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인천투데이|대한민국은 플라스틱 공화국이다. 우리 일상에 참으로 익숙하고도 필수불가결한 존재인 플라스틱(plastic)의 의미는 다양하다. 변형이 쉬운 가볍고 강한 고분자화합물을 뜻하지만 이 가변성에 착안해 실제적이지 않다(not real)라는 의미도 있고, 그래서인지 성형수술(plastic surgery)로까지 확장된다. 어느 쪽으로든 한국은 플라스틱 공화국이다.

국제미용성형학회의 2014년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성형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미국으로 전 세계 성형 수술의 20.1%를 차지한다. 두 번째는 브라질로 10.2%, 세 번째는 일본으로 6.2%, 그리고 네 번째로 한국이 4.8%를 차지했다.

그런데 인구대비 성형비율에서 한국은 1000명 당 19명 정도(2021년)로 미국인이 1000명 당 12명이 성형을 한 것과 비교해보면 인구 대비 성형 비율이 단연 가장 높은 나라가 된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즐비한 성형외과 간판을 굳이 들먹일 필요가 없다.

경제만능주의, 물질지향 문화가 팽배한 한국에서 수많은 도시들과 의료기관들이 앞다퉈 펼치는 의료관광객 유치, K-성형 마케팅, 안티에이징 광고들은 현세적 욕망을 최고로 치는 우리들 가치관의 투사(透寫)다.

현세적 편리를 지상(至上)으로 치는 정신세계는 내가 사는 아파트 아니 우리집 안 곳곳에 포진한 빼곡이 들어찬 각종 플라스틱 가재도구에 그야말로 스며들어 있다. 우리집 네 식구가 배출하는 온갖 플라스틱의 양은 실로 아찔한 수준이고 버리고 또 버려도 끝이 없다.

도대체 얼마만한 양의 플라스틱이 이 도시, 이 나라 곳곳에서 버려져 쌓이는 지 상상조차 어렵다. 며칠 전 아내가 주문한 음식물쓰레기처리기에 사은품으로 딸려 온 것도 아뿔싸 락앤락 플라스틱용기 수십개 세트였다.

매년 생산되는 1000억개 중 330억개 그해 버려져

플라스틱.(출처 픽사베이)
플라스틱.(출처 픽사베이)

세계에서 1초 마다 2만개의 플라스틱 병이 소비된다. 매년 생산되는 플라스틱 제품 1000억개 중 330억개가 그 해에 버려진다. 가히 ‘플라스틱 시대(Plastic Age)’이자 ‘플라스틱 지구(Plastic Earth)’다.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대에는 약 150만 톤이었으나 2021년에는 약 3억9000만톤으로 70년 새 260배 이상 증가했다. 그린피스(GREENPEACE)의 표현대로 플라스틱이 넘쳐흐르다 못해 우리를 압도하고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플라스틱 대한민국 2.0, 2023)

우리나라는 어마어마한 플라스틱 소비량으로 플라스틱 지구에 일등공신이다. 우리 국민 1인당 플라스틱 배출량은 이미 2016년 기준 연간 88kg으로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였다. 이웃 일본(38kg), 중국(16kg)은 저리가라이다.

더 큰 문제는 일회용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 봉투나 포장재 등 대부분의 일회용 플라스틱은 굳이 안 써도 되고 또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체 플라스틱 폐기물 중 일회용이 절반에 가깝다(46.5%).

2020년 기준 1인당 연간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는 생수 PET병 109개, 일회용 플라스틱 컵 102개, 일회용 비닐봉투 533개, 일회용 플라스틱 배달용기 568개로 나타났고, 이 네 가지만 더해도 1인당 연간 약 19kg의 플라스틱을 소비한다.

게다가 환경부 공개 자료를 보면, 코로나19 팬데믹 전후 배달음식 이용량은 2019년 대비 75.1% 택배 이용량은 19.8% 증가했고 이에 따라 폐플라스틱은 14.6%, 폐비닐은 11%가량 증가했다.

플라스틱은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가볍고 완전 밀봉 가능해서 완벽에 가까운 재료로 애정된다. 본시 하루살이 운명을 타고난 1회용 플라스틱이 역설적이게도 썩지도 죽지도 않는 괴물이 돼 영생불사하는 저주스런 발명품이 되고 말았다.

한국 세계 최대 플라스틱 소비국 중 하나

한국이 세계 최대 플라스틱 소비국 중 하나가 돼 나라 곳곳에 쓰레기 산이 솟아나고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는 동안, 세계 곳곳에 생명들이 어이없이 죽어 갔다. 매년 바다거북 10만 마리, 바닷새 100만 마리가 플라스틱 조각을 먹고 죽는다.

펭귄부터 상어까지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킬러, 범고래가 플라스틱 때문에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논문도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스리랑카 코끼리는 비닐쓰레기로 연명하다가 알수 없는 질병이나 비닐덩어리로 장이 막혀 폐사했다.

소를 숭배하는 인도에서 거리를 배회하며 폐수와 쓰레기로 배를 채우던 살아있는 젖소의 배에서 쓰레기 91kg이 나왔다. 인간은 안전하며 자유로울까.

