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주기에 부쳐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인천투데이|10월 29일 이태원 압사 사고 1주기를 앞두고 최근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가 서울시청 시민분향소 앞에서 호소문을 낭독했다.

참사를 제대로 규명하지 않고 면직 또한 회피하는 정부와 책임자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이태원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일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 시민의 연대에 대해 언급했다.

동시에 할로윈은 참사의 원인이 아니라며 축제 자체를 부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시민 누구나 삶에서 즐길 수 있는 ‘안전한 축제’를 강조했다.

최근 10년 사이 시민 안전에 무책임하게 임한 국가로 인해 우리는 트라우마적 참사를 한 차례 이상 경험했고,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한 방식으로 특정 참사가 벌어졌던 시기 해당 참사와 관련된 행사와 축제를 취소하고 침묵의 일상을 보내는 것을 택해오곤 했다.

세월호참사 직후 중고등학생의 수련회, 수학여행 등 각종 1박 이상의 행사들이 취소된 바 있고, 올해 할로윈도 전과 달리 잠잠할 예정이다.

이태원 참사가 겨우 1주기를 맞았을 뿐이고 그 사이 정부로부터 진상 규명이 제대로 진행된 바 없으며 사고의 책임자 또한 책무를 방기하고 있음을 상기하면, 이러한 상황에서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축제를 즐긴다는 것이 모종의 죄책감으로 다가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앞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가 발표한 호소문 내용을 떠올려 볼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추모의 방식이 축제를 포기하고 묵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건과 유관한 행사를 모두 취소하는 방식으로 추모를 지속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는 세월호 참사 시절 중고등학생이었던 이들이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익히 경험된 바 있다. 이들 가운데 이르게는 중학생 때부터 사회적 추모 차원과 변경된 교내 지침에 따라, (그리고 훗날에는 코로나19로 인해) 1박 이상의 단체 타지 여행 경험이 전무한 채 성인이 됐다.

이렇다는 것이 어떤 경험치의 수준에서 환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우정을 경험하는 것뿐 아니라 불편함이나 어색함을 감수하면서 타인과 시간을 보내는 경험의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다.

이는 정부를 통해 관리되는 이동 수단에 대한 안전성과 정부 자체에 대한 신뢰도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나, 참사에 대한 명확한 답변과 대책을 촉구하는 것과 참사와 연관된 종류의 행사를 폐지하는 것은 결코 같은 방식의 추모 방식이라 할 수는 없다.

앞의 호소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축제 자체에 대한 폐기가 언제까지고 추모와 동일시 될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축제·행사를 연기하거나 폐기함으로써, 그것을 즐기는 것이 곧 시민의 연대 책무 유기의 구도로 설정되는 것은 오히려 참사의 비극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회피하는 책임자에 의해 이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저마다의 추모 방식이 있고, 누군가에게는 매년 참여하던 할로윈을 올해에는 가지 않는 것이 그 한 방식일 수 있다. 이를 존중하면서도, 우리가 일상의 즐거운 경험을 포기하는 것이 곧 추모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핵심은 우리가 마땅히 시민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정부로부터 안전하고도 즐거운 생활의 일부를 보장받는 것에 있고 그러므로 축제와 추모는 양립될 수 있다.

나는 2016년부터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304낭독회에 일꾼이자 낭독자로 종종 참여하고 있다. 이 낭독회는 매달 한 번 구성되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기를 바라는 글을 자유롭게 선정해 낭독한다.

그날을 회고하며 무거운 고백담이 이어지기도 하고 죽음이나 연대에 대해 성찰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기도 한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그저 무거운 마음으로 울기만 하고 자리를 뜨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낭독을 마친 뒤 간혹 진행되는 노래를 감상하며 마음을 풀기도 하고, 낭독회가 끝난 후 저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때론 자리를 이동해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기도 하는데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슬픔’의 상태로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무거운 마음으로 낭독회를 마치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나는 잘못된 추모를 하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가 추모 행사에 모인 까닭은 슬픔을 공유하되 슬픔에만 잠식되지 않으며, 그날을 기억하고 앞으로의 행동을 촉구해나가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기억과 전진 역시 추모의 방식임을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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