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인천투데이|한국은 제2차 대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다. 그 결과 1964년 설립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57년 역사 이래 처음으로 개발도상국 지위에 있던 나라를 만장일치로 선진국으로 변경한 유일한 주인공이 되었다.

그렇게 한국은 2021년에 공식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은 인구 5천만에 1인당 GDP 3만 달러를 넘는 몇 안 되는 나라인데다가, 반도체와 철강, 자동차를 위시한 제조 강국에서 이제는 K-pop, K-드라마 등 소프트파워까지 선도하는 글로벌 일류 국가가 됐으니 가슴도 펴고 어깨에 힘도 주고 좀 우쭐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세계적 투자은행이자 금융서비스 회사 모건스탠리가 2023년 4월에 보고서 하나를 냈는데, 1인당 명품(名品)소비에서 1위인 국가가 미국과 일본, 유럽 국가들도 아니고 바로 한국이란 거다.

많은 외신들이 분석한 바로는 돈을 최고로 치는 문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경쟁적 욕구가 한국의 명품소비 열풍의 원인이라고는 거다.

저 2021년에 미국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가 17개 선진국 성인 1만9000명을 상대로 ‘무엇이 인생을 의미 있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14개국 사람들은 1순위를 ‘가족’으로 꼽았고 스페인은 ‘건강’, 대만은 ‘사회’를 1순위로 답한 반면에, 한국인의 1순위는 ‘건강(2위)’도 아니고 ‘가족(3위)’도 아니고 ‘물질적 풍요’였다.

이 조사결과는, 1945년 해방과 6·25전쟁 이래 삶의 질은 따지지 못한 채 오로지 압축 경제성장에만 목을 매고 달려온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불안한 미래를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서 한국은 물질적으로는 분명 풍요로와졌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연전에, 얼굴이 꽤 알려진 ‘에바’라는 외국인이 TV 우리말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했던 말 한마디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영국과 일본 이중국적자인 그는, 한국어가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다고 말하면서, 한 예로 ‘잘 산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당연히 ‘행복하게 산다(live happily)’라고 이해했는데, 한국에서는 그 말이 ‘돈이 많다’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랐다는 것이다.

국어사전을 펼쳐보고 나서야 나도 알게 된 사실. ‘잘살다’는 ‘잘 산다’와 뜻이 다르다는 것을. ‘잘산다’는 부유(재물이 넉넉)하게 산다는 것으로, 땅땅거리고 떵떵대는 것과 비슷한 의미라는 거다.

그러고보면 어렸을 적에 우리는 흔히 ‘누구누구네는 굉장히 잘산대’라는 말을 들었고 그 때 우리 머릿속에는 즉각 떠오른 것은 으리으리한 집과 피아노, TV, 자동차 등 값비싼 물건과 많은 돈이었음을 새삼 기억한다.

한국에서 ‘돈이 많다’를 의미하는 ‘잘살다’를 외국인 ‘에바’는 영어사전이 정의하는 대로 ‘행복하게 잘 산다(live happily)’라고 오인(誤認)해버렸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씁쓸하다.

잘 산다는 것은 삶의 궁극적 목적의 성취에 가깝게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서고금의 현인들이 하나같이 삶의 궁극적 목적을 ‘행복(幸福)’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잘 산다는 것은 곧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말대로 ‘잘살면’ ‘잘 사는’ 것일까. 아니다. 이미 반세기 전(1974)에 주창된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까지 소환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물질적 부(富)와 황금의 소유가 주는 행복의 한계효용은 체감하다가 결국 0(零)에 수렴하게 될 뿐이라는 것을.

한국의 1인당 GDP는 1953년 고작 67달러였으나 2023년에는 3만2000달러를 넘어 480배 늘었다. 그러나 UN 세계행복지수에서는 2012년 56위, 2022년 59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도 한국은 33국 중 32위다. 인구 5000만명, 1인당 GDP 3만달러를 자부하는 우리 사회 이면의 ‘삶의 질’ 지표는 대부분 바닥권이다. 무엇보다 일과 삶의 불균형이 심각하다. 잘 살기 위해 하는 일이 삶을 짓누르는 사회에서 행복은 가까이 있을 수 없다.

