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인천투데이|한 주의 시작이 이토록 무겁고 먹먹할 수 있을까. ‘극한 호우’로 명명된 이번 집중호우 보도를 보면서 또 다시 인재(人災)로 인한 참사를 마주해야 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았건만,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은 고질병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상황이다.

냉정하고 날카롭게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싶었지만, 매일 매일 늘어가는 사망자 수를 보는 마음은 그저 참담할 뿐이었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모두 우리의 이웃이었다.

익숙하고 정겨운 곳에서 잠을 자다가, 일상적으로 출근하다가, 폭우로 인해 탈이라도 날까 주변을 살피다가, 물길에 휩쓸리는 누군가를 구하려다가, 그들은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를 더 슬프게 만드는 것은 이런 일들이 비단 처음도 끝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오성 지하차도 참사는 충분히 예견됐음에도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 문제이다. 이미 사고 1시간 전에 제방 붕괴의 위험을 경고하는 주민의 신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더구나 그 장소는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에 더 마음에 걸린다. 아침 출근길에, 잠시 약속이 있어 나섰다가도, 우리는 수많은 지하차도를 지나친다. 도심으로 들어서면 더 많은 지하차도들이 뻗어 있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지나치던 그곳이 죽음의 장소가 되어버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기억을 멀리 더듬을 필요도 없다. 불과 3년 전, 2020년 부산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사는 기어이 되풀이 되고 말았다.

누군가는 이번 비극의 일차적인 원인으로 세계적인 기후 위기를 짚어낼지도 모르겠다. 수년 전부터 여름마다 국지성 폭우가 이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상청은 2022년부터 기후 위기 시대에 장마라는 표현이 적절한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이주형, “폭우->폭염->폭우, 여름 변덕…‘장마’ 사라질까”, <아시아경제> 2023.07.05.)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는 인재(人災)에 따른 변명이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재해 그 자체가 아니다. 재해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것을 태만으로 방치했다면, 그것은 분명 인재이다.

이때 우리는 재해를 사고가 아닌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매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대응만이 반복되기 때문에, 매년 이런 참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7월 21일, 비가 갠 그날도 실종자가 1명 더 추가됐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저 숫자가 아니다. 숫자 이면에 있는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구명조끼도 없이 실종자 수색에 나서야 했던 스무 살 청년이 급류에 휘말렸다는 것을 말이다. 여전히 재난은 진행 중인 것이다.

사고는 사건이 됐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호통과 변명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면피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영웅의 탄생에 열광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절대로 당연시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 영웅이 돼야만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그 자체가 이미 재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모두가 ‘이후’에 더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일상적인 위험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감시와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영웅이 필요 없는 시스템을 만들 책무는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니다. 바로 시민인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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