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국민생각 한필운 변호사

필자는 광복절(光復節)에 태어났다. 태어난 직후엔 어른들이 따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광복이’라고 불렀단다. 빛과 영광이 돌아왔다는 광복. 우리에게 의미가 남다른 말이다.

한필운 변호사
한필운 변호사

우리에게 광복은 곧 일본제국의의 패망을 말한다. 침략의 야욕에 눈이 먼 일본은 태평양전쟁까지 일으켰다가, 미국의 참전으로 수세에 몰려 본토에서 의미 없는 항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미국은 일본의 본토를 계속해 폭격하다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승전국 사이에서 우위를 점하고, 패전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원자폭탄의 사용을 승인했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실전에서 핵무기 사용 버튼을 눌렀던 사람이 된 것이다(실제로 간단한 핵버튼이라는 것이 있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인류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원자폭탄’에 관한 영화가 개봉한다. 한국에서는 광복절에 개봉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라는 영화이다.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 감독의 이야기에 감동했던 필자는 영화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단순히 놀란 감독의 영화여서가 아니다. 이 놀라운 감독이 모순적인 캐릭터의 실존 인물 오펜하이머를 그렸고, 이 영화는 전쟁과 평화, 인간의 도덕적 딜레마까지 많은 고민을 던져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개봉에 앞서 넷플릭스에서 ‘전쟁의 종식자 : 오펜하이머와 원자폭탄’이라는 다큐가 공개되었었다.

역사적 사실은 이렇다.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과학자들이 우라늄의 핵분열을 발견한 후 2차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독일을 제외한 자유 진영 서방의 과학자들은 나치가 ‘원자폭탄’을 개발하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무기로 전쟁을 승리할 것이라 생각했고, 나치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해야 한다고 미국 정부를 설득했다. 아인슈타인 명의의 편지까지 동원된 이 설득작전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은 맨해튼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과학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포스터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 포스터

오헨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수행한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의 소장이다. 노벨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천재성을 인정받는 과학자였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능력으로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을 독려하여 2년 7개월여 만에 불가능할 것 같았던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다.

첫 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에서 플루토늄을 이용한 원자폭탄 실험을 수행하기 전에, 이미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만들어낼 괴물의 공포를 알고 있었다. 실험이 성공할 경우 모든 대기가 불타버릴 가능성을 염려하였고, 자신들이 ‘죽음’을 창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원자폭탄은 전쟁을 종식시킬 것이다”라고.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파괴력을 가진 원자폭탄의 존재만으로도 더 이상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당시 많은 과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한 듯하다.

오펜하이머에게 원자폭탄의 사용 권한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펜하이머 스스로도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하는 것을 찬성했다고 한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보여주어야 하고, 그것이 마지막 사용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미 폭격으로 남아난 도시가 별로 없는 일본에서도, 히로시마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원자폭탄의 위력을 알아보기 좋았다. 도쿄만에 터트려 피해지역을 최소화하면서 원자폭탄의 위력만 보여주는 방법도 검토되었지만, 최대한의 사상자를 낼 수 있는 지역과 방법이 선택되었다. 그리고 폭탄 2개로 최대 24만 명이 사망했다.

미국의 원자폭탄을 본 소련은 그로부터 4년 뒤에 핵실험에 성공한다. 이어 유럽에 원자폭탄이 등장하고 확산했다.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는 수천개까지 늘어났다. 전쟁 가능성이 있는 선진국은 모두 핵을 개발했다. 이제 인류는 단 한 발의 핵폭탄만으로도 인류를 멸망시킬 핵전쟁을 각오해야 하고, 한반도 휴전선 넘어 북측엔 실존하는 핵위협이 있다.

오펜하이머의 바람대로 전쟁은 종식되었을까. 지난 80년간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았으니 실제로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온 것일까. 우리는 스스로를 파멸시킬 통제 불능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 무기의 위력으로 상대를 겁박하고 우위를 차지한다. 또 그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도전자들이 우글댄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불러온다. 아이러니하게도 핵무기 개발자 오펜하이머는 이후 핵무기 사용을 반대하다가 정치권으로부터 축출 당한다.

필자는 원자폭탄이 우리를 새로운 전쟁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이 무기는, 전 인류의 억제 노력과 이미 무기를 가진 자들의 압력으로 통제되고 있을 뿐, 이 무기를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인류의 갈등과 대립은 멈추지 않고 있다. 평화는 전쟁종식의 결과물이 아니라 전쟁종식의 밑거름이다. 평화를 향한 믿음과 최소한의 인류애가 우리를 전쟁의 시대에서 구원하는 것이지, 더 파괴적인 무기가 평화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다.

핵무기를 목격한 오펜하이머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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