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위공(송도·여의도) 박병언 대표변호사

윤석열은 민주당이 지지율을 빼앗긴 그 이유를 극복하겠다며, 민주당에 어퍼컷을 날리겠다며 대통령이 됐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자신이 왜 대통령이 됐는지도 모르고, 민주당과 싸울 생각도 전혀 없는 것 같다.

민주당이 정권을 빼앗긴 이유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1.7.6.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한 사실을 들어 “한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20대 대선에서 패배했다.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송도) 대표 변호사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송도) 대표 변호사

이것은 대한민국이 1945년 해방 이후 경유한 발전경로에서 “제3기”로 접어들었음을 명백히 방증한 한 사건이었다. 민주당 문재인 전 19대 대통령과 이재명 20대 대선 후보는 선진국으로서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이는 윤석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해방 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경로를 보면, 한국은 크게 두 단계를 거쳐 현재에 도달했다. 첫 단계는 해방과 전쟁의 혼란기를 거쳐,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경제성장의 토대가 형성된 시기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까지, 정치적으로 민주화에 성공하고, 불평등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발전이 지속되던 이때까지를 대한민국 발전 제1기로 평가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그 이후 제2기가 어떻게 진행됐고, 제2기가 윤석열 당선으로 인해 어떻게 끝이 난 것인지 이해하는 데 있다.

1998년부터 대한민국의 성장은 제1기와 발전 양상을 달리했다. 1990년경부터 본격화한 중국의 자본주의화에 따라, 대한민국은 1997년 외환위기에서 비롯한 IMF경제불황 국면을 조기에 청산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 결과 2021년에 앞서 말한 ‘선진국 선언’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IMF를 극복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도입하고, 수출주도 기업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쳤던 것은 이제 20여년이 지난 뒤 급여수준에서 동질적이지 않은 상위중산층과(이들은 주로 서울에 거주하는 수출대기업의 직원과 그 관련기업 직원들, 정부 공기업·공공기관 종사자들이다) 하위중산층(중소기업에 다니고 비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으로 한국사회의 계층이 양분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0년대 초까진 두 계층의 급여차이는 크지 않았다.

달라진 급여수준이 20여년 경과하는 동안 상위중산층과 하위중산층의 자산 격차는 더 커졌다. 경제력의 차이(즉, 고소득 부모를 둔 경우와 아닌 경우)에서 고소득층의 자산이 더 급격하게 상승했다.

이는 ‘젊은 시절에 열심히 고생하면 40대 전후에 내 집을 마련하고, 2명의 자녀를 고등학교 교육까지 마치게 할 수 있다’는 대한민국의 암묵적 사회계약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았다.

사회양극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진국에 도달한 모든 국가가 겪는 문제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회가 양극화 돼 가던 시기 한국 정치는 어떤 대응을 했던 것일까?

제2기부터는 정치적으로는 ‘정권교체를 일반적인 상황으로 간주하는 민주주의’가 한국사회에 자리 잡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까지는, 민주당의 집권은 어쩌다 일어난 우연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노무현의 당선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근대화’와 ‘반북’, ‘박정희’ 상징되는 정치세력이 결코 주도적인 세력이 아님을 명백하게 확인한 사건이었다.

또 하나는 노무현이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된 과정이었다. 당내 비주류였던 노무현은 당을 장악하고 대선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공식기구가 아닌 외곽의 시민들을 직접 조직해 당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대선후보가 됐다. ‘노사모’의 시작이다.

노무현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노무현이 성공한 방식은 이후 민주당과 보수정당(현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정치활동을 진행하는 기본 틀이 됐다.

민주당은 2004년 총선부터 개방형 국민경선제를 도입한 후, 이를 당의 각종 공직선거후보자 선출의 기본 제도로 삼고 있다. 이로 인해 고건(고사모 우민회, GK피플), 정동영(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이재명 현 당대표도 이 모임 출신이다), 유시민(참여정치 실천연대) 등의 시민조직을 위한 사조직들이 필수적으로 생겨났다.

이들 모임 간에 누가 더 민주당을 위한 모임인가를 두고 ‘배노(노무현을 배신한자라는 뜻)’, ‘활노(노무현을 사랑하는 척 하면서 활용한 자들이라는 뜻)’라며 정통성 논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도 특징이다.

