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김상섭 다문화학 박사

인천투데이|우주와 만물을 뜻하는 단어 ‘유니버스(universe)’는 라틴어 ‘universum’에서 유래했다. uni는 ‘하나’를 의미하고 verse는 ‘돌다’라는 뜻의 동사 verto의 과거분사 형태라나. 결국 ‘돌고 돌아 하나가 된다?’.

이쯤되면 심오한 불교철학이 떠오르고 나아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들이 궁구(窮究)하는 진리와 세계관은 원융회통(圓融會通)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이른다. 그런데 오늘날 또 하나의 세계가 출현하였으니 메타버스(metaverse)다. ‘초월’을 의미하는 meta와 유니버스의 합성어다.

미국 공상과학 작가 닐 스티븐슨가 소설 ‘스노 크래시(1992)’에서 처음 사용했다는데, 한국계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불행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접속하는 세계, 곧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세계란다.

유니버스, 메타버스 아닌 버스

유니버스, 메타버스를 상상하다가 문득 엉뚱하게도 ‘버스(bus)’의 세계에 올라탄다. 사실은 버스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verse를 상상했던 거다. 어쨋거나 상관없다. 며칠 전에 딸과 함께 자가제면이라는 어느 우동집에서 저녁을 먹고 귀깃길에 버스를 탔었다.

근 30년 전 직장생활 시작하고부터 한 동안 시내버스 요금이 얼만지 모를 때가 있었다. 어딜 가도 승용차가 제일 편했고 그 다음으로 지하철이 편했기에. 그렇지만 한국에서 압축 산업화와 고도 경제성장 시대를 거친 세대치고 버스에 관한 기억이 차고 넘치지 않는 사람 없을 거다.

1970년대,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산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이른바 조손가정으로 살았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비포장 신작로를 흙먼지 풀풀 날리며 하루 두세 번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이촌향도(離村向都)하여 인천에 터 잡으신 부모님 집으로 떠나오던 날에도 버스를 타고 십리를 나와 장터 공용버스정류장에서 기차역 있는 도시까지 가는 완행버스로 갈아탔었다.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고향집은 점점 시야에서 도망치는데, 코흘리개 손자를 제부모 대신 애지중지 키워주셨던 할머니의 손주 떠나보내는 애끓는 심정과 그칠줄 모르는 눈물 애써 훔치실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만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려 뒤돌아 달려가 와락 할머니 품에 안기고 싶었었다. 나이 오십 중반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도시 학장시절의 시내버스

인천의 버스.(인천투데이 자료사진)
인천의 버스.(인천투데이 자료사진)

도시에서 보낸 학창시절엔 일상처럼 시내버스를 탔다. 이른 아침 통학길 시내버스는 출근길 직장인과 학생들로 뒤엉켜 대체로 만원이었다. 기를 쓰고 올라타는 승객들의 등짝을 짐짝처럼 밀어넣는 안내양의 ‘오라이’ 외침이 아련하다.

근무가 고된데다 임금은 적고 지금이라면 말도 안 될 몸수색 등 인권유린에 시달리던 그녀들은 대개 20대 전후였겠는데, 왠지 안쓰럽고 애잔한 마음이 들곤 했다. 중학교 땐가, 당시 연안부두가 종점인 26번 버스 안내양 ‘누나’의 맑고 밝은 (그리고 무척이나 예뻤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고 일기에 적었던 기억이 있다.

결혼을 하고 태어난 딸, 사람들 말마따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 고사리 손이 어느날 가리키던 하얀 버스의 기억도 새롭다. “아빠, 왜 저 버스엔 사람이 안 타?” 군대에서도 헌혈 안해본 내가 지금까지 몇 장의 헌혈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순전히 딸아이 때문이다. 딸이 살아갈 세상에 아주 작은 보탬이라도 되리라는 소박한 소망.

미국에서 잠시 살았을 때 아이들이 스쿨버스를 타고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가끔 버스를 놓치면 승용차로 태워주기도 했다. 검은 색 가로줄무늬 몇 개가 있는 노랑버스는 투박하기 그지 없지만 무척이나 믿음직스러웠다. 속 터질만큼 천천히 출발하고 느리게 달렸다.

한 번은 앞에 멈춰선 노랑버스가 도무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길래 하도 답답해서 그걸 추월하려다가 버스기사에게 제대로 혼 난 적이 있다. 버스 옆면에 부착된 “멈춤(STOP)”이라는 붉은 글자가 선명한 접이식 표지판을 못 봤냐는 거다.

