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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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아, 진짜 돈 내고 스트레스를 샀네.”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나오며 뱉었던 말이다. 영화가 재밌다는 입소문을 탄 후 비교적 늦게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스마트 워치에 찍힌 높은 스트레스 지수와 심박수를 인증했고, 영화를 계기로 한국 현대사 영화 정주행 리스트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영화에 나온 배우들과 실제 인물들이 너무 비슷해서 호기심이 생겼고, 사람들의 이런 반응에 ‘꼭 봐야겠다’ 싶었다.

역사가 스포일러라고, 이미 이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결국 전두환을 필두로 한 하나회의 반란이 성공할 것이고, 이들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패배한다는 역사적 사실 말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간절히 다른 결말을 바랐지만, 다른 결말은 없었다.

영화는 박정희의 19년 군사독재 아래 민주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싸웠고, 그 결과 김재규의 총알로 독재가 끝나며 시작한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수많은 시민의 염원이 담긴 ‘서울의 봄’이 막 시작하려 했으나 하나회라는 ‘악’과 이들을 막으려는 ‘선’의 대결이 펼쳐지고, 전두광이라는 독재자의 통치가 막을 올리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끝난 후 계속 곱씹었던 건, 전두광의 반란을 막을 수많은 기회를 놓친 1979년의 ‘똥별’들이었다.

그들은 박정희의 장기 집권과 독재가 만들어낸 산물들이었다.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다가 감옥으로, 사형장으로 보내진 많은 사람이 있었고, 권력의 아부하며 정부 요직으로, 기업의 고위직으로 살아남은 많은 사람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친일파가 그렇듯, 자신의 생존과 사적 이익 외에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고, 군인으로서의 사명감이나 시민으로서의 양심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은 박정희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았고, 전두광이라는 명분도 없는 권력에 굴복하며 살아남아 청와대의 고위직으로, 국회의원으로, 장관으로 남은 생을 살았다.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전두환의 독재는 막을 내렸고, 2021년 전두환은 역사 앞에 사죄하지 않은 채 사망했다. 모든 게 다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2023년 우리의 현실은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와 같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이들이 만들어 시민들을 길들였던 ‘권력에 편승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일터에서, 삶터에서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상황을 맞닥뜨려도 ’혹시 내가 불이익을 받진 않을까‘ 걱정하며 말을 삼켜 본 경험은 모두에게 있다. 어쩌다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하더라도, 유난한 사람 혹은 걸림돌이 되는 사람 취급을 받고 그렇게 우리는 점점 입을 닫고, 눈을 감고 산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한 정부와 국회의 모습은 뉴스를 틀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침해하는 정책을 수립하거나 판결을 내리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2022년 1월, 일하다 죽는 세상은 그만하자며 경영계와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대를 뚫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2023년 1월까지 596명이 죽었으나 기소는 11건에 불과했고 이 중 실형 선고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게다가 내년 1월부터 법의 적용 대상이었던 50인 미만, 50억원 미만 사업장에 2년의 유예기간을 더 주자는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사법부가 정권과 기업의 눈치를 보며 법의 취지와 실효성을 무력하시키고 있다.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중대재해를 막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처벌받지 않을까‘를 연구하는 데에 수십억원의 자문비를 낸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길들여 온 군사독재의 잔재는 우리 사회 시스템 곳곳에서 여전히 우리를 통제하고 있다.

영화는 역설적이게, 시작하기도 전에 끝이 났던, 여전히 오지 않은 ’서울의 봄‘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다양성에 대해, 지켜지지 않은 권리에 대해,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자유로워질 때, 나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판단하고 생각하고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서울의 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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