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과학이야기 62. 이그노벨상

단체사진을 찍을 때 눈 감는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게 하려면 최소한 몇 번을 찍어야할까? 발에서 나는 악취는 어떤 합성과정을 거쳐 만들어질까? 쉴 새 없이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가 두통을 앓지 않는 이유는 뭘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애매한 ‘상’이 있다.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이다. 노벨상에 ‘불명예스러운’이라는 뜻의 이그노블(Ignoble)을 붙인 것으로, 1991년 미국 유머과학잡지인 ‘기발한 연구 연감’이 제정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마다 노벨상 발표를 1~2주 앞둔 시기에 수상자 발표를 한다. 역대 ‘진짜’ 노벨상 수상자들이 직접 논문 심사와 시상을 맡고 있다.

이 상의 상금은 ‘0’원이다. 하버드대학 샌더스극장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가는 비용도 수상자가 직접 부담해야한다. 수상자는, 생각하다 떨어진 사람을 그린 상장과 상패를 받는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패러디한 것이다. 얼핏 들으면 황당한 일을 시도한 사람에게 주는 상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 상은 온갖 선정 논란을 일으키는, ‘품위 없는’ 노벨상을 비꼬기 위해 만들었다.

상의 절반은 ‘재현될 수 없거나 재현되어서는 안 되는 과학’에, 나머지 절반은 ‘과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점화시킨 프로젝트’에 주어진다. 비공식적이지만, 수상 조건과 기준은 또 있다. 우선, 웃음을 터트리게 해야 한다. 그 다음으론 생각하게 해야 한다.

‘젖은 속옷과 마른 속옷 중에서 무엇을 입는 것이 더 추운지에 대한 과학적 입증’ ‘듣기 좋은 과자 씹는 소리가 과자를 더 맛있다고 믿게 만드는 심리학 연구’ ‘고양이 귀 진드기를 자신의 귀에 직접 넣고 진행한 연구’ ‘원격 조종 헬리콥터로 완벽하게 고래 콧물을 채취하는 방법 연구’ ‘60년 동안 손가락 관절을 꺾은 결과 관절염에 영향이 없었다는 연구’ ‘임산부가 앞으로 넘어지지 않는 이유를 규명한 연구’ 등 과거 수상자들의 간단한 수상 내용만 봐도 이그노벨상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비싼 커피로 불리는 ‘루악 커피’도 이그노벨상 출신이다. 사향고양이의 뱃속을 지나 대변으로 나온 커피원두로 만드는 이 커피는 존 마틴즈라는 사람의 ‘용감한’ 실험정신(어떻게 그걸 맛볼 생각을 했을까!)을 통해 발견됐다. 그는 1995년 이그노벨상 영양학상을 받았다.

이그노벨상 수상자 중에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과학자가 있다. ‘보이지 않는 지능’을 비롯해 다수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된 바 있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과학자 렌 피셔. 그는 ‘커피에 비스킷을 찍어 먹는 것에 대한 최적의 연구’로 1999년 이그노벨상 물리학상을 받았다. 비스킷이나 도넛을 커피에 넣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시간과 온도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커피 속 비스킷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물리학적으로 접근한 연구다.

그의 책 ‘과학 토크쇼’(시공사 펴냄)에 이 연구 내용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는 것을 알고서, 얼마 전 책을 읽어보았다. 역시나! 내가 쓰는 ‘사소한 과학이야기’는 감히 비교도 안 될 만큼 방대한 정보와 함께, 아주 기본적인 과학상식과 꼼꼼히 읽어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물리학적 수식이 촘촘히 연결돼 있었다.

‘과학자가 추천하는 최적의 달걀 삶기’ ‘슈퍼마켓 계산서에 숨은 쇼핑의 비밀’ ‘날아오는 공을 신속하게 잡는 방법’ 등 그야말로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풀어낸다. 하나하나가 이그노벨상 수상감이었다. 교과서 속에서 딱딱하게 굳어 박제된 ‘원리’와 ‘공식’이 드디어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이그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연구가 ‘재현되어서는 안 되는 과학’인지,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를 한 쪽인지, 이 상을 주최하는 하버드대학 측에서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당연히 후자가 아닐까? 뛰어난 과학자도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싶어 웃음이 나온다. 역시 이그노벨상 수상자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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