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인천투데이|최근 한 여성의 국내 자궁 재이식 성공 사례가 보고돼 크게 주목받고 있다. 보도된 기사를 보면, 선천적으로 자궁이 없이 태어난 마이어 로키탄스키 쿠스터 하우스(MRKH) 증후군을 지닌 여성이 두 번째 자궁 이식을 시도했으며, 현재 10개월째 큰 거부 반응 없이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 여성은 첫 번째 시도에서는 모친의 자궁을 기증받았으나 이식에 실패해 적출했으며, 두 번째 시도에서 뇌사자의 자궁을 기증받았다. 자궁을 이식받은 경우 1, 2회의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고 알려졌으며 2018년 브라질에서 자궁 이식에 성공한 여성이 출산을 마치고 자궁을 적출한 사례가 있다.

최근 국내 자궁 이식 사례는 선천적 신체 기능의 이상으로 인해 임신과 출산이 원활하지 않은 이가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의학적 기술이 보조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포스트 휴머니즘 시대의 기술의 승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뿐만은 아니다. 포스트 휴머니즘의 근간이 ‘인간 신체 능력의 극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표준적 인간’에 해당하는 지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에 있다고 볼 때 우리가 논의해야 할 지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체내 생식기관에 기초해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행위는 유독 ‘여성의 몸’에 대한 담론과 결별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이를 고려하면 자궁 이식을 단순히 기술적 진보를 통한 가능성 실현에 국한되는 사안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자궁 이식을 여성의 신체적 한계 극복이라 여길 때, ‘자궁-임신-출산’은 곧 여성 그 자체를 대변하는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며, 이러한 토대 위에서 윤리성을 문제삼을 때조차 ‘신체기관으로서 여성’의 관점은 여전히 유지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번 한국의 이식 사례에서 자궁이 현행법상 이식 가능한 장기가 아닌 상태이므로 일련의 수술 과정이 ‘임상연구’로 진행됐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이식 가능한 장기의 목록에 자궁을 포함시키기만 하면 해결될 문제일까. 이는 여성의 정체성을 출산 관련 신체 기관으로 연관시키는 담론의 재생산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임신과 출산 관련 장기의 이용은, 기증과 장기 매매라는 경계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다. 한국에서는 불법이나 미국을 비롯한 나라에서 합법화된 대리모 출산의 경우 일종의 장기 매매와 같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사실상 대리모 출산은 장기의 ‘대여’라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넓은 의미에서 매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폐, 간 등과 같은 다른 장기를 상업적으로 매매하는 것이 비판되는 것과 달리 유독 ‘임대 자궁’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요컨대 여성의 몸과 신체 기관을 이전함으로써 재생산을 유지하고자 할 때에는 장기 매매라는 윤리적 문제에서 비껴있다는 점에서 가부장적 기준이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로살리 베어, ‘대리 임신을 둘러싼 윤리적 쟁점’ 참조).

물론 자궁 이식의 경우 매매가 아니라 반드시 기증받는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이 논란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단순 매매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생명 존속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신체 기관의 이전을 통해 이분법적 성별 기준에 근거한 특정 성별의 출산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여성 신체에 대한 가부장적 관점의 허용’이라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포스트 휴머니즘과 기술적 실천을 통해 도달해야 할 지점이 ‘신체의 극복’이 아니라, 생산 행위와 성별을 고착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성별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신체 기관의 수행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특히 그렇다.

사실 ‘여성=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지 않는 임신·출산의 수행이 꼭 자궁 이식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인공자궁의 사례가 있다. 인공자궁은 1924년 과학적 개념으로 처음 소개되었는데, 지난 9월 기사를 보면, 이미 6년 전 미국에서 초미숙 상태의 양(羊)을 인공자궁을 통해 키우는 데 성공한 사례가 존재한다.

인공자궁이 완전한 해결책은 아닐지라도, 인간의 자궁에 의존하지 않고서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즉 특정 성별의 임신·출산에 대한 담론의 바깥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별 패러다임의 전환을 유도할 수 있다.

자신의 몸으로 임신·출산하고자 하는 바람이 꼭 지정 성별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님을 고려한다면, 자궁 이식을 통해 임신과 출산을 원하는 이들이 자신의 그러한 정체성을 실현하는 데 이 기술이 도움이 된다는 것까지를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모든 젠더의 자궁이식을 통한 임신·출산이 가능해지는 상황이 도래한다고 하더라도, 자궁이라는 신체 기관이 여전히 친모 내지는 증여자 ‘여성의 몸’으로부터 적출돼야 한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길 것은 아니다.

여성과 자궁에 대한 분리된 인식 없이, 여성의 몸(특히 뇌사자 등이 아닌 경우)이 재생산을 위해 이동된다는 것은 하나의 장기(臟器)로서 여성과 여성의 몸을 사유하게 하는 지점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우리가 자궁이식의 실천 가능성을 통해 지금부터 함께 고민해야 할 질문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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