영국의 유력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 12월 15일자 기사에서 “한국 노동자들은 특별히 장시간 노동과 부족한 휴일을 견디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세계 최장의 노동으로 근근이 한국의 소득을 떠받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과 삶의 균형 무너지면 결국 각자의 민생은 피폐해지고 공동체의 연대는 파괴로 치닫게 될 터이다. 한국이라는 공동체에 따라붙는 여러 가지 최고, 최저, 최악의 수식어들이 그 결과물이다.

한국은 65세 이상 노인의 고용률(36.2%, 2022)까지 주요 국가들 중 최고수준이고 OECD 38개국 평균(15.0%)보다 두 배 이상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도 전체 임금 근로자의 약 37%로 주요국들 중에서 가장 많다.

반면에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2022년 기준)은 14.8%로 OECD 국가 평균(21.1%)보다 6.3%나 낮다. 그러니 노인빈곤율이 37.6%로 제일 높다. 이렇게 노후소득보장이 미흡한데다가 의료보험 보장수준(65.3%, 2020)도 80%를 웃도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보다 턱없이 낮다.

소득 대비 의료비 지출이 40%가 넘는 이른바 ‘재난적 의료비’도 7.5%(2016)에 달해서 이 역시 2% 미만인 유럽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산업재해사망자도 최고 수준으로 해마다 2400명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어나가고 4천 명씩 길거리에서 횡사하는 교통 후진국 신세도 여전하다. 거기에다 소득상위 20%(5분위)와 하위 20%(1분위) 가구의 순자산 격차는 2006년 4.5배이던 것이 6.5배(2022)로까지 벌어져 부(富)의 양극화는 더 심각해졌다.

일에 치이고 삶이 고달프니 일상은 팍팍하고 미래는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10만명 당 23.6명으로 세계 최악인 자살률과 0.78명(2022년)으로 세계 최저인 합계출산율, 이런 우리 사회의 민낯이 전혀 이상할 게 없는 현실이다.

구성원 각자의 삶이 이럴진대 공동체의 모습이 온전하기는 어렵다. 각자도생의 삶은 곧 사회적 신뢰의 붕괴로 연결되고 불만과 분노는 혐오와 적대감으로 표출된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낭비’라며 학생이 학교를 떠나고 그 빈자리를 ‘괴물 학부모(Monster Parents)’가 채우는 현실은 무너진 공교육의 우울한 삽화다.

지나가는 불특정인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위해를 가하는 ‘거리의 악마’들이 좀비처럼 출현하기 시작했다. 2022년 한 해에 국민신문고와 정부민원콜센터에 접수된 민원(民願)이 무려 1238만건을 넘는다. 갈등은 팽배하고 사회적 신뢰는 붕괴하면서 대화와 타협, 절제와 관용은 빛을 잃고 악성민원공화국, 고소고발공화국이 되어 간다.

이처럼 압박과 스트레스가 일상이 되고 구성원 개개인이 각자 불행하다고 느끼는 ‘고도 불안(high tension)’사회에서 유아독존으로 잘 사는 사람이 다수일 리는 없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절멸시켜 버린 서구 문명인들은 찬란한 물질문명을 구가(謳歌)해 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사라져버린 인디언들이 대대로 전승해온 삶의 가치들을 물질문명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성찰과 치유의 거울로 삼는다.

서구 물질문명을 본보기삼아 죽어라 말을 타고 질주해 온 우리의 지난 70년, 가끔씩 멈추어 서서 지금까지 달려온 방향을 뒤돌아 봐야 한다. 나의 영혼이 온전하게 뒤쫓아 따라오는 지를 깊은 심호흡하며 살펴봐야 한다.

마침 12월을 ‘침묵하는 달’이라고, 1월을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이라고 부르는 인디언 부족도 있으니, 쉽지만은 않은 삶의 도정에서 잠시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지혜를 행하기에 딱맞는 계절이 지금이기도 하다. 2024년 벽두에서, 모두들 잘 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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