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 말은 권력이고 약속이다. 정치인은 대중에게 자신의 정치 철학과 신념을 말로 얘기하며 정치를 한다. 정치는 생물이라 변한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인의 많은 말이 등장한다. 말로는 국민의 위한 정치를 표방하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술수를 쓰면서 말로 약속한 정치를 배신하기 일 쑤다.

내년 4월에 있을 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120여일 앞두고 거대양당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말의 정치, 생물 정치가 시작됐다. 민주당 이탄희 국회의원이 표심대로 반영되는 정치구조로 선거제를 개혁하기 위해 쏘아올린 작은 공은 민주당 내에서도 받아줄 기미가 안 보인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확실히 돌아서 후퇴한 게 분명하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다당제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위성정당 방지 등) ▲지방의원 2인 선거구 폐지 ▲비례대표제 강화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등을 약속했다.

“표의 등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 개혁으로 선의의 정책경쟁이 가능하게 하겠습니다.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비례대표 제도를 왜곡하는 위성정당 반드시 금지시키겠습니다. 피해를 입은 정당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2월 14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자격으로 서울 명동에서 한 연설 중 일부이다. 이른바 이재명의 명동연설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8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에 출연해 “선거는 승부인데, 이상적 주장을 멋있게 하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정상적 정치가 작동하는 사회라면 상식과 보편적 국민 정서를 고려해 타협과 대화를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1당을 놓치거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지금 이 폭주와 과거로 역주행을 막을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확실히 이재명 대표는 돌아섰다. 정치인은 말로 먹고 살고, 생물처럼 변한다. 한덕수의 배신과 이재명 대표의 변신은 별 차이 없다.

민주당은 툭하면 ‘노무현 정신 계승’을 얘기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많은 연설 중 대선 후보 시절 명 연설 중 하나가 ‘모난 돌이 정 맞더라도 대한민국에서 기회주의자로 살게 하는 정치를 타파하겠다’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 연설이다.

그 연설 대목 중에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 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 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 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회주의 정치구조 청산을 누구보다 강조했다.

거대양당이 독점하는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의 문제점과 표심대로 반영이 안 되는 병립형 비례대표 문제해결을 위해 여야는 21대 총선 당시 처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지역구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보다 적을 때 모자란 의석수의 50%를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제도이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도와 다당제를 도입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 제도 또한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출현시키며 취지를 무색케 했다.

이번 22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이 문제로 시끄럽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출현을 문제 삼아 과거 소선거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로 돌아가자고 한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 의석을 지역구 선거결과와 독립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지역구 선거결과와 상관없이 지역구 의석을 제외한 비례의석에서만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만큼 의석수를 가져간다. 진보정당을 비롯한 소수정당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진보정당을 비롯한 소수정당에 투표하는 표에 사표가 발생한다.

때문에 이재명 대표는 명동연설에서 사과하며 약속했고, 민주당은 22대 총선 선거제 협상 초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준’자를 떼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비례성을 강화하고 ‘위성정당 방지’를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엔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자는 국민의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을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연동형비례 약속 대신 권역별 비례대표 얘기가 나온다. 즉, 수도권, 중부권, 남부권 권역 3개로 나눠 거대양당이 독점하자는 말을 마치 국민을 위해 영남에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고, 호남에선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 될 수 있는 구조라고 호도한다.

상황이 이처럼 돌아가자 민주당 초선 의원이 표심대로 정치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작은 공 하나를 쏘아 올렸다. 위성정당 방지법을 대표발의한 민주당 이탄희(경기 용인정) 의원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연동형 비례제를 사수사고,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는 국민과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 다음 총선에서 용인정 지역구에 불출마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의 결단을 위해서라면, 그것이 어디든 당이 가라고 하는 곳으로 가겠다. 험지 어디든 가겠다. 김대중·노무현 정신으로 돌아가자, 그것이 우리 역사이고 전통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탄희 의원이 발의한 위성정당방지법과 국민과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에 관심이 없다.

얼마 전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무회의를 열어 4.27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9.19남북군사합의 일부 조항 효력 정지를 의결했다. 한덕수 총리는 지난 2007년 참여정부 시절 10.4 남북공동선언 이후 체결한 제1차 남북총리회담 합의에 서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16년 전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합의에 나선 국무총리가 이제는 남북긴장을 고조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그도 한때는 김대중·노무현 정신 계승자였던 한 사람이다.

말은 권력이고, 정치인은 말로 정치를 한다. 이탄희 의원이 쏘아올린 작은 공하나. 자신의 공약에서 돌아서는 이재명. 기득권 사수에 혈안 된 민주당. 과연 김대중·노무현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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