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섭 인천문화재단 평화교류사업단 과장

인천투데이|

진실과 화해를 위한 첫걸음

정민섭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 연구원
정민섭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 연구원

2005년 출범했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1기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특히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을 조사해 유해 매장지를 찾고 이에 대한 발굴작업을 진행한 사업은 지금까지 잊혀진 피해자들의 넋을 기리고 전쟁의 비극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10년 여러 가지 외부 요인들로 인해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이 종료되면서 발굴도 중단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꼈던 시민들이 위원회 조사관과 유족들이 함께 2014년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을 결성하면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206개의 뼈

얼마 전 ‘206 : 사라지지 않는’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앞서 언급했던 ‘한국 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공동조사단’의 여정을 다뤘다. 영화에서는 국내 각지의 학살 희생자 매장지를 돌며 발굴작업을 하는 조사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희생자들은 70여년 만에 다시 햇빛을 보게 되지만 그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5살 안팍의 아이를 안은 어머니의 유골, 차곡차곡 포개져 나타나는 학살 희생자의 유골들을 통해 당시 학살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알 수 있다.

강화 갑곶나루터

지난 2020년 7월 9일 <인천투데이>는 한국전쟁 당시 강화지역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기사를 실었다. 보도를 보면, 강화지역의 대표적인 학살지인 갑곶나루 터 인근에 설치된 ‘학살지 표지판’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으며 민간인 희생자 위패를 모실 공간도 마련되지 않아 문제라고 했다.

이러한 실정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강화도와 교동도에서 일어났던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해 국가 폭력에 의한 학살로 규정하고 위령비 건립, 추모공간 마련, 추념행사 진행 등을 권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권고’는 반영되지 않고 있으며 유족들 또한 고통 속에 지내고 있는 상황이다.

4000여명

현재까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확인한 한국전쟁 당시 인천지역의 민간인 학살사건은 교동도 및 강화도 일원의 민간인 학살, 영흥, 덕적도 일대에서 일어난 민간인 살해 등 이 있다. 이 사건에서 확인되는 희생자만 약 733명에 이른다.

또 이들 희생자의 가해 주체는 우익 유격대와 국군, 인민군 점령기 당시 북측 내무서원 등 다양하다. 그러나 이외에도 밝혀지지 않은 사건은 더 있다.

한국전쟁 발발 후 일어난 것으로 알려진 인천지역 보도연맹원 사건, 인천상륙작전 직후 인천경찰서에서 일어난 북측 내무서원의 우익인사 학살, 1.4후퇴 전 인천, 동인천 경찰서 등에서 일어난 부역혐의자 학살 등은 아직까지도 정확히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는지, 가해자는 누구인지 밝혀지지도 않았다.

다만, 일부 연구에 따르면 이들 사건에서 최소 3700여명이 희생당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한국전쟁 당시 인천에서만 4000여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전쟁에 휘말려 무고한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혐오의 피라미드

‘혐오의 피라미드’ 이론이 있다. 특정 집단이나 사람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 널리 퍼지게 되면 혐오하게 되고 이것이 심화 되면서 차별과 증오범죄를 불러일으키며 종국에는 집단학살과 같은 대규모 폭력을 불러온다는 이론이다.

인천은 지금까지 한국전쟁 승전의 기반을 만든 곳으로 매년 대규모 승전행사를 진행했다. 올해는 더욱이 국제적 전승행사로 전환을 위해 대규모 예산까지 투입했다고 한다.

필자는 한국전쟁이 남침이 맞다고 당연히 여긴다. 하지만 전쟁을 승리의 관점에서만 파악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전쟁의 승리를 기뻐하고 이를 기리기보다는 전쟁이 가져왔던 비참함과 반인류적 양상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 불러오는 혐오의 피라미드를 우리는 다시 겪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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