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인천투데이|대한민국의 20세기와 21세기를 대비시키는 드라마틱한 정치경제적, 인구사회학적 변동 중 하나는 먹고살기 위해 ‘이민(emigation)’을 가던 나라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나라 밖에서 이민(immigration)‘을 오는 나라가 됐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행정안전부 발표를 보면, 2022년 11월 1일 기준 국내 장기 거주 외국인 주민 수는 총 225만8248명으로 전년 대비 12만3679명(5.8%) 증가했다. 2006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최다치이자 총인구(5169만2272명) 대비 비율은 4.4%다.

지난달 정부는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어서 2024년도 고용허가제 외국인력 도입규모를 역대 최고 수준인 16만5천 명으로 대폭 확대(2022년 6만9천 명, 2023년 12만 명)하고 고용 허용 업종도 기존 제조업에 광업, 농축산업에 임업, 서비스업에 음식점업을 추가했다.

법무부 장관이 2023년초 업무보고에서 발표한 ‘2023년 5대 핵심 추진과제’에 이민청 설립이 포함돼 있다.

“이민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지금의 생산가능인구가 유지되려면 10년 내에 출산율이 3배 늘어나야 한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생산 가능 연령으로 성장하는 15년간 국가의 성장 동력을 뒷받침하려면 이민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외국인의 출입국을 엄격한 통제 관점에서 관리하는 법무부장관의 발언이 이 정도라면 한국은 이미 ‘이민(移民)사회’이고 지금은 분명 ‘이민의 시대’가 됐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운영에 애로를 겪는 정도가 아니라 당장 문을 닫아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하는 산업계도 당연히 이민청 설립을 환영한다. 적극적 이민정책 없이는 활로가 없기 때문이다.

농촌과 어촌, 공장 등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외진 그늘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이 많지만 한국에서 이주민은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학교와 직장, 식당과 반송 등 일상생활 곳곳에서 다양한 이주민을 쉽게 만난다. 농어업이나 제조업 등 대한민국의 생산 현장은 이미 외국인 없이는 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대한민국의 일상이 멈출 수도 있다. 채소를 재배하고 닭과 돼지, 오리를 키우고, 물고기를 잡는다. 식당 설거지를 하고 아파트 공사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됐다.

이제 이주민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빠질 수 없는 구성원이 됐다. 앞으로 이주민은 더욱 더 한국 사회의 질적인 변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에 꼭 필요한 중요한 집단이 될 것이다. 때문에 법무부조차 이민정책을 ‘국가백년대계’라고 규정했다.

이민정책의 궁극적 목표이자 성공의 관건은 사회통합(社會統合)이다. 사회통합은 어느 한 구성원이나 집단을 주류사회에 일방적으로 흡수하거나 동화(同化)시켜 버리는 것이 아니다. 이주민은 단지 노동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사람으로서의 권리인 인권(人權)은 차별 없이 보장돼야 하고 ,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인 기본권은 최대한 향유돼야 한다.

선주민들은 이주민을 환대하고 있는가

그들은 소중한 자신들의 말과 음식, 감정과 생각,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진 채로 왔고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그것들이 훼손당하거나 침해되거나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이주민들은 환대(歡待)받고 있는가. 우리 선주민들은 그들을 환대하고 있는가.

먼저, 한국의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민의 일할 권리가 아니라 사업자의 외국인고용을 허가하는 제도로 존재한다. 이런 까닭에 정부가 외국인고용 규모를 대폭 확대하면서도 고용된 사업장을 변경하는 자유는 오히려 더 제한(지역이동 제한)하려고 한다.

가족의 더 나은 미래와 삶을 위해 멀고 낯선 곳을 찾아 온 이주노동자는 정작 이 땅에서 가족끼리 모여 살아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닭장 속에 갇힌 닭처럼 격리된 열악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한 비율이 공식 통계만으로도 내국인 노동자의 두 배에 달한다.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는 더욱 열악하다. 밭 한구석에 지은 비닐하우스에 냉난방도 없는 곳을 숙소로 배정받고 그 대가로 방세와 전기·통신비로 한달에 수십만 원을 떼이는 일이 여전하다.

2020년 비닐하우스에서 안타깝게 숨진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사건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에는 이른바 불체자(불법체류자)가 많다. 공식집계로도 전체 체류외국인의 20%라고 하는데, 불체가 많다는 것은 이 땅에서 겉도는 외국인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사회통합이 그만큼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영어로 ‘undocumented’로 불리는 미등록 외국인에게 굳이 불법이란 딱지를 씌워 부르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에 대한 단속과 구금, 추방 과정에서 끊이지 않는 인권침해 논란은 또 하나의 사각지대다.

지난 2021년 초부터 한 도시에서 이슬람사원 건축을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은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슬람사원 건립반대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이름하에 일단의 주민들은 사원 건설현장 부근에서 ‘돼지수육파티’를 여는가하면 공사장 출입구 옆에서 돼지머리와 족발, 돼지꼬리를 놓고 항의 시위를 하기도 했다.

차라리 종교와 세속을 구분 못하는 무지라면 모를까 이슬람에서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것을 버젓이 알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상대방에 대한 적대와 혐오의 무기로 쓰는 것은 도를 한참 넘은 폭력이다.

우리 언론들은 앞다투어 ‘모자이크 코리아’를 조명하고 ‘이민 한국’을 전망하는 기획특집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낸다. 우리 사회는 분명히 이민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는데, 국가 정책은 여전히 폐쇄적이고 우리들의 마음은 여전히 인색하다.

바람직한 이민사회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모자이크 사회다. 우리 국민들의 이민수용성도 차츰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들의 민낯은 적지 않은 야만의 모자이크로 일그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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