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손보경 인천여성회 회장

인천투데이|지난 1일 충청남도 홍성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다.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책 금서 요구,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인권단체들이 주최했다.

인권단체 활동가와 어린이책 전문가, 도서관 전문가는 물론 출판사 대표·작가·사서·교사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했다.

최근 충남지역 공공도서관이 직면한 성평등·성교육 어린이책을 없애라는 ‘금서’ 민원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또 이런 사태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도서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담아낼 공론장이 절실했고 이를 위해 마련한 토론회였다.

충남, 보수성향 단체 등의 성평등 도서 폐기 민원

충남의 보수성향 단체와 일부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우리 아이 도서관에서 살아남게 하기’라는 홍보물이 배포되고 성교육과 젠더·페미니즘 관련 아동도서 120종을 폐기하라는 공문을 보내는 등 충남지역 공공도서관의 성평등 도서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

섹슈얼리티와 성소수자를 삭제한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을 근거로 들며 “다양성·성인지 등을 근거로 동성애, 성전환, 조기성애화, 낙태 등을 정당화하거나 이를 반대하지 못하는 도서는 마땅히 폐기돼야 한다”며 집요하게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지난달 25일 “7종 도서에 대해 도내 36개 도서관에서 열람을 제한했다”라고 밝혔다. 문화 다양성을 훼손하는 도서검열을 한 것이다.

단체들이 폐기를 요구한 120종은 주로 성교육·성평등 관련 아동도서들이다. 폐기 요구 도서에는 ‘이태영’(우리나라 최초 여성 변호사), ‘마리 퀴리’ 등 위인전과 미국 연방대법관 긴즈버그의 이야기 ‘나는 반대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실화를 담은 ‘꽃할머니’도 포함돼 있다.

이에 충남도교육청 소속 도서관 19곳 가운데 14곳은 성평등·성교육 어린이책인 ‘나다움책’ 10권의 열람을 제한했고, 10곳은 열람은 물론 검색까지 제한했다고 한다. ‘금서’ 지정 요구가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충남 이외 이어지는 도서와 사상 검열

이뿐 만이 아니다. 지난 7월 여당 모 의원은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현대정치사 인물 관련 도서 보유 현황자료를 요구하며 ‘도서명 :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저자 박원순, 소장으로 표시’라며 그 예시를 들었다.

경북 경산시에서도 ‘시민 독서감상문대회’ 주최 측에 좌편향 도서 선정을 재고할 것을 권고하는 일도 있었다. 이 두 사례 역시 도서 검열이며 사상 검열이다.

공공도서관은 지역사회의 구성원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하고 광범위한 지식과 이념, 견해에 대한 개인적인 접근을 제공함으로써 민주사회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충남지역 공공도서관들을 향해 자행되고 있는 성교육·성평등도서 열람 제한과 폐기 요구는 공공도서관의 기본적 역할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행위이다.

검열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헌법 제21조에서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는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

또한, 헌법 제19조가 보장하는 도서관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한국도서관협회의 ‘도서관인 윤리선언’에서 도서관인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보장되는 민주적 사회발전에 공헌하며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는데 기여하고 도서관과 이용자의 자유를 지키고 정보 접근의 평등권을 확립해야 함을 사회적 책무로 명시하며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서 자신의 편견을 배제하고 정보 접근을 저해하는 일체의 검열에 반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와 유네스코 공공도서관 선언 또한 ‘장서와 서비스는 어떠한 종류의 사상적, 정치적, 종교적 검열이나 상업적 압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밝힌다.

아울러, 검열에서 자유로운 광범위한 정보와 아이디어에 대한 접근 제공, 모든 수준의 공식 과 비공식 교육 또는 평생학습 지원, 삶의 모든 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지속적이고 자발적이며 능동적인 지식 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공공도서관의 사명임을 밝히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 침해 이어 사서 노동권 침해

무엇보다 공공도서관은 지역사회의 모든 주민들을 위한 자료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도서 선정은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자료선정위원회, 도서관운영위원회 등 지역 주민과 관련 전문가가 참여하는 절차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위원회 설치와 관련 사안에 대한 권한은 도서관법 제34조와 충남교육청 도서관 운영조례 제3조에 명시돼있다.

이에 더해 업무가 마비될 정도의 책 폐기에 대한 지속적인 민원 제기와 항의는 도서관 사서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사회권 규약 제6조와 7조에서 노동의 권리를 침해할 경우 국가는 노동의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업무 전반의 환경이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사서의 업무는 자료 대출과 반납, 도서 정리 등 기본 업무 외에 문화행사 기획과 운영, 플랫폼 운영, 비대면 서비스 등 그 역할이 확대되었고 도서관은 종일 민원에 직접 대응하는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이 혼합된 노동 현장이다.

그런데 지금 충남 공공도서관을 향해 자신들과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막무가내식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제기하는 책 폐기 요구는 악성 민원이자 명백한 갑질 행위이다. 이로 인해 공공도서관의 사서의 노동권과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

폐기 요구 도서들은 모두 간행물 윤리위원회를 통과한 책들로 책을 폐기할 법적인 근거가 없으며 임의로 폐기할 수 없다고 사서들은 이야기하고 있지만, 하루가 멀다고 방문과 전화로 항의에 시달리기에 사서로서의 입장을 지키기 어려운 실정이며 어쩔 수 없이 책을 열람실에서 이동 조치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서로서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다.

‘금서 민원’으로 시민들의 책 읽을 권리는 물론이고 도서관 사서들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 노동권까지 침해하고 있지만 이를 보호할 책무가 있는 도지사는 아무런 조처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열람 제한을 밝혔다. 이는 검열이라는 반헌법적 행위에 동의하는 전체주의 행정이다.

1980년 개정된 ‘도서관 권리선언’에서 도서관은 ‘정보와 사상을 위한 광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도서관은 어떠한 의견과 견해에 대해서도 개방돼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광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지적 자유를 수호하는 기관으로서의 도서관의 근본적 가치를 지킬 수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시민은, 독자는 책을 자유롭게 읽을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되며 도서관의 지적자유를 지키는 일이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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