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석 인천평화복지연대 평화통일위원장

국익을 중심에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는 최근 국제상황을 지켜보면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국제정치의 냉엄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안정감 있고 능수능란한 외교로 국익을 추구하는 지도자를 바라는 것은 대다수 국민의 바람이다. 그런데 이와 달리 이념을 강조하고 전쟁과 같은 위기상황을 불러오는 지도자를 가졌다면 그것은 국민에게 매우 커다란 불행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많은 국민들은 지금의 위기상황을 몸으로 직감하고 있다. 부실과 졸속 끝에 파행으로 끝마친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나 엄청난 표 차이로 탈락한 부산엑스포 유치전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두 행사의 실패가 가져온 국익훼손이나 국제적 망신보다 훨씬 커다란 위기상황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다. 바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남북관계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북한을 주적이라고 규정했다. 또 선제타격도 불사하겠다는 으름장도 놓았다. 당선 후에는 비핵화를 선결조건으로 내건 담대한 구상이라는 대북정책을 내놓았지만 북으로부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이처럼 적대감을 바탕으로 한 윤석열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은 혀 속의 박하사탕처럼 당장은 시원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전쟁을 부르는 도화선일 뿐이다. 관리되지 않는 위기는 전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은 이미 ‘강대 강, 선대 선’의 대미관계 원칙을 밝힌 바 있어 남북관계를 예상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며 북의 핵무기 고도화 전략에 맞서 더욱 견고한 미국의 대북핵억제 전략을 미국에 요구했다.

이는 워싱턴선언에 반영돼 한미 핵협의그룹(NCG) 신설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얼마 전(12월 16일) 개최된 2차 핵협의그룹 회의에서 한미 양국은 “북한의 어떠한 핵 공격도 용납될 수 없으며, 김정은 정권의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북은 17일 밤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로 이에 응수하였다. 그리고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 결과와 이날 부산해군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핵추진잠수함 미주리함(SSN-780)에 대한 경고라고 그 의미를 밝혔다.

탄도미사일 비행거리와 평양-부산항의 거리가 유사함을 생각할 때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북은 그리고 18일엔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발사체 이동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8형’을 발사했다. 사거리 1만5000㎞로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둔 전략미사일이다.

그러자 이번엔 신원식 남측 국방장관이 “북한이 계속 도발할 경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참수작전’ 훈련을 실시할 수 있다”고 밝히며 강경 대응을 이어갔다. 참수작전은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의 지도부 제거를 목적으로 한 작전으로, 북한이 밝힌 핵선제공격 5대 조건 중 하나에 해당한다. 그야말로 한반도의 명운을 건 대결을 노골화 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북의 핵위협을 명분 삼아 역대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그리고 국민의 반대 여론도 무시하고 한미일 군사공조를 강화하였다. 윤석열 정부가 합의한 ‘한미일미사일실시간정보공유’는 ‘한일군사정보공유협정’을 뛰어 넘는 사실상의 한미일군사동맹에 가깝다. 그렇기에 한미일은 독도 인근 해역에서 합동훈련도 실시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말에 열린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이를 ‘아시아판 나토(NATO)’로 평가한 바 있다. 러우전쟁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에서 시작된 것을 생각할 때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시종일관된 대북 강경정책은 많은 부정적 후과를 낳고 있다.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막는 안전장치로 작동하던 9.19남북군사합의는 폐기됐다. 남한을 향한 북의 ‘대한민국’ 호칭 또한 ‘투 코리아(two korea)’ 정책일 수 있어 대단히 우려스럽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원칙은 오히려 북의 핵무력 법제화와 핵정책 헌법화로 더욱 멀어져 가고 핵고도화 정책은 가속이 붙고 있다. 미국 조야에서 제기되고 있는 ‘비핵화가 아닌 군축’으로 방향 전환도 우리의 바람과는 방향이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대북정책은 방향 전환 없이 없다.

한미 핵협의그룹으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은 미국의 국익과 충돌할 때 언제든 찢어질 수 있는 우산이다. 그것이 국제사회의 냉엄함을 고려할 때 일반적인 상식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북정책보다는 뭐라도 하고 실패하는 대북정책 낫다. 오죽하면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을 제치고 남북관계 나서겠다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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