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익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직국장

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인천투데이|2016년 영국의 캔 로치 감독이 만든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가 있다. 단순하게 얘기하면 이 영화는 영국의 실업급여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 영화는 인간의 삶과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복지’가 관료제의 형태로 인간을 어떻게 훼손시키는지, 지극히 일상 속에서, 인간적인 존재들을 통해 보여준다.

한국의 헌법 제3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최저생활의 보장을 국가에 의해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업급여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24일 고용노동부는 ‘실업급여 제도 개편 필요성’에 대한 설명회에서 현재의 실업급여 제도를 뜯어 고치겠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이렇다.

직장을 잃은 실직자들이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각해 “실직자들이 실업급여를 달콤한 보너스란 뜻으로 ‘시럽급여’라 부른다”며 베짱이처럼 일은 하지 않고 복지중독에 걸려 실업급여를 야금야금 빼먹고 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실업급여 타는 기간에 해외여행을 가고 샤넬 선글라스를 사거나 옷을 사거나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며 실업급여 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를 쏟아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에 발표한 실업급여 제도 개선 대책으로 ‘수급자의 근로 의욕 제고와 구직활동 촉진으로 수급자가 이를 통해 자립할 수 있게 실업급여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편할 것’이라고 했다. 어디하나 흠잡을 데 없는 말이다.

현재 전체 실업급여 수급자의 73.1%(119만명)가 대부분 청년, 고령,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이들은 급여 하한액 적용을 받고 있는 조건에서 최저임금 대비 소득대체율(실업급여의 하한액)마저 낮추거나 폐지한다면 저임금노동자의 실업 기간 동안 생계 유지에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이다.

간접고용(80만명), 일용직(125만명), 초단시간(185만명), 5인 미만 사업장(380만명), 고령(176만명), 청소년(17만명)은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더라도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 노동자들로 대부분 고용보험 사각지대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자조적으로 ‘예수’라고 불린다.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부가 지금 당장 할 일은 반복 수급자를 단속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고용 안정성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상식적인 접근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도 지적을 했지만 문제는 실업급여 조차도 못 받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실업급여자가 많은 이유는 경기가 안 좋고, 폐업이 많고, 사회안전망의 위기로 떨어지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작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 원인을 엉뚱한데서 찾으니 대책은 당연히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실업급여 제도 개선의 핵심은 ‘정부가 도와줄 책임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OECD는 한국 정부에 “적극적인 구직, 고용 지원 조치를 장려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권고한 바 있다.

제도를 개선하고 대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진지한 대화와 노력이 요구된다. 당연히 시간은 필수이다. 그럼에도 정부 여당은 갖은 조롱과 비하, 혐오를 앞세워 무조건 밀어 붙이고 있다.

실업급여는 실직노동자의 재취업을 위한 구직기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게 돕는 구직급여이다. 정부, 여당, 경영계 등에서 주장하는 실업급여와 노동의욕 저하 주장은 구체적 상관관계가 확인도 증명도 되지 않는다.

계약직, 일용직 등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기업의 고용 관행과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을 바꾸지 않고서 실업급여를 깎아 생계를 압박해서 취업률을 높이겠다는 발상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리고 국회가 해야 할 것은 실업급여 수급자의 대부분인 청년과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지, 불안정 저임금 노동자들의 사회적 안전망을 뒤흔드는 행위가 아니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 의장과 국회의원들에게 권하고 싶다. 진정 실업급여가 그렇게 달콤한 ‘시럽급여’라면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실업급여를 받으시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은 ‘시럽급여’를 운운할 때가 아니다. 여전히 학습지교사, 대리운전 기사, 식당 자영업자 등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이 고용보험 사각지대에서 일하고 있다.

제발 시대가 요구하는 핵심 과제를 직시하라. 그것이 안 되면 제발 아무것도 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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