2022년 세계자연보호기금(WWF)과 호주 뉴캐슬대학의 공동 연구 결과를 보면, 전세계 인구 1인당 매일 5g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 하수처리과정에서 걸러지지 않는 5mm이하의 미세플라스틱이 하수구를 통해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해조류나 물고기가 그걸 먹고 인간이 또 그걸 먹어서 결국 우리 몸속에 미세플라스틱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코끼리와 젖소, 범고래의 참혹함이 장차 우리들의 운명이 되는 지옥의 묵시록을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일까. 속수무책인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해법으로 ‘생분해 플라스틱’이 꼽힌다.

말 그대로 자연에 존재하는 미생물에 의해 물과 이산화탄소 또는 메탄으로 완전히 분해되는 플라스틱이다. 기술만능주의, 기술낙관론은 늘 그렇게 우리 곁에 미소를 머금고 우리를 위무한다. 사용하고 난 봉지·컵·빨대가 저절로 분해되고 사라져버린다면, 재활용도 소각도 필요없고 강· 바다의 수중 생태계나 대기 오염 걱정도 없고, 우리 식탁과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미세플라스틱 문제까지도 깨끗하게 해결해줄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박테리아와 곰팡이 미생물은 1974년 폴리에스터 분해 곰팡이가 보고된 이래 2020년 4월까지 무려 436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2016년엔 가장 흔한 플라스틱 페트(PET)를 잘 분해하는 박테리아가 발견됐고, 잘 분해되지 않는 폴리스티렌(PS)과 폴리우레탄(PU)을 분해하는 곰팡이도 뒤이어 발견됐다.

가히 천지만물의 조화란 이런 것인가. 과연 플라스틱 분해 미생물이 플라스틱의 저주를 풀어 줄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미생물이 거북이 속도로 플라스틱을 분해하고 있을 때 우리는 해마다 3억 톤 넘게 플라스틱 쓰레기를 새로 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엄청난 플라스틱 생산이 계속되는 한 말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문제의 근본 해법은 여전히 플라스틱을 줄이고 대체하고 재활용하는 데 있다.

플라스틱 엄격 규제에 나서는 국가들

플라스틱.(출처 픽사베이)
플라스틱.(출처 픽사베이)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만물의 영장인 인류는 지구 곳곳에서 희망의 단초들, 불씨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보다 모든 게 처진다고 봤던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이 한걸음 앞서 플라스틱을 엄격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다. 방글라데시는 2002년 비닐봉투를 금지시켰고 아프리카에서도 국가 25개 이상이 비닐봉투를 금지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1년부터 플라스틱 비닐, 음식 용기, 컵 등 품목 10개의 판매를 금지했고 플라스틱세(稅)도 도입했다. 중국도 2021년부터 전국 식당과 주요도시 상점에서 플라스틱 빨대 제공을 금지했다.

우리나라도 2022년 ‘자원순환기본법’을 ‘순환경제사회전환촉진법’으로 개정하고 탈(脫)플라스틱 사회로 전환에 시동을 걸었다. 국제적으로는 2022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5)에 참석한 175개국이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2024년 말까지 제정하기로 만장일치 합의했다. 협약은 플라스틱을 만들고 쓰고 버리고 재활용하는 전(全) 수명주기에 걸쳐 지속가능한 순환경제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국제협약은 가히 고무적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국가별 입장 차에 따라, 또한 다국적 기업과 자본의 복잡한 이해관계에 따라 예상되는 진통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각국 정부와 국제협약을 후퇴하지 않고 불가역적으로 전진시킬 힘은 결국에는 우리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실천에 있을 것이다.

2008년 스페인의 국제환경단체 ‘가이아’가 매년 7월3일을 ‘세계 1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International Plastic Bag Free Day)’로 지정하고 기념하고 줄이자고 시작했다.

세계 나라 40여개에서 동참해서 비닐봉지 대신에 장바구니와 에코백, 다회용기 사용을 실천하고 있고, 용감한 우리나라 맘카페들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2018년 영국에서 시작된 ‘세계 리필의 날’은 세계 77개국으로 확산되었고, 우리나라 자원순환연대 등 세계 환경단체들이 매년 6월16일을 다회용기 사용 실천의 날로 동참하고 있다.

너무 많이 만들고 쓰고 버리는 것, 돌아봐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정신 혹은 영혼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너무 많이 만들고 쓰고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생태용량은 유한하다. 현 인류의 생태발자국를 고려했을 때 지구가 수용 가능한 인구는 40억명인데 이미 곱절이 산다.

그런데 만약에 전 인류가 ‘한국인처럼 산다면’ 그 수는 20억명으로 줄어든다는 부끄러운 진단도 있다. 대한민국의 자원낭비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현세적 소유와 소비의 욕망에서 우리가 좀 더 자유로와져야 한다.

중세 가톨릭교가 말하는 일곱 개의 대죄 중 둘째가 과욕(過慾)이었으며, 석가는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6가지 중 맨 마지막으로 탐욕(貪慾)을 꼽았다. 그리고 우리가 동아시아 최고의 경전으로 치는 '도덕경'의 핵심 가르침도 ‘넉넉할 줄 알면 항상 풍족하다(지족지족 상족의 知足之足, 常足矣)’는 데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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