민주당 안팎의 의견그룹들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두 개의 계층으로 분화돼 끝이 없는 상호 경쟁상태로 들어선 것을 개선할 정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민중들이 고난 받는 근본 원인인 ‘보수정치세력’에 대한 ‘악마화’에 골몰했다. 민주당내 타 정파 역시 그런 보수정치세력에 부화뇌동하는 내부의 문제아들일 뿐이었다. 지금은 예전 ‘배노’ ‘활노’가 ‘수박’과 ‘친명’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민주당이 이렇게 진화하고 정권유지에 성공하자, 보수진영도 현대적 민주주의에 걸맞는 이념과 대중운동을 진행해야 한다는 게 명확해 졌다. 정부가 나서서 시대가 바뀌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공·반북·친미를 외치는 지금까지와 다른 시민사회운동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보수 시민단체가 결성되고, 뉴라이트 운동이 시작됐다. 지금은 일상적인 광경이 된 보수단체들의 광화문 광정의 대규모 집회는 2003년부터 시작됐다. 보수정치세력 역시, 민주당을 악의 축으로 삼고 ‘민주당=북한=중국’이라는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데 골몰할 뿐,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개선할 실제 문제에 대해 눈을 감기는 마찬가지였다.

대구에서 어느 정치입문자가 걸어서 화제가 된 ‘달님은 영창으로’라는 플랜카드는 이러한 양 당의 실속 없는 정치를 정면으로 보여준다. 이제 양 당의 정치인들은, 다시 국민을 통합할 국가정책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당내 지지자들을 규합할 선명성 경쟁을 해야만 하도록 내몰린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을 압도적인 지지로 선출했던 ‘민주당지지 연합’은 2022년 대선에서 붕괴됐다. 민주당 지지연합에서 이탈한 집단을 구체적으로 보면, 수도권에 거주하는 호남과 충청도 출신의 이주민들과 그 자녀들이 이탈했다. 2017년 까지 민주당 득표율 상승을 이끌었던 신도시 거주민들 중 상당수가 지지를 철회했다. 세 번째는 영세 자영업자나 블루칼라 등 경제적 중하층이었다.

제2기 정치지형이 구축되는 동안 민주당 지지연합의 등뼈 역할을 했던 호남 출신 이주민과 서울에 거주할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화이트칼라층의 등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제는 ‘중산층’이 자신의 지향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 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도권 신도시의 30대가 대표적이다. 그들에게는 민주당은 과거의 사회계약을 어떻게든 이행할 의지가 있는 정당이 아니라, 자신들의 경제사회적 기득권을 양보하지 않기 위해 기꺼이 사다리를 걷어찰 수 있는 집단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에서 조 전 장관을 옹호했던 논리들은, 서울 마포구·용산구·성동구의 정당이라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하위중산층이 집권 민주당에 대해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으라고 항의하며 이탈한 것에 편승해 대통령이 됐다. 민주당 지지연합의 붕괴와 윤석열의 당선은 이제 ‘선진국 진입’과 ‘하나의 국민’으로 부를 수 없는 국민 분열을 상수로 두고 정치를 고민해야 하는 대한민국 정치의 제3기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런데 윤석열은 대통령이 된 이후, 더 이상 중산층이 될 수 없는 ‘뒤쳐진 사람들’이 왜 민주당에서 이탈했는지 직시하기를 꺼린다. 윤 대통령이 같은 검사 출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앞세워 벌이고 있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압수수색과 형사조사들은, 기존 제2기 시절의 방식으로 주체만 다를 뿐 ‘민주당을 악마화 하기 위한 행동’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이 실패했던 그 자리, 즉 자기 지지자들이 좋아할 행동들만 함으로써, 정작 자신이 당선됐던 진짜 이유였던 ‘중산층 사회계약의 복원’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이 ‘실제의 민주당 문제’와 왜 싸우지 않는지 모르겠다. 민주당 연합에서 이탈한 하위중산층들은,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형성한다면 기꺼이 윤석열을 비판적으로 지지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런 마음으로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서울에 사는 수출주도기업과 그 관련기업 종사자들,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고소득층들의 세금부담을 증액하고, 저소득층의 안전망과 경제적 기회부여를 위한 사회복지정책을 재설계하는 문제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그 반대로 법인세 감세정책을 고집하고, 줄어든 세수 부분은 대통령이 직접 과학기술 분야의 예산의 삭감을 지시하여 세수를 맞추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연구개발예산이 삭감된 것은 33년만의 일이다.

대한민국 발전 단계 제3기에 이런 정치인은 지지받을 수 없다. 윤대통령이 지지율이 30% 전후에서 정체되는 이유다. 윤 통령이 날렸던 그 ‘어퍼컷’은, 과연 누구를 향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거대한 허망한 ‘춤’같은 것 아니었나 생각된다(민주당 지지그룹의 이탈 등 인용한 모든 자료는, 조귀동 저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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