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정수의 알쓸신서 ⑫ 부자 되기를 가르치는 학교

하금철 외|교육공돋체벗|2023

인천투데이=변정수 도서평론가|출판편집자로 일해 보겠다는 포부를 품은 젊은이들을 10년 넘게 가르쳤다. 진로탐색에 조언을 구하러 나를 찾는 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늘 당혹스러웠다.

그이들 대다수가 정작 자신이 하려는 일이 어떤 일인지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더라는 대목도 딱한 일이지만, 그보다도 스무 살이 넘도록 아무도 이들에게 ‘직업’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려준 적도 없고 직업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를 고민할 계기를 마련해 준 적도 없더라는 사실을 확인하곤 하는 것이 더 참담했다.

어떤 직업을 떠올려도 도무지 소질도 없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도리질을 하기만 하는 이에게 “그래서 정말 원하는 게 뭔데”를 캐묻다가 “로또나 됐으면 좋겠어요”라는 아주 ‘솔직한’ 답을 듣고야 말았을 때의 착잡함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무슨 일을 하고 싶다면야 어떻게든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으려 애쓰겠지만, 실은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이를 도울 방법은 없을 테니까.

최근에는, 20대들이 ‘연공급’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에 망연해지기도 했다. 물론 흔히 그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제시되는 ‘성과급’이 바람직한 것도 실은 아니지만, 성과에 상관없이 오래 일할수록 급여가 오르는 연공급에 대해 젊을수록 반감이 크리라는 편견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그건 아주 노골적인 지대 추구 욕망의 표현이라고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심지어 정규직으로 취업한 것도 아니고 단지 그걸 준비하고 있을 뿐인 처지에서조차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완강하게 반대하던 기괴한 모습이 포개져 보이기도 했다. 요컨대 이 사회는 성장기의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직업관과 노동관을 심어주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학교 현장의 실상을 새삼스럽게 접하고는, 밀려오는 먹먹함에 더 보탤 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현실에서는 제대로 적용하지도 못할 고리타분한 도덕 교과서만 읊조리는 학교가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학교에서부터 ‘합법적인 도박’에서 돈 따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설마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의 작동 원리와 합리적인 투자법을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요구는 단지 주장에 그치지 않고 실험적으로나마 이미 도입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교사나 학부모들이 늘고 있는 것만은 어김없는 현실이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의 도박 중독이 우려된다며 예방교육을 의무화하고, 주식과 부동산 투자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치는 이율배반이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한다.

이러니 “도박 중독의 위험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끊임없이 돈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는 현실에선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물신주의가 창궐하는 공동체는 끝내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역사적 교훈조차도 “이미 허물어져 더 무너질 공동체도 없다”고 조롱하는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명분은 언제나 ‘현실’이다. 배울 만큼 배우고도 세상 물정에 어두워 험한 세상에 치이기만 한다면 그 배움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지만 정작 알아야 할 ‘세상 물정’이 고작 ‘돈 놓고 돈 먹는’ 요지경속에 길들여지는 것만은 아닐 터이다.

“생존의 위기에 내몰렸을 때 기꺼이 자신의 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을 사회가 함께 덜어달라고 청하는 법을 배우는 것, 여기에 어떠한 죄책감이나 수치심도 끼어들지 못하게 방어하는 것”이 진짜 ‘생존경제교육’이고 거기에 정작 학교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에 마땅히 귀를 기울일 일이다.

나아가 ‘무엇을 가르칠까’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노동법을 몰라서, 노동법 교육을 안 받아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참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통렬한 지적은 깊이 음미할 만하다.

“존중받아 본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 정작 핵심이다. 그러니 학교가 아닌 사회가, 기성세대가 먼저 답해야 한다.

어떤 세상을 살고 싶은지, 아이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지, 그리고 나는 내가 바라는 세상 앞에서 과연 얼마나 떳떳한지. 교육이 실패하고 있는 건, 이런 질문을 할 줄 아는 ‘어른’들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기 때문 아닐까.

*알쓸신서는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서적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