투쟁 (모두 기억하겠지만, 90년대는 영화 상영도 투쟁이었다) 관련 회의를 하기 위해 전교조 대전지부에서 만났던 기억이 난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우리 삶은 ‘모든 게 운명’이다. 그러니 내 운명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불확실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운명을 미리 알고 싶어 했다.

그리고 자신의 그 운명을 피하거나 극복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다. 그런 노력 중의 하나가 바로 명리학이다.

그런데 강헌 선생은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알아보려고 하는 건 잘못된 태도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해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을 알기 위해 스스로 공부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만인의 명리학자화”를 꿈꾼다.

그는 명리학이 그 어떤 서양의 학문보다도 인간과 우주의 관계, 인간 그 자체의 본질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많은 혜안을 던져주는 합리적인 학문이며, 이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상생의 조화를 이루어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동약학과 명리(사주), 풍수, 한의학

책 안으로 들어가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동양학의 뿌리는 ‘음양’과 ‘오행’이다. 그 뿌리에서 세 줄기가 갈라져 나왔는데, 바로 명리(사주), 풍수, 한의학 등이다. 세 줄기는 다름 아닌 천, 지, 인, 삼재(三才) 사상이다.

첫 번째, 명리는 하늘의 이치를 인간의 운명의 이치로 해석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간을 다룬 것이다. 두 번째, 풍수는 지리, 즉 공간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풍수는 ‘명당자리’ 등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세 번째, 한의학은 인간의 몸과 정신을 연구하는 분야다.

이 셋의 현재의 위치를 따져보면, 먼저 한의학은 완전히 제도권에 진입했다. (한의학과 명리학을 접목하려는 의명학이라는 학문도 생겨나는 중이다) 풍수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사주 또는 명리는 여전히 비제도권의 범주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비제도권이라도 현실에서의 영향력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재 점술 시장의 규모는 6~7조원 정도나 된다고 한다. 비록 비제도권에 머물러 있지만, 명리학은 1000년 이상 동아시아에서 발전해온 '현세의' 철학이다. 명리학은 전생의 업이나 내세의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중국 특유의 현실주의적 세계관에서 비롯됐다.

명리학은 죽음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태어나서 살아 있는 동안만 유효하다. 명리학의 유통기한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이다. 죽음을 예언한다거나 다수가 동시에 겪게 되는 재앙의 예측 같은 것도 명리학의 범위가 아니다.

명리학은 삶에 국한된 학문

명리학은 삶에 국한된 학문이다. 죽음 예언, 윤회, 조상 문제 등등은 명리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명리학은 점술이 아니다. 그러므로 명리학이란 이름으로 부적을 만들라고 하거나, 굿을 하라고 한다면 백 퍼센트 사기꾼이다.

명리학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가 인간의 운명이 단순히 태어난 연월일시에 의해 고정되고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야말로 명리학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오독이다. (바로 내 의문이기도 했다) 명리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운명은 고정되거나 결정되어 있지 않다”라고 본다.

그러니 운명이 정해져 있느냐, 사주가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은 질문의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다. 도계 박재완 선생의 “환혼동각(幻魂動覺)”이라는 말을 보고 내 의문이 풀렸다.

“환(幻)이란 인간으로 태어나야 비로소 운명이 시작된다는 것이요, 혼(魂)이란 어떠한 부모 아래 태어났는지, 즉, 덕을 많이 쌓은 조상을 둔 집안은 후손이 복을 받고 그렇지 못한 집안은 비록 사주팔자를 잘 타고 태어났다 해도 제대로 된 복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며, 동(動)이란 지리적 환경을 말하는 것으로 바다 근처에 태어났는지 산속에서 태어났는지 또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지, 그리고 그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가도 인간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며, 각(覺)이란 개개인의 깨달음을 말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가치관과 지혜의 정도가 운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명리학은 내 운명을 알고자 노력하는 학문

음양.
음양.

그러면 명리학이란 무엇인가. 명리학은 내 ‘운명’을 알고자 노력하는 학문이다. 운명에서 ‘운’은 ‘운용한다, 운전한다'라는 뜻이고, ‘명’은 ‘선천적으로 내게 주어진 요소’들이다. ‘운’과 '명’을 합친 말이 ‘운명’이고, 이것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명리학’이다.

‘운명’이라는 말에 이미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운명이란 말 자체가 운명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운’은 ‘운영한다. 움직인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소명 즉, ‘명’이 같게 태어났더라도 ‘운’이 모두 다르니 같은 인생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리학은 숙명론이 아니다.

