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익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조직국장

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인천투데이|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노동권과 생명권은 국민이 누리는 모든 권리의 바탕이다. 생명권과 안전권을 누림에 있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명제에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2023년 11월 3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음 기소된 기업인 두성산업이 법원에 신청했던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기각됐다. 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 내용이 헌법의 명확성 원칙 등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 회사 대표이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지난달 27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50인(억)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 연장 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뒤 지난해 1월부터 50명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5명 이상 50명 미만 사업장은 준비 기간 3년을 더 거쳐 2024년 1월 시행된다.

한국안전학회가 지난 3월 노동부의 발주를 받아 50인(억) 사업장 1442개를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준비 정도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법상 의무 이미 갖추었거나 준비 중’이라고 답한 곳이 82%였고, ‘안전보건 체계를 이미 구축했거나 준비 중’이라고 응답한 곳도 53%였다. 그런데 ‘법 시행 전 적용유예 연장 필요하다’라고 대답한 곳은 20%에 불과했다.

지난 10년간 50인(억)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1만2045명이고 전체 사망 사고의 76%가 50인(억)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오히려 최근 3년은 80%에 이르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감소 추세였으나 개악·추진 이후 되려 증가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을 중심으로 설계된 법이 아니다.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의무들을 제대로 이행하라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1981년 말에 제정됐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기까지 무려 41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사이 막을 수 있었던 수없이 많은 노동자의 죽음이 이윤을 앞세운 탐욕에 희생됐다.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는 정부와 사용주들의 주장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계속 방치하겠다는 그것과 다름없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초기 쏟아진 재계의 우려나 노동계의 기대와 달리 사업주의 무차별적인 구속 기소나 처벌은 찾아보기 어렵다.

안전모.(출처 픽사베이)
안전모.(출처 픽사베이)

법률 제정 과정에서 도입된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유예 조치와 도입 뒤 검찰의 소극적 수사와 사업주들의 꼬리자르기식 대응, 게다가 윤석열 정권이 출범하면서 50인(억) 미만 사업장에 대한 유예 연장을 검토하거나 안전관리를 사업장 자율 평가로 묶어 두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법률 제정의 의미가 지워지고 있다.

50인(억)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 연장은 단순한 시기 연장 문제가 아니라 법의 무력화의 한 축이다.

법 시행 이후 적용대상 사업장에서 400건이 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현재 기소는 30여건에 불과하고, 1심 판결은 10건 미만이다. 특히 중대재해 7건으로 노동자 8명이 사망한 DL이앤시 등 동일기업의 반복 사망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대기업의 반복적이고 상습적인 중대재해에 대해서는 봐주기 수사로 법망을 빠져나가게 방치하고 있으며, 50인(억) 미만 사업장에는 또다시 적용 연기로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더욱 한심한 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전제조건 수용 시 연장논의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에 부화뇌동하고 있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거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왜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었는지 잘 알려지지도 않을뿐더러, 보도되더라도 금세 잊힌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고, 내일도 ‘김용균’이 있을 것이지만 한국 사회는 노동자의 죽음에 무감각해졌다. 반성해야 한다.

노동자 생명의 가치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다르지 않다. 이는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적 장치 등이 사업체 규모에 따라 달라서는 안 되는 것을 의미한다.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노동자 개인에게 중대재해, 산업재해의 책임을 묻는, 시대를 역행하는 선택과 결정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중대재해처벌법 50인(억) 미만 적용을 유예하겠다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이름의 가해이자 적극적인 범죄 가담행위일 뿐이다. 국회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이라는 이름의 범죄 가담행위와 가해를 중단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의 모든 사업장 전면 적용에 즉각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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