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정수의 알쓸신서 ⑪ 가족각본

김지혜|창비|2023년

인천투데이=변정수 도서평론가|오래 전부터 해마다 이 무렵이면 품었던 의문이 있다. 명절이 대체 무엇이라고 일년에 두 차례씩이나 온 나라 교통망이 미어터지는 법석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부모 세대와 주거를 달리하는 자식들이 일년에 한두 번이라도 부모를 찾아뵙겠다는 갸륵한 마음이야 나무랄 데 없으나, 그게 왜 꼭 그날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모처럼 연휴이니 평소의 너댓 배는 더 걸리는 이동시간조차도 덜 부담스러울 수는 있겠으나, 그건 앞뒤가 뒤바뀐 얘기다. 애당초 이동인구가 워낙 많아 조금이라도 분산시키려는 의도에서 앞뒤 하루씩을 더 쉬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슨 핑계로라도 휴일은 많을수록 좋지만, 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히려 적잖은 ‘후유증’에 시달리기 십상인 명절에 사흘씩 몰아놓는 것보다 적절한 간격으로 골고루 분산해서 가족 행사를 하든 휴식을 취하든 각자 사정껏 편한 대로 움직이도록 하면 여러 모로 더 좋을 텐데 싶기만 하다.

그건 비단 굳이 명절을 쇠려 북새통에 뛰어드는 이들에게만 좋은 게 아니다. 온 나라가 들썩이는 와중에도 따로 만날 가까운 혈족이 없는 이들, 혹은 거꾸로 명절에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을 하느라 ‘민족대이동’의 대열에 끼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어떤 삶의 양태를 공유하는 이들이 아무리 절대다수일지라도 언제나 ‘예외’적인 존재는 있게 마련이고, 그 질서가 강력할수록 거기에서 벗어난 삶의 조건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저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인데, 별다른 근거도 없이 ‘비정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달가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아스러울 수밖에.

명절은 단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유독 ‘가족’을 둘러싸고 이외 비슷한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가령 ‘배타적 이성애’에 기반한 혈연가족만이 ‘정상’으로 여겨질 때, 숱한 동성애자들은 졸지에 ‘비정상’으로 내몰린다.

그렇다면 특정한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예외’로 밀쳐놓고 기어이 ‘비정상’으로까지 내모는 지금의 편협한 가족 질서를 두고도 똑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가족이란 꼭 그렇게 생겨먹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2019)에서 설득력 있는 필치로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역설했던 저자가 이번 책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조곤조곤 짚어낸다.

예컨대 ‘동성애 반대’ 집회에 줄곧 동원되곤 하는 개탄투 구호 “며느리가 남자라니?”에 “그런데 왜 며느리가 남자면 안 되지”라고 진지하게 되묻는 식이다.

또는 ‘비혼여성의 출산’을 금기시하거나 거꾸로 ‘아이를 안 낳을 거면 결혼을 왜 하나’라고 출산을 압박하는 시선을 향해 결혼과 출산이 꼭 그렇게 상호 전제로 등치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지를 반문한다.

그리고 가족을 둘러싼 이런 통념들을 폐기해도 큰일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다는 다양한 반례와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통해 치밀하게 논증한다.

요컨대 ‘정상’에서 벗어났을 때 두려워할 만한 일이 일어나는 유일한 이유는 ‘비정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제도와 습속 탓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데도 단지 편견에 노출되고 차별받을 우려 때문에 ‘일탈’이라는 낙인을 찍어서까지 비난할 일이라면, 그냥 편견을 버리면 되는 것이고 차별을 못하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남들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지 않으면 두들겨맞는 못된 사회가 있다면, 공연히 매를 벌지 말라고 입을 막는 게 옳은가 거슬리는 말을 한다고 두들겨패는 짓을 못하게 하는 게 옳은가.

정작 제도적으로 제한해야 할 것은 개인의 가족구성권과 행복추구권이 아니라 차별 행위이고 차별적 인식을 지지하는 습속들일 테다.

그래도 여전히 기존의 가족질서에서 벗어나는 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기라도 한 양 찜찜함을 거두지 못하는 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강권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저 ‘익숙한’ 것일 뿐, 실은 잘 짜여진 ‘각본’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마주할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알쓸신서는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서적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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