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희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 센터장

홍인희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 센터장
홍인희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 센터장

인천투데이|자월도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50분, 차도선으로 1시간 3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자월면에는 자월도, 대이작도, 소이작도, 승봉도 4개의 유인도가 있으며 그중에서 도 자월도는 자월면사무소가 있는 행정 중심 섬이다.

이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로 보인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2000년에 발간한 ‘군사 보호구역 문화유적 지표조사(경기도)’에 의하면 패총과 수집 유물들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으나 지금은 확인되지 않는다.

자월도는 고려시대에 조홀도(祖忽島), 조월도(祖月島), 소물도(召勿島), 조물도(祖勿島)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소홀도(召忽島), 소물도(召物島)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자월도는 섬이 누에 모양으로 생겼으며, 붉을 자(紫)에 달 월(月) 한자를 써서 붉은 달이라는 뜻이다.

붉은 달을 보았다고 해서 자월도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사실 옛 지명인 조홀도, 소홀도라는 지명을 풀어보면 ‘작은 마을 섬’이라는 뜻을 한자로 음차해서 썼다는 ‘옹진군지’의 설명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유배지로 사용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조선시대에는 서해안의 섬이 그랬듯이 목장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만들었던 봉수대도 있었으며, 지금도 봉수대의 흔적은 남아 있다.

자월도 조사 중에 중요한 발견은 1800년대 지어진 민가를 2채나 확인한 것이었다. 자월1리에는 1881년(광서 7)에 지어진 집<이 집은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역사문화자원 전수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 전수조사’에서 먼저 확인한 집>이 있고, 자월2리에는 1886년(광서 12)에 지어진 집이 확인됐다.

두 집 다 묵서로 된 상량문이 남아 있다. 이 집들은 지금 모두 빈집으로 비, 바람에 조금씩 무너지고 있지만 기본 뼈대인 서까래만큼은 아직 튼튼하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2022년에 조사한 『덕적도』 조사보고서에도 1851년 건립된 민가가 있다고 보고 됐다.

이 집도 상량문이 남아 있으며, 덕적도 민가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 조사를 더 해 봐야 하겠지만 서해 도서에는 오래된 민가가 도심과 다르게 왕왕 남아 있다. 이러한 고택은 중요한 생활 유산이기 때문에 앞으로 보존 활용할 방안이 마련되면 좋겠다.

1647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문신 이명한의 시문집 ‘백주집(白洲集)’에는 소홀도라는 제목의 시가 나온다. 한국고전번역원 DB에서 확인 한 결과 전근대 시기 절해고도였던 자월도를 대상으로 한 시는 이 시가 유일하다.

이명한(1595~1645)은 연안 이씨로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627년 1월부터 3월까지 일어났던 정묘호란 때 인조를 호위하여 강화도에 들어갔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도 강화도에 피난을 갔었다.

이명한은 1627년(인조 5) 11월~1629년(인조 7) 봄까지 남양도호부사를 지냈고 당시 자월도는 남양부 소속이었다. 당시 이명한은 33~35세였으며 자월도가 얼마나 멀고 험한 곳인지 시에서 그 느낌이 전해진다.

인천문화재단과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옹진군청은 사라져 가는 섬 주민의 생활 모습이나, 풍속 들을 기록하고 보고서와 전시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는 1년 동안 자월도를 조사했다. 지금 보고서 편집 작업 중으로 연말에 보고서가 발간될 것으로 알고 있다.

자월도 한 섬만 대상으로 한 보고서의 발간은 처음이다. 주로 옹진군 전체를 대상으로 하거나 자월면 단위의 조사였다. 그러나 섬은 생활권이 비슷하더라도 다른 섬을 가려면 배를 타고 가야 해서 각기 섬마다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

과거부터 섬은 변방이라 유배지 말고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온전히 하나의 섬 자월도만 주인공이 되어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자월도 주민 인터뷰 중에 들은 아련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80대 구술자는 6남매의 맏이로 국민학교 시절 추운 겨울날 학교 가기 전 새벽에 늘 아버지를 도와서 소를 몰아 연자방아를 돌렸다고 한다.

추운 새벽이라 너무 손이 시려 “아버지 손 시려요”라고 하니 아버지가 겨드랑이에 두 손을 넣어 주셨는데, 너무 따뜻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며 훈훈한 온기를 느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따뜻한 자월도 사람들을 생각하며 인천에 있는 보물섬 자월도를 방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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