그게 펼쳐져 있을 때는 대통령 리무진이라도 지나가면 안 된다는 엄한 훈계였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엄포를 겨우 달래고 위기를 모면했지만 뜨끔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한국에서 넘쳐나는 노랑버스

노랑버스.(인천투데이 자료사진)
노랑버스.(인천투데이 자료사진)

한국에서도 언제부턴가 노랑버스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눈에 띄는 대부분의 노랑버스는 학교 소속이 아니라 OO여행사 아니면 OO관광이라고 적혀 있고 그 옆에는 으레 □□학원이라고 병기된 전세버스 아닌가.

세계에 유례없는 사교육 문화를 상징하듯 스쿨버스는 곧 학원버스인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수지가 안 맞으니 관광을 겸업하여 산으로 바다로 어른들을 실어나르는 효율성 추구의 영악함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많은 소형, 중형 승합차들도 노랑버스가 된다.

우리 도로교통법은 어린이통학버스가 도로에 정차해 어린이나 영유아가 타고 내리는 중일 때, 다른 운행 차량에게 일시정지해 안전을 확인한 후 서행하라고 한다. 일시정지해 서행하는 게 아니라 멈춤 표지판이 완전히 접힐 때까지 무조건 멈춰야 하는게 스쿨버스 정신이다. 이쯤 되면 한국에 물 건너온 스쿨버스는 가히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되는 꼴이다.

뭇사람들은 말하리라. 가뜩이나 비좁은 도로에 교통정체로 몸살인데 넘쳐나는 유치원과 학원들의 통학차량 뒤에 무조건 멈추는 것은 고사하고 일시정지 후 서행도 언감생심이라고. 법규가 그러하고 현실이 이러하니 경찰단속이 제대로 될 리 없고 어린이보호에 대한 낮은 인식은 오늘도 답보하는게 아닌가.

최근 CNN은 한국의 학원을 영어 번역이 아니라 고유명사 ‘Hagwon’으로 표기하면서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저녁에 학원에 가고, 집에 와서도 새벽까지 공부를 이어가야 한다“고 꼬집은 바 있다.

우리에겐 너무도 익숙한 일상일 뿐인데, ‘뭐 대단한 뉴스거리라고 새삼 호들갑을 떠는거야’라고 그저 냉소에 부치지는 말자. 대신에 그래도 다시 한 번 우리의 뒤틀린 현실을 곱씹어 보자. 오늘밤에도 대형 학원가 도로에는 수십 대의 노랑버스가 점령군처럼 포진해 있으렷다.

회수권에서 토큰, 교통카드, 환승할인제, 완전 공영제까지

인천 한 시내버스의 모습.(인천투데이 자료사진)
인천 한 시내버스의 모습.(인천투데이 자료사진)

옛적엔 시내버스 탈 때 종이 회수권(回數券)을 무슨 전표(錢票)처럼 사용했다. 그 후로 동전보다 조금 작고 가운데 구멍이 난 토큰(token)을 쓰다가 지금은 교통카드를 쓴다. 발빠르게 진화한 스마트 교통카드는 ‘환승할인제’를 가능하게 했다.

서민들은 버스를 타고 내릴 때마다 카드를 단말기에 대고 찍고 또 찍으며 소소한 위안을 얻었지만, 알량한 수익성을 놓고 벌어지는 과도한 경쟁에 노출된 버스 회사들의 허약한 체력과 볼멘소리는 만성병이 됐다.

2004년 서울을 필두로 버스 준공영제(準公營制)가 도입됐다. 문제의 핵심인 노선 설정권은 지방정부, 운영은 버스 회사가 하기로 역할분담하고, 수익금은 운행 실적에 따라 배분 받고 적자분은 지방정부에서 보조해주는 식이다.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운수종사자 처우는 분명 좋아졌지만 노선 편중과 회사들의 도덕적 해이에다 지방정부 재정부담은 눈덩이처럼 늘었다. 급기야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노리고 준공영제 버스 회사에 사모펀드의 탐욕스런 손길이 뻗치기에 이르렀다.

서울시는 2023년 8월부터 시내버스 기본요금을 1200원에서 1500원으로 300원 올린다고 하고 인천시도 올 10월부터 현재 1250원에서 1500원으로 250원(20%) 올리겠다고 한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시민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대중교통요금 책정 방식은 구조적이고 지속가능한 해법이 될까.

이 참에 버스 완전 공영제를 도입하고 장차에는 아예 무상대중교통으로 나아가자는 방안이 한 정당에서 추진되고 있다.

점점 더 눈 앞에 현실이 되고 있는 기후변화, 아니 기후재앙의 시대에 대중교통은 이용 그 자체가 복지와 환경 등 공익성이 크고 확실하기 때문에 재정 투입이 최우선돼야 하고 그 부담은 좀 더 가진 자를 포함한 전체의 몫이어야 한다는 거다.

이미 월정액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프리패스 정책이 시행되는 곳도 있다. 버스는 엄연한 역사적 산물이고 사회적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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