명리학의 기본은 음양오행이다. 동양학의 기본인 음양오행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자. 동양에서는 우주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원칙을 음과 양으로 본다. 이 둘은 대립하지만,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다. 음의 속성이 “여자, 어둠, 끝, 물, 공간, 부드러움, 좌” 등이라면, 양의 속성은 “남자, 밝음, 시작, 불, 시간, 단단함, 우” 등이다.

오행.
오행.
오행.
오행.

음양 다음에 나오는 것이 오행이다. 오행은 “목, 화, 토, 금, 수”로 이뤄졌다. 오행의 특징들을 살펴보면, 목은 “봄, 아침, 동, 청, 3과 8, 인, 간과 쓸개, 뼈, 성장, 의지, 명예, 오만”, 화는 “여름, 낮, 남, 적, 2와 7, 예, 심장, 소장, 열정, 자신감, 다혈질”, 토는 “환절기, 사이, 중앙, 황, 5와 10, 신, 지라와 위, 중용, 끈기, 고집”, 금은 “가을, 저녁, 서, 백, 4와 9, 의, 폐, 대장, 냉정, 절제, 비판, 잔소리”, 수는 “겨울, 밤, 북, 흑, 1과 6, 지, 콩팥, 방광, 지혜, 욕망, 본능, 망상” 등이다. (많은 학부모가 관심을 두고 있을 자녀들의 학업은 ‘수’와 관련이 있다)

각 오행은 서로 상생과 상극의 관계를 맺는다. 예를 들면 목은 화를 도와주고, 수의 도움을 받으며, 토의 힘을 누르며, 금에 의해 눌린다. 명리학의 핵심이 이 음양오행인데 이 오행의 상생과 상극을 이해하면 명리학을 절반쯤 이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자신의 “원국”(각자 타고난 사주, 태어날 때 주어진 명)을 절반쯤 푼 것이다.

명리학에서는 영어의 알파벳처럼 천간과 지지라는 고유한 문자가 있다. 천간은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 등 10가지이고, 지지는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등 12가지다. 각각의 글자는 음양과 오행이 정해져 있는데, 예를 들면 갑은 양이고 목이다.

명리학으로 사람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재구성해야

조금씩 명리학의 비밀에 다가가는 느낌이 들 것이다. 천간과 지지를 조합하면 모두 60가지가 된다. ‘육십갑자’라고 하고, 줄여서 ‘육갑’이라고 한다. 이런 말 쓰면 안 되지만, 옛 속담에 “병신이 육갑하고 있네”라는 말이 있다. “갑자, 을축, 병인, 정묘, 무진….” 등 60개를 외운다는 뜻이니, 매우 어려운 걸 한다는 뜻이다.

자기가 태어난 해가 다시 돌아오려면 만 60년이 지나야 한다. 올해는 갑진년이다. 갑진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해가 다시 돌아왔으므로 올해를 ‘환갑’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60을 넘기기 어려웠으므로 잔치를 했다. 요즘 육십은 거의 청년이다. 천간과 지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원국”의 경우의 수는 모두 51만8400 가지가 된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이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이 세 가지를 조화시키며 창조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명리학이다. 명리학은 인간의 삶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매우 유용한 도구다.

한편, ‘모든 것은 순환한다, 개인이나 지구나 우주나 마찬가지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느끼게 하는 것도 명리학이다. 앞에서 말했듯 저자는 ‘만인의 명리학자화’를 부르짖었다.

명리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개인의 기복적 소망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명리학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재구성할 때, 이 세상은 더 행복해지고 정의로워질 거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말한다.

강헌 선생은 1, 2권 합쳐 800쪽 가까운 두꺼운 책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우주에 우열은 없다. 다만 각기 다른 명이 있을 뿐이며, 그 모든 명은 소중하고 존엄하다. 명리학적 접근이 각자의 명을 찾고 그 명을 실현하는 전략을 도출하며 그 전략을 하루하루 실천에 옮겨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쓰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강헌 선생은 또 마지막으로 영화 쿵푸팬더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했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알 수 없으며, 오늘은 선물이다. 그래서 그것을 현재(선물)라고 부른다네”

명리학이란 결국 “자신의 삶을, 자기 주체성을 갖고, 자기 스스로, 현재를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나갈 때, 운도 나를 따른다”라는 걸 깨닫게 하는 학문인가. 명리학도 영화의 대사도 붓다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모든 진리는 일맥상통하는 것인가 보다.

신현수 시인은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 모임(방갈모) 상임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직무대행), 서울문화재단 이사, 인천문화재단 이사,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다.
신현수 시인은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 모임(방갈모) 상임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직무대행), 서울문화재단 이사, 인천문화재단 이사,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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