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2024년 새해를 10여일 앞둔 2023년 12월 20일 캠프마켓으로 불리는 부평미군기지의 모든 구역이 반환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84년 만에 빼앗긴 땅이 우리에게 반환되는 것이다.

1939년 일제강점기 조병창부터 캠프마켓까지

인천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 B구역 내 일제강점기 때 지은 병원 건물.(사진제공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인천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 B구역 내 일제강점기 때 지은 병원 건물.(사진제공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캠프마켓은 1939년 일제강점기의 일본 육군 군수공장인 조병창부터 광복 이후 주한미군기지로 사용됐다. 애초 캠프마켓 인근의 430만평에 이르는 땅은 을사늑약으로 자결한 순국지사 민영환 소유였으나 민영환의 식객이자 정미칠적 중 한 명인 송병준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이후 일제가 캠프마켓 일대 매입을 시작해 1939년 조병창 시설로 조성했다.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은 일본군 주둔지를 그대로 접수하며 애스컴시티(ASCOM City)이라 불리는 미육군군수지원사령부(Army Support Command)로 사용했다.

1973년 애스컴시티는 공식적인 기능을 마치고 해체했고 훈련 보급시설만 잔류한 채 캠프마켓으로 축소해 운영됐다. 그뒤 캠프마켓은 2002년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 Land Partnership Plan)에 따라 반환을 결정했다.

캠프마켓 반환은 그냥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초 냉전체제 해체 이후 인천의 지역 시민사회운동진영은 주한미군기지 반환에 관심을 보였다.

이어 민주주의 민족통일 인천연합이 1996년 5월 17일 부평역 광장에서 주최한 5.18 광주민주항쟁 16주기 기념식에서 ‘우리땅 부평미군기지를 되찾자’는 구호가 등장한 뒤 1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반환운동을 위한 공개설명회를 했고, 인천평화복지연대의 전신인 평화와참여로가는시민문화센터 등 단체 14개가 중심이 돼 ‘부평미군기지 인간띠잇기 사업본부’를 구성했다.

1996년 8월 11일 광복절 시기에 맞춰 부평미군기지를 에워싸는 인간띠잇기 행사를 추진했는데 경찰이 불허해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행사에 참여 중이던 대학생과 시민 64명이 연행되고 8명이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인천지역 시민사회는 더 조직적인 운동이 필요다하는 판단에 1996년 9월 ‘우리 땅 부평미군기지 되찾기 및 시민공원 조성을 위한 인천시민회의’를 결성했다. 주일미군기지가 있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미군기지 반환운동을 하는 일본인들과 연대활동도 했고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부평미군기지 정문 앞에서 토요집회 약 150회도 진행했다.

시민운동 결실로 결정된 부평미군기지 반환

부평미군기지 반환 시민운동 기록 사진 모음.
부평미군기지 반환 시민운동 기록 사진 모음.

인천시민회의는 2000년 5월 부평미군기지 정문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당시 김성진 인천시민회의 집행위원장은 단식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단식농성은 이후 674일간 천막농성으로 이어졌고 2002년 3월 부평미군기지 반환이 결정된 날까지 계속됐다.

그동안 인근 주민들이 함께하는 인간띠잇기 행사, 미 대사관 1인 시위, 모금운동과 서명운동, 연대 단식투쟁 등도 지속했다. 결국 부평미군기지는 주한미군기지 통폐합 계획에 포함되며 반환이 결정됐다.

인천시민회의 외에 반환운동의 한 축을 담당한 ‘부평미군부대 공원화 추진 시민협의회’는 과거부터 부평에 연고를 둔 단체들로 이뤄졌다. 시민협의회는 반환 보다는 이전에 초점을 맞췄지만 미군기지를 부평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하며 시민회의와 연대해 활동했다.

시민협의회는 제도권 내에서 부평미군기지 이전 사안을 정치쟁점화했고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들에게 미군기지 이전 관련 공약 반영 여부를 질의해 답변을 얻기도 했다. 2000년에 15대 총선에 출마한 인천지역 후보자 전원에게 캠프마켓 이전에 대한 정책공약화 여부를 조사해 지역 의제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지자체 역할도 커, 역사 잊지 말고 기억하는 방향 활용해야

부평 캠프마켓 전경.(사진제공 인천시)
부평 캠프마켓 전경.(사진제공 인천시)

물론 당시 부평구와 인천시 등 지방자차단체의 역할도 컸다. 시민운동으로 시작한 부평미군기지 반환 운동은 2002년 3월 반환 결정이라는 성과를 냈다. 그런데 실제 반환은 21년이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또한, 지난달 20일 84년 만에 전체 반환이 확정됐다. 인천시는 올해 상반기를 목표로 ‘캠프마켓 기본계획 마스터플랜(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인천제2의료원과 인천식물원, 역사박물관 등을 조성하는 내용이 담긴다. 시민역사공원이 조성되고 여러 공공시설도 들어선다.

부평미군기지는 시민운동과 함께 시민들의 힘으로 반환받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한도 서린 곳이다. 부평미군기지는 이러한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며 이를 기억하는 방향으로 활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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