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위공(송도·여의도) 박병언 대표 변호사

윤석열과 한동훈은 검사출신이다. 그들은 국정을 이끌며 법대로 절차를 지키고 있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그러나 유럽-미국 문명에서 ‘법대로 했으므로 올바르다’는 원칙이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 생각해보면, 매우 비겁한 변명이다.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송도) 대표 변호사
박병언 법무법인 위공(송도) 대표 변호사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서구 문명이 주장해 온 국가의 허무함을 말한다. 이웃의 아픔에 개입해야 할 아무런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 비정한 중립국가. 사회주의 진영과 대결에서 승리해 세계 유일의 패권문명이 된 유럽-미국 문명이, 실상은 인간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아무런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는 거대한 허무의 체계라는 것을 후쿠야마는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책은 많은 이들이 공산주의 진영의 폐해를 선언한 오만한 문서로 오해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제 어떻게하지?”라는 불안을 제시했다는 게 더 진실에 가깝다.

유럽-미국 문명이 이렇게 거대한 허무의 체계를 만든 이유는, 그들이 그들 내부의 내전을 끝내지 못한 ‘휴전 상태의 문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본래 유럽문명은 가톨릭(=기독교)을 사회윤리의 기본으로 가진 사회였는데,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기존 가톨릭의 윤리적 타락이 드러나면서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세력이 등장하게 됐다. 이들은 윤리적으로 서로를 용납하지 못했고, 유럽은 내전에 빠져 황폐화 된다.

1572년 8월 24일 성 바톨로뮤축일, 가톨릭 세력은 개신교 신자들을 불시에 습격해 대량 학살을 감행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화가 뒤부아는 이 학살에서 살아남아 기록화를 남겼다.

대한민국 광주에서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해 벌어진 전두환 신군부의 시민 학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고, 이는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중대 사건이 됐다. 유럽의 근대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 나오기까지 100여년 간 ‘광주 5.18’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호 학살을 목격하고 유럽인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상호학살을 피할 이론이 절실했다. 유럽인들이 찾은 답은 ‘누가 맞는지를 따지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실체적으로 누가 옳은지를 따지지 않고, 절차를 준수했으면 옳은 것으로 판단하는 룰을 정해 간다.

홉스는 1651년 영국이 내전을 종결시킬 이론을 찾다가 국가의 정당성은 오직 현실의 내전을 종식시킬 힘을 가진 것에 근거한다는 이론을 썼다(리바이어던). 국왕을 옹호하기 위해, 사실은 국왕을 실체적으로 지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쓴 이 책을 보고 왕당파들은 “이런 이론으로 국왕을 옹호할 바에야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할 정도였다.

유럽의 과학자들은 신학과 윤리가 결합돼 있던 과학을 거부하고, 단지 ‘사물의 현상’의 규칙만을 찾는 것으로 나아갔다.

뉴턴은 1687년 떨어지는 사과와 태양계의 별들의 움직임을 분석해 만류인력의 법칙을 제창하면서 “나는 인력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유럽은 이렇게 상호 내전을 근본적으로 종식 시킬 ’평화 이론‘을 만들지 못한 채, 유럽 내에서 는 전쟁을 휴전하는 대신 자기 세력의 확장을 위해 유럽 밖에서 전쟁을 시작했다.

뉴턴 이래의 과학혁명, 산업혁명으로 이룩한 물질적 토대에, 유럽 내전으로 실전경험을 쌓은 군대가 유럽 밖으로 진군하자 세계는 유럽 문명의 침략 전쟁에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 기간 동안 유럽인들은 ‘유럽 100년의 평화(1804~1914)’를 맛보며 유럽 문명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것은 BTS가 어느 인터뷰에서 지적한 것처럼 유럽의 아프리카-아시아-아메리카 식민지 착취에 기반 한 것이었다. 그리고 세계 모든 식민지가 유럽 국가에 선점된 후 임시 봉합돼 있던 유럽 내전은 다시 세계 제1차, 제2차 대전으로 터져 나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1500년대 이래 ‘봉합된 내전’을 극복할 이론을 유럽-미국 문명은 여전히 제시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이제 세계열강은 다시는 ‘식민지’를 가지지 못하게 됐고, 그에 따라 식민지였던 후발 국가들이 유럽-미국처럼 경제개발을 이룩하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을 뿐이다.

2020년대 세계는 중국-인도를 필두로 과거 유럽-미국 문명권이 아니었던 국가들의 경제적 약진으로 평준화 돼 가고 있다. 그래서 진정한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유럽-미국 문명 300년의 ‘특이점’을 지난 후, 세계는 원래 인간이 고민했던 원시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2020년대는 이제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고난의 여정을 끝내고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 올라선 대한민국 국민이 느끼는 공허함을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다.

그런데 지난 1년 간의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을 지켜보면, 국민을 통합할 아무런 가치를 제시하지 못한 채 ‘법대로 국가를 운영 중이다’라는 공허한 답변만을 듣고 있는 느낌이다.

3.1절 기념사와 일본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에서도,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 에서도, 심지어 5.18 기념사에서도 윤석열과 한동훈은 ‘미국을 따라, 법대로’만을 외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불행이고 대한민국 국민의 불행이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