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인천투데이|‘과잉(過剩)’을 뜻하는 그리스어 ‘히브리스(hybris))’가 어원인 휴브리스는, 과거에 거둔 성공에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오만하고 불손한 태도로 신의 영역까지 넘보다가 신과 갈등을 일으켜서 급기야 복수의 신 네메시스(Nemesis)의 응징을 받고 결국 파멸하고 마는 그리스 신화의 몇몇 영웅들의 성격, 곧 자만(自慢) 또는 교만(驕慢)을 일컫는 말이다.

이 고대 그리스 단어를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1889∼1975)는 '역사를 바꾸는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그 성공으로 인해 교만해져서 남의 말에 귀를 막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다 결국 판단력을 잃게 되는 것'으로 재해석했다.

요컨대, 성공한 리더(leader), 권력을 쟁취한 성공한 권력자(權力者)가 보여주는 거침없는 교만이 휴브리스라는 거다. ‘난 성공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나는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문제는, 자신의 능력과 성공에서 오는 휴브리스 리더의 과대평가 성향이 ‘오만 증후군(hubrissyndrome)’을 유발한다는 데 있다. 오만증후군의 이른바 14가지 의학적 장애들 중에는 타인의 조언 무시하기, 타인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 현실에 대한 인식 결여,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의 상실 등이 포함된다.

휴브리스 리더는 남들 의견을 더 큰 목소리로 짓누르고 윽박지르고 굴복시키려고 한다. 겉으로는 짐짓 겸손할 수 있을 지 몰라도 내면은 교만이 지배한다.

주변 사람들이 볼 때 휴브리스 리더들의 오만과 불손, 독단과 방종은 때로 결단력있는 강(强)한 자아로 혼동하기 쉽다. 이런 착시(錯視)가 어쩌다 대중적 지지와 열광을 얻게 되면 휴브리스 리더의 자아도취적 자기애(自己愛) 즉, 나르시시즘(Narcissism)으로 귀결돼 버린다.

적당한 자긍심과 자신감은 긍정적인 반면에, 자아도취 수준의 자기애는 하나의 인격장애를 넘어서 그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에 병리적(病理的)으로 작용한다. 경험적 연구들에 따르면 정치와 경제분야, 특히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자기도취적 인격장애가 상대적으로 더 흔히 나타나고 그 정도가 더 심각하다고 한다.

굳이 실증 연구가 아니더라도 그런 모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인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새삼 너무 자주 목도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 우울할 따름이다.

휴브리스 리더들은 스스로를 지나치게 자신만만해 하는 반면에, 매사에 조심(操心)하고 회의(懷疑)하는 타인을 가리켜 멍청하다고 경멸하곤 한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The Triumph of Stupidity(1935)’라는 에세이에서, “현대사회에서 똑똑한 사람들은 매사를 의심하는데, 바보들은 지나치게 자신만만하다는 것이다”라고 보기 좋게 반박한다.

정말 멍청한 자는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거다. 러셀 훨씬 이전에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가 일갈했던 바도 똑같다.

데카르트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 멍청함도 마찬가지다. 멍청한 인간일수록 자신의 멍청함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오만한 태도로 주변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단정한다”고 했다.

지구 이쪽에 고대 현자 공자(孔子, B.B.551∼B.C.479)가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정말로 아는 것이다(지지위지지부지위부지시지야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是知也)”라고 했다.

그런데, 지구 저쪽 고대 현자 소크라테스(B.B.470∼B.C.399) 역시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만을 안다”는 최고의 교훈을 남겼다. 지혜는 이렇게 상통한다. ‘무지(無知)의 지(知)’이고 ‘겸손(謙遜)’의 지혜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요 참이라는 생각, 나는 모든 것을 경험했고 그러므로 나는 곧 모든 것을 안다는 생각은 휴브리스의 덫이다. 불가(佛家)에서 경계하는 것도 아상(我相)이다. 아상은 자기의 학문·재산·문벌·지위 등을 자랑하면서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다.

이건 어쩌면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를 둔 인정(認定)욕구다. 그래서 사회에서 그리고 타인에게서 인정받고 환호받고 싶은 마음의 집착을 버리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아상을 버리고 겸손에 머물 줄 아는 ‘지지(知止)’의 지혜를 터득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리더와 권력자들에게 더더욱 요구된다.

불가에서는 그 가장 효과적인 방도가 피와 땀, 눈물이라는 3가지 액체를 흘리는 길이라고 한다. 휴브리스 리더들, 휴브리스 권력자, 휴브리스 어른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세상의 권위가 주어지고 명예가 쏠릴수록, 리더가 되고 권력자가 되고 어른이 될수록, 작은 목소리로 조용조용 말하는 사람이 드물어지는 게 어쩔 수 없는 세상 이치일지 모른다.

그래도 가끔은 ‘낮은 목소리를 지닌 고요한 어른(이연실, 조선일보 2023.8.10.)’을 만나보고 싶다. 어디서 들은 얘기도 생각난다. 능력은 리더를 돋보이게 하지만, 겸손은 리더를 존경받게 한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