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굿 성역의 풍물굿에 황해도에서 피란 온 사람들이 연희예술 더해
삼산농악도 인구소멸에 점점 사라졌다가 인천문화재단 지원으로 부활

인천투데이=인투아이(INTO-AI)·김갑봉기자 | 일제강점기부터 산업화시대를 거쳐 민주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강화 석모도의 삼산농악은 마을 공동체의 결속과 지역 문화의 상징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 삼산농악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는 농악의 변천과 함께 마을 공동체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삼산농악은 그 기원과 형태에서 황해도 권역 문화권에 속한다. 황해도 풍물굿과 유사한 특징을 가진 삼산농악은 원래 12채의 가락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오채까지만 전수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대의 흐름과 지역 문화의 변동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삼산농악 재현 공연
삼산농악 재현 공연

1950년대, 마을의 유지인 고성찬씨는 삼산농악의 부흥을 도모하고자 황해도 연백 출신의 전문 풍물꾼 신쾌식 선생을 초청했다. 고성찬씨는 마을에서 신쾌식 선생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농악의 기술과 정신을 전수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고성찬씨와 그의 형제일가를 비롯해 마을의 중추적 인물들은 농악의 주요 악기를 담당하며 삼산농악을 마을의 문화로 정착시켰다.

누나(고정남)한테 물어봤더니 신쾌식 아저씨가 와서 오래 묵장 치고 계시는데 자기는 어려서 밥만 해주었다고 했지. 마당이 있는 아랫집에서 농악을 하고 거기서 항상 노는걸 우리가 봤지요. [고윤중 구술]

그분(신쾌식)이 오셔가지고 같이 있더니 같이 인천을 가서 사물패를 사 갖고 온 거예요. 호적은 우리 큰아버지가 불고, 작은아버지는 꽹과리를 치고, 5촌 아저씨는 징 치고, 사촌 오촌 아저씨 두 분이 계셨는데 한 분은 장구치고 한 분은 북 치고 [고정남 구술]

20세기 사라진 강화 석모도 삼산농악, 디지털시대 부활하다
20세기 사라진 강화 석모도 삼산농악, 디지털시대 부활하다

삼산농악의 예술·문화적 특징

강화도 석모도의 삼산농악은 그 뿌리가 깊고, 다양한 예술적·문화적 특징을 지닌다. 삼산농악은 기본적으로 마을 공동체의 굿인 두레굿의 성격을 띤다. 농경시대의 마을 공동체를 강화하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 작용해왔다. 여기다 황해도 권역의 연희 예술이 가미됐다.

① 두레굿의 역할

삼산농악은 경기 농악 중 북부 농악에 해당한다. 두레굿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두레굿은 모내기, 김매기, 길쌈, 추수 등의 농사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마을에서 조직한 '두레'가 행하는 풍물굿을 의미한다.

석모도의 주민들이 두레를 조직해 농사를 지으며 행해졌던 삼산농악은 경기북부와 영동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된 농사풀이의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다.

② 의례굿과 걸립굿

정월에는 지신밟기가 행해지며, 이는 집집마다 다니며 축원 재담을 하는 등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마을의 큰 역사나 공동사업을 위해 걸립을 행하는 전통도 있었다. 예컨대 마을 경로당 건립이나 개울에 다리를 놓는 등의 큰 사업이 있을 때, 걸립을 통해 필요한 재정을 모으는 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③ 연희굿의 특징

삼산농악의 또 다른 특징은 굿에 황해도 권역의 연희 예술이 잘 스며있다는 점이다. 장단마다 다양한 변화 가락이 있었으나, 점차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북을 주로 사용하는 치배 구성, 소고가 놀기 좋은 가락 구성, 그리고 ‘허튼연풍대놀이’와 같은 독특한 놀이들은 삼산농악만의 특색을 나타낸다.

삼산농악은 특히 소고놀이가 발달했으며, 무동놀이와 상모돌리기 등도 행해졌다. 이처럼 마을마다 연희적 요소가 다양하게 나타나며, 특히 항포마을에서는 가마싸움이 행해지는 등 지역별로 독특한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삼산농악의 예술적 및 문화적 특징은 강화 석모도의 농악이 단순한 공연 예술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과 역사를 반영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해왔음을 보여준다.

삼산농악 재현 후 예전 기념사진을 배경으로 새로운 기념 촬영 모습
삼산농악 재현 후 예전 기념사진을 배경으로 새로운 기념 촬영 모습

삼산농악도 인구소멸에 점점 사라졌다가 인천문화재단 지원으로 부활

195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삼산농악은 지역 농악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며 강화도와 인천 지역에서 명성을 떨쳤다. 이 시기는 삼산농악이 마을 공동체의 정신을 구현하고 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부흥기로 기록된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마을의 고령화와 청년층의 도시 이주가 진행되면서 삼산농악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굿으로서의 전통적 형태를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전승 과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뒤 1990년대 들어 삼산리 지역주민들과 승영중학교 학생들은 농악회와 농악부를 설립하여 전승 노력을 지속했으나, 2000년대 들어 이러한 노력도 점차 사라지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삼산농악의 예술적 및 문화적 특징은 강화 석모도의 농악이 단순한 공연 예술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과 역사를 반영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해왔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에 삼산농악은 2022년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부활했다.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을 통해 진행된 삼산농악의 재현과 부활 프로젝트는 이러한 전통의 현대적 해석과 지속 가능한 전승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중요한 시도로 평가된다.

 전통예술단 타락, 2021년부터 삼산농악 연구해 공연으로 창작 

2023년 11월 26일 강화 석모도 석모3리 마을회관에서 펼쳐진 삼산농악 재현 공연은 인천문화재단 지원 사업으로 부활했다.

전통예술단 타락 구자호 대표
전통예술단 타락 구자호 대표

이날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을 통해 진행된 삼산농악의 재현과 부활 프로젝트는 전통의 현대적 해석과 지속 가능한 전승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중요한 시도로 평가된다.

전통예술단 타락(대표 구자호)은 2021년부터 진행해 온 삼산농악 연구를 토대로 삼산농악을 발굴했다. 삼산농악의 역사와 연행했던 장단을 연구하고 삼산농악을 지켜온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풍물연희극 ‘캥무갱 캥캥’이라는 이름으로 3년 만에 공연을 했다.

전통예술단 타락 구자호 대표는 2021년 석모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우연히 풍물강습을 하다가 삼산농악의 존재와 역사를 알게 됐다. 그 뒤 구자호 대표는 2022년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삼산농악 발굴 연구를 진행했다. 2023년에는 그 연구 결과를 공연으로 창작했다.

구자호 대표는 “이번 공연은 삼산농악을 원형 그대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두기보단 삼산농악을 지켜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작업하고, 삼산농악을 실제로 연주했던 마을주민과 함께 연주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한편, 전통예술단 타락은 마을주민과 협력해 전체 삼산농악의 12채 장단 중 아직 발굴하지 못한 나머지 5채 장단을 발굴하고 전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올해 삼산농악을 토대로 창작한 풍물연희극 ‘캥무갱 캥캥’을 석모도를 대표하는 전통문화 콘텐츠로 육성하겠다고 부연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