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사람]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서 개인전 여는 이선영 화가

▲ <붉은날개왜가리와 원추리>
다리 하나를 들고 날갯짓하는 황새의 깃털 하나가 줄기로 변하더니 활짝 핀 백합이 됐다. 웅크린 고슴도치의 가시털에선 보라색 엉겅퀴가 소담하게 피어오른다. 제각각 화려한 색채로 태어난, 원래 모습 그대로다.

교과서로 그림을 ‘외운’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지, 새와 꽃 중 어느 쪽이 중심인가 궁금해지려는 찰라, “동식물이 서로 함께 잘 살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그림”이라며 시원스레 그림 설명을 한다. 이선영(41ㆍ십정동) 화가다.

이 화가는 22일부터 28일까지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전시실에서 제2회 수채화 개인전 ‘상생展(전) - 사라지는 생명체 다시 꽃을 피우다’를 개최한다. 동물과 식물을 한 도화지에 그린 작품 52점을 전시한다. 전시회를 일주일 앞둔 지난 15일, 이 화가를 간석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동물과 식물의 만남 “묘하게 어울리네”

고흐의 그림은 누가 봐도 ‘고흐의 그림’이다. 강렬하고 풍부한 색채와 독특한 붓질은 그만의 고유한 화풍이다. 이중섭도 마찬가지다. 그의 강한 필치를 통해 이전에는 없던 소가 탄생했다. 이처럼 화가들은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을 저마다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를 원한다. 표현 기법이나 재료, 또는 소재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드는 요소들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화가가 그린 동물과 식물의 조합은, 흔한 대상을 연결해 흔치 않게 표현한 그만의 독특한 소재임에 분명하다.

“다른 사람이 안 그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환경에 관심도 많았고요. 우리는 동물과 식물을 아주 다른 것처럼 분류하고 구분하지만, 사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생명이잖아요. 같이 잘 사는 모습을 표현한 거죠”

그의 수채화 속 동물과 식물은, 그림에 문외한인 기자가 보기에도 서로 묘하게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오골계의 푸르스름한 벼슬은 얇은 꽃잎을 늘어뜨린 보랏빛 붓꽃과 닮았다. 비둘기 등에서 돋아난 수레국화는 비둘기와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 같다. 겉모습만으로는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부엉이와 달맞이꽃도, 알고 보면 둘 다 달빛을 받고 사는 이웃이다. 억지스런 추측일까?

“동식물을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을 많이 해요. 의미를 생각할 때도 있고, 생태적 모습이나 색이 비슷한 것끼리 함께 그릴 때도 있죠. 예를 들면, 붕어가 물속에서 움직일 때 꼬리 뒤로 물방울이 흩어지는데, 그 모습이 작은 꽃이 달린 낭아초와 닮았어요. 수탉 벼슬은 맨드라미랑 비슷하고요. 뭔가 조화를 이뤘을 때, 보시는 분들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매주 한 작품, 1년 동안 52점 그려

▲ <청개구리와 흰물옥잠화>
그가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그림 52점은 대부분 지난해에 완성한 것이다. 1년이 52주이니 거의 매주 한 작품씩 그린 셈이다. 서울의 한 예술단체에서 무대미술작업을 하는 직장인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그림을 그린다”고 말할 정도로 성실하게 그림을 그렸다.

“많이 그려야 실력이 늘고 작품의 질도 좋아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열심히 그려요. 다른 화가들에 비해 경력이 짧으니, 더 성실하게 그림을 그려야죠”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 실기점수는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고, 미술교사도 그에게 미대에 갈 것을 권유했다. 그러려면 미술학원에 다녀야 했다. 그가 자란 김포에서 마땅한 미술학원을 찾기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학원비가 너무 비쌌다. 대학은 미술과 전혀 상관없는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했다.

“그땐 ‘내 꿈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어요. 그냥 공부해서 대학가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대학을 가니 꿈이 참 소중한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꿈을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어느 날, 그림 한 컷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박재동 화백의 그림이었다. 박재동은 당시 사회 모습을 과감하게 풍자한 ‘한겨레 그림판’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림을 통해서도 사람들에게 ‘진짜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나도 그림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계기가 됐죠” 그리고 8년 전, 드디어 연필을 쥐고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물감이 자연색 못 따라가

그의 작품 속 동식물은 하나같이 화려하고 또렷하다. “새나 꽃 등 자연물의 색이 정말 예뻐요. 아무리 표현을 한다고 하지만, 물감이 자연색을 따라가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그의 작품들에서 공통점이 눈에 띈다. 배경이 없다는 점이다. 모두 하얀 도화지 그대로 여백을 남겨두었다.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우선, 동식물을 한 데 그리니 어느 한 공간을 배경으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새는 하늘에 살고 꽃은 땅에 피잖아요. 또 배경이 없는 편이 이미지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 좋을 것 같았어요”

그림 제목도 그림만큼이나 분명하다. 동식물이 그대로 그림 제목이 됐다. ‘황새와 백합’ ‘앵무새와 카라’ 모두 이런 식이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잘 모르는 분야’라 여기는 것 같아요. 노래처럼 음정이나 가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림 자체로 내용을 전달하는 거잖아요. 저도 가끔 ‘무제’라는 작품을 보면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확실하게 제목을 달아요. 누가 봐도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수 있을 테니까요.(웃음)”

사람과 세상 담은 그림 그릴 터

▲ 이선영 화가.
그는 그림을 그릴수록, 사람과 세상을 담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 그의 그림에는 동물 대신 사람이 등장해 꽃과 연결된다.

“사람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당분간 순수미술을 하겠지만, 언젠가는 만화를 그릴 생각이에요. 시사만화도 좋고, 만화가 강풀의 작품처럼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만화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는 전시회가 열리는 일주일 동안, 전시실을 지킬 생각이란다. 자신의 작품을 보는 이들과 직접 만나고 싶어서다.

“전시실에 오시면 아마 마음이 편해지실 거예요. 도심에서 예쁜 꽃과 동물을 만나기가 쉽지 않잖아요. ‘함께 사는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신다면 더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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