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석 인천평화복지연대 평화통일위원장

장금석 인천평화복지연대 평화통일위원장
장금석 인천평화복지연대 평화통일위원장

인천투데이|평소 남(南)을 ‘남측’ 또는 ‘남조선’이라고 표현해 오던 북(北)이 최근 들어 각종 담화와 연설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전 막을 내린 아시안게임의 남북 여자축구 경기 결과를 보도하면서는 남을 향해 ‘괴뢰’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북이 갖고 있는 남에 대한 인식과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7월 10일 미군 정찰기가 북한의 경제수역을 침범했다며 이를 비난하는 김여정의 담화에서 북은 “대한민국의 합동참모본부가 미 국방성이나 미 인디아태평양사령부 대변인이라도 되는듯 자처해 나서고 있다”며 남측의 정식 국호를 사용했다.

이러한 표현은 다음 날인 11일과 17일의 담화 그리고 이후 강순남 국방상의 담화와 연설에서도 지속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이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잠정적 특수관계’가 아닌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 즉 두 개의 국가 관계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북의 변화는 이미 지난해부터 감지됐다.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은 전승절 연설에서 “남북이 서로 상대하지 말자”고 다소 과격한 언급을 한 바 있다.

또 김여정은 윤석열 정부가 8.15경축사에서 담대한 구상을 발표하자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는 내용이 담긴 담화를 내놓기도 했다.

북의 이러한 변화는 북미 하노이협상 노딜 이후 악화일로를 밟아온 남북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선제타격을 운운하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더욱 강경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이유는 윤석열 정부가 한미 양국이 북과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의 비핵화를 대화의 선결조건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과 한 약속의 파기일 뿐 아니라 핵을 체제보전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북의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수용 불가능한 요구이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이후 북한의 핵위협에 맞서 동맹수준의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맞서 북은 지난 9월 26~27일 이틀간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에서 헌법 조항을 개정하며 핵무력 강화를 아예 삽입시켜 버렸다.

이 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군사동맹’으로 평가하며 이를 아시아판 나토(NATO)로 규정했다. 이는 옳고 그름을 떠나 북한의 현실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안보의 딜레마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은 왜 남(南)을 남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표현한 것일까. 또 1982년 이후 사용하지 않던 괴뢰라는 표현을 왜 또 다시 사용한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21년에 있었던 8차 당대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은 당대회에서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을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에서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발전 실현”으로 개정했다.

또 “조선노동당은 사회의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한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민족의 공동 번영을 이룩”이라는 내용을 삽입했다.

이는 ‘비대칭적인 탈냉전’의 현실과 ‘UN동시가입’, ‘남북정상회담’ 등의 상황을 반영한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민족의 공동번영’을 언급했다는 측면에서는 2007년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에서 합의한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각기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하자는 약속을 실행에 옮긴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남(南)을 비판할 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것은 자신들을 자주적이고 독립된 주권을 가진 나라로 인정하라는 북의 바람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남북관계를 같은 민족끼리의 특수관계가 아닌 적대국의 관계로 대체할 수도 있다는 남을 향한 경고의 뜻도 분명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북이 ‘우리민족제일주의’ 대신 ‘우리국가제일주의’를 내세우며 한반도에서의 두 개의 국가를 공식화하고 사실상 통일을 포기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잘못됐다.

개정된 당규약에는 “민족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분명히 명시돼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2019년 신년사에서 “전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수령제 국가이자 당·국가 체제인 북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북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남북관계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대화와 협력의 기운은 사라진 지 오래고 윤석열 정부가 불러온 긴장감만 가득하다.

핵협의 그룹이 상설화되고 한반도의 공중과 해상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북을 겨냥한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이 전개되고 있다.

러우전쟁이 지속되고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충돌로 새로운 중동전쟁이 우려되는 지금 한반도에는 이를 뛰어넘는 전쟁의 기운이 고조되고 있다

핵 사용 시 정권 종말이라는 북을 향한 공허한 협박 말고 국민 앞에 약속한 국가 보위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주길 바란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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