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언론학 박사

며칠 전 한국 언론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소식을 다룬 기사를 읽었다. 금융투자소득세란 주식이나 펀드로 얻은 수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징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해 첫 증권시장 개장식에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해 내년부터 시행될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과도한 부담의 과세가 선량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시장을 왜곡한다면, 시장원리에 맞게 개선”돼야 하며”, “저 윤석열이 말하는 공정은 자신의 노력으로 오를 수 있는 역동적인 기회의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베를린자유대학 윤장열 언론학 박사
베를린자유대학 윤장열 언론학 박사

한국 언론들의 논평을 보면, 이번 결정은 4월 총선을 앞두고 1400만 개인 투자자를 겨냥한 포퓰리즘 정책이며, 정부 부처 간의 논의 없이 발표됐다고 한다.

필자 역시 이러한 비판에 동의한다. 이번 정책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대부분의 정부 정책들이 일방적이며, 이해타산적이기 때문에 선거용으로 보인다. 그런데 눈에 띄는 점은 “공정한 자본시장”을 주장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 특히 “저 윤석열이 말하는 공정”이다.

미국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정치적 용어로 자주 사용한 대통령은 레이건이다. 그는 공정이라는 단어와 함께 자유경쟁을 주창하면 아메리칸 드림을 정치화했다. 그런데 그럴싸해 보이는 “공정”과 “자유”에는 각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즉, 능력주의 사회에서 시장은 공정하니까 성공도 실패도 모두 개인의 몫이 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은 줄어들고, 복지정책마저 축소된다. 그 결과, 미국은 돈이 없으면 병원이나 학교도 못 가는 불공정한 시장이 됐다. 제가 알고 있는 레이건은 영국의 대처 수상과 함께 신자유주의, 즉 민영화, 세계화, 독점화를 강행한 역사적 위인이다.

최근 독일 언론에서는 전혀 다른 “공정”의 의미를 접하게 된다. 독일 최대 언론사 Axel Springer는 세계 최초로 오프에이아이(OpenAI)와 협력해 저널리즘에 자동화를 상용화했다. 잘 알려진 ChatGPT는 미디어 콘텐츠를 자동으로 생산, 전달하며, 비즈니스 모델까지 제시한다.

ChatGPT 기술이 공개된 지 1년 만에 인공지능 시스템이 언론인들의 업무를 일정 부분 대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기자협회(DJV)는 Axel Springer에 AI기술을 통해 얻은 이익의 일부를 “공정하게” 기자들에게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왜냐하면, AI가 학습한 기존의 데이터는 모두 기자들이 제공한 지적 결과물에서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돈이 돈을 벌게 하는 불공정한 자본시장에서 살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공정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실제로 1400만명이 주식을 하고, 부동산 투기나 로또로 인생역전을 기대한다.

젊은이들은 건물주가 되길 희망하고, 직장을 관두고 유튜버가 되고 있다. 모두가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 하나 잘 만들어 대박 날 요행에 사로잡혀 있다.

경제학에서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를 통해 얻는 소득은 불로소득에 해당한다. 즉 노동의 대가로 얻는 노동소득이 이외의 자산(자본포함)소득이다. 그런데 우리는 노동소득보다 이자, 배당, 부동산, 금융거래에서 얻는 자본소득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부동산 투기도 능력이라고 하면서, 콘텐츠 하나 잘 만들기는 또 힘들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이런 반론은 공정한 소득이 무엇인지, 또 생산적인 노동이 무엇인지 무감각해진 한국사회의 현실이며, 불로소득을 정당화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주장이다.

우리는 공정이나 자유와 같은 정치적 슬로건을 비판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공정이라는 말이 등장할 때, 이미 불공정한 우리 사회를 주시해야 합니다. 특히, 공정의 의미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디지털·자동화 환경에서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술이 발전한다는 것은 기계가 사람을 위해 기능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로봇이 사람의 직장을 빼앗는 게 아니라, 로봇이 사람을 위해 작동하게 해야 한다. 자동차의 자동주행 기술은 운전 노동시간을 단축하게 하고, 저널리즘에 AI의 활용범위를 확대하는 것으로 기자의 노동환경을 이롭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불공정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디지털 기술을 사적으로만 소유하려고 한다. 각자도생해야 하는 능력주의 시장에서 공동소유나 공공혜택이 낯설게 보이기 마련이다. 상위 10%가 세계 소득 50% 이상을 차지하고, 세계 7억명가량이 여전히 극한 기아와 빈곤에 처해 있다. 이들의 빈부 격차가 공정한 경쟁이나 노력의 결과는 아니다.

디지털 시대에 공정한 자본시장을 구태의연하게 주장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기술 발전의 결과를 공동의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공동의 것을 어떻게 공동의 혜택으로 만들지, 함께 모색해야 한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