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석 인하대박물관 학예연구사
집 앞 공중전화부스가 어느새 사라졌다. 용케 버티나 싶더니 한순간 주변 정리 작업까지 끝났다.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대략 200여 미터, 공중전화를 쓰려면 이제 그만큼을 걸어야한다. 그마저도 구석에 숨어 있어서 조만간 없어질 것 같다. 땅에서 뜯긴 전화기는 아마 폐기 절차를 거쳐 해체됐을 거다.

서울 인사동에 갔다가 우연히 오가는 얘기를 들었다. 60년대 무렵 사용하던 공중전화기는 모델에 따라 가격이 1000만 원을 웃도는 물건도 있단다. 주황색의 촌스럽던 ‘전화통’이 말 그대로 금값이다.

골동품의 가치는 희소성이 최우선이다. 예술성이나 완결성까지 갖췄다면 프리미엄이 붙는다. 여기에 이야기가 담겨있다면, 유식한 말로 스토리텔링의 가능성까지 포함하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현재 골동품 거래 시장에서는 60~70년대 생활물품들이 새로운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쓰레기로 취급받던 물건들이 지금은 생활사 유물로 높은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그만큼 찾기도 힘들다. 밖으로 드러나야 가치를 따져볼 텐데 아직은 유물로서 경계가 오락가락이다. 그래도 새로운 타깃인 건 분명하다. 새로 건립되는 박물관의 성격을 봐도 그렇고 국공립박물관 등의 기획전시를 훑어봐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인하대학교박물관에도 신진자동차에서 만든 퍼블리카가 한 대 전시돼있다. 경기도의 한 폐차장에 버려진 것을 마침 옆을 지나던 어떤 교수가 구입해서 기증한 물품이다. 1967년 생산을 시작해 2000여 대가 제작됐다는 이 차는 전국에 네 대 가량이 남아있는 걸로 확인된다. 그중 하나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돼있다. 1960년대 말, 기업에서 대량 생산한 차량까지 문화재라는 이름을 얻는 시대다. 그만큼 문화재라는 가치는 전통적 해석에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

지금은 크게 인식하지 못하지만 80~90년대 그리고 조만간 현 세기의 물건들도 골동품 대접을 받는 시절이 찾아올 거다. 그 간격은 점점 짧아진다. 전철표, 광고 전단, 제품 카다로그, 손수레, 386컴퓨터, 철도 차량, 장난감 모델, 대문, 음료수병 등,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이러한 물건들에 시간은 가치를 부여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들 사이의 관계를 엮어내고 의미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박물관이다.

박물관을 수장고로만 보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건 유물을 갈무리하는 일조차 벅차던 시절의 이야기다. 박물관은 이제 지역사람들의 놀이터이자, 공부방이면서 차 한 잔 마시며 담소하는 공간이 됐다. 형태도 많이 변해서 거리 자체를 박물관으로 꾸미거나 오래된 농가를 구입해 현재진행형으로 운영하기도 하고 폐 공장에 산업의 흔적을 담아놓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마을박물관이나 시민들의 손으로 직접 꾸미는 시민박물관도 시도되고 있다. 수집, 전시, 연구, 교육이라는 박물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형식을 벗어나 지역사람들과 보다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그래서 박물관은 지역거점박물관 이외에는 소규모 박물관들이 전문 박물관의 형태로 다수 운영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지역거점박물관을 행정적인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키우고 여타의 소규모 박물관들이 시민사회와의 협력과 지원 아래서 설립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둘 필요가 있다.

부평지역에서 거점 박물관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부평역사박물관이다. 지역거점박물관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한다. 좁게는 부평지역을 아우르지만 넓게 본다면 한강 이서지역을 포괄하면서, 한편으로는 백령·대청도로부터 연결되는 역사문화벨트를 염두에 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성과 강화를 거쳐 김포 반도로 연결되는 남북 간 역사문화 복원과 교류를 전망하면서, 부평역사박물관의 위상을 정립해가야 한다. 박물관은 단순히 과거에 눈을 고정시켜두는 곳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을 내다 봐도 부족할 시점에 갑작스럽게 들린 부평구의 박물관 축소 계획은 충격적이다. 신문 지면에 실린 내용대로라면 지역의 미래를 포기한 조치고, 그야말로 반역사적이다. 지금 부평역사박물관이 준비하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관계자들은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세월은 짧고 이름은 오래 남